최명기(정신과전문의)  http://blog.naver.com/artppper  술에만 취하면 아버지에게 욕설을 퍼붓고 소리를 지르는 젊은이가 있었다. 주위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도 난폭한 행동을 해서 그 젊은이는 파출소로 연행이 되었다.   아직도 술에 취한 그 젊은이는 울먹이면서 어려서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때렸던 것에 비하면 자신이 한 행동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어머니 역시 구타했고 매를 참다못한 어머니는 아버지를 피해서 달아났다고 했다. 어머니도 없이 집에 혼자 남은 자신이 얼마나 겁에 질리고 외로웠는지 그는 레코드판을 반복해 돌리듯이 한번 한 얘기를 하고 또 했다. 그런데 한 때 피해자였던 그는 누가 뭐래도 지금은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그의 어린 삶은 불행했다. 그의 어린 삶 속에 자신이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를 학대한 아버지도 그의 선택은 아니었고, 그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도 그의 선택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삶은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잃어버린 삶이다. 그는 지금도 불행한 과거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가 지금도 과거에 매여서 불행을 점점 더해만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모든 잘못을 불행한 과거 탓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든 잘못을 자신을 학대한 아버지와 자신을 버린 어머니 탓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더라도 어렸을 때는 아이들의 삶의 상당부분을 부모가 대신 선택한다. 무엇을 먹을 지, 무엇을 입을 지, 누구를 만날 지 부모가 선택을 한다. 부모는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환절기에 아이들이 배탈이 나면 대개 그 이유는 바이러스성 장염이다. 환절기에 감기가 돌듯이 바이러스성 장염이 돈다. 대개는 하루 이틀 안에 저절로 낫는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엄마들은 아이들이 밖에서 뭘 사먹지 않았냐고 추궁을 한다. 그리고 집에서 먹은 음식이 아닌, 밖에서 먹은 음식에 배탈의 원인을 돌린다. 아이가 혹시라도 엄마에게 얘기하지 않고 자기 용돈으로 길에서 군것질을 했다고 이야기 하면, 그것 때문에 배탈이 났다고 한다. 어머니 몰래 나쁜 음식을 사먹어서 배가 아프게 되었다는 식으로 아이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려 한다. 아이는 다시는 밖에서 불량식품을 사먹지 않겠다고 한다. 하지만 길에서 파는 떡볶이와 오뎅은 사실 배탈과 아무 관련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간섭과 구속이 없으면 어떻게 아이가 제대로 자라겠느냐고 흔히 말한다. 가정교육, 하면 대개 규칙과 훈육을 떠올린다. 하지만 간섭과 구속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밑에 사랑이 깔려야 한다. 어떤 부모는 간섭과 구속의 형태로 아이를 사랑한다. 바꿔 말하면 간섭과 구속이 아닌 다른 형태로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 본인들 역시 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는 공부하라는 간섭과 구속이 아닌 형태로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까마득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간섭과 구속이 아닌, 그 밑에 깔려 있는 사랑이 사실은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이끄는 힘이 되는 것이다. 간섭과 구속 외에도 때때로 다른 형태로 사랑을 줄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는 더욱 큰 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불행은 부모의 사랑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부모가 사랑 그 자체를 많이 표현하면 할수록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더욱 더 많이 받기 위해 노력한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일단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을 때 간섭도 효과가 있다. 부모의 간섭이 실은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아이들도 어렴풋이 알게 되는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사랑하지 않으면 왜 힘들게 야단치고 간섭하겠냐고 하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어린 시절을 돌이켜 봐도 그렇다. 부모는 우리들을 위해서 항상 공부하라고 했지만 어린 시절 우리들은 부모들이 자신들의 대리만족을 위해서 우리에게 공부를 강요한다고 생각했다. 간섭과 구속과는 별도로 조건 없는 사랑을 표현해야 균형이 맞는다.  간섭과 구속만이 존재하면 아이들은 부모의 감시가 없는 상황에서 들키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든지 다 해도 된다고 생각을 한다. 들켜서 벌을 받을까봐 두려워서 하지 않을 뿐 진정한 의미의 죄책감 때문에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앞서 언급했듯이 아이들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전략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부모 아래서 자라다 보면 진정한 의미의 죄책감이 생기기가 더욱 어렵다. 진정한 죄책감이 결여되면 인생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주위의 탓, 남의 탓, 부모의 탓으로 돌리고자 한다. 이런 태도가 실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없이 자란 사람들이 받는 가장 큰 상처인 것이다.   진정한 죄책감이 없는 이는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을 희생자의 위치에 놓는다. 자신을 불행한 성장과정의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결혼을 한 이후에는 자신은 잘못된 결혼의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은 다음에는 자신을 말 안 듣는 아이들로 인해 고통 받는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학교를 잘못 선택해서 전공을 잘못 선택해서 취직이 안된다고 탓을 한다. 자신이 선택해서 회사를 들어가 놓고는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하기에 앞서 대우가 나쁘다며 우선 회사 탓만 한다. 자신이 선택을 해서 사업을 벌였다가 말아먹고는 운이 나빴다고 한다.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간섭, 구속  만이 존재했기에 결정의 자유, 선택의 자유를 빼앗긴 데서 비롯된 후유증이다. 자신이 진정한 책임감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머리로 인정하는 경우에도 진정한 책임감이 없는 것 자체를 또 남의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결정의 자유, 선택의 자유가 박탈된 삶을 살았던 이들이 지금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힘들더라도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한다. 성인이 되어서 내 인생에 벌어진 많은 일들이 결국은 나의 선택과 나의 결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책임을 질 때 삶이 미약하나마 변화하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나은 인생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하고 선택하고 반성하고 결정하는 가운데 삶이 조금씩 의미를 더하기 시작한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그가 한 결단들이 삶에 행운을 가져다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훌륭한 결단을 하기까지에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각각의 결정과 선택이라는 한 장씩의 벽돌을 쌓아서 우리는 인생이라는 벽돌집을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벽돌만 그냥 쌓아올린다면 사소한 충격에도 집은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벽까지는 어떻게 만든다고 해도 지붕을 어떻게 만들겠는가? 벽돌과 벽돌 사이에 바를 수 있는 시멘트 모르타르가 있어야 벽돌들을 쌓아서 집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시멘트 모르타르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책임감이다. 내 인생의 결과를 내가 책임지는 책임감이 당신의 인생을 행복으로 이끄는 시멘트 모르타르의 역할을 한다.   당신이 진정 인생을 책임지기로 결심한 바로 이 순간, 당신의 삶이 변화하기 시작하고 있다. *필자 소개:  부여다사랑병원 원장,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보건학과에서 병원경영 강의, 저서는 <심리학 테라피>, <병원이 경영을 만나다> 등. 
최종편집: 2025-05-02 02: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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