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기(정신과전문의) http://blog.naver.com/artppper
우리가 자식을 사랑하는 이유는 우선 당연히 핏줄이기 때문이다. 내 자식의 유전자의 절반은 나로부터 기인했다. 하지만 내 자식의 유전자의 절반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기인했다. 만약에 체세포 복제가 가능하게 되어서 내 몸의 세포 속의 유전자를 이용해서 나와 똑같은 자식을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하자. 오스틴 파워에 나온 `미니미` 처럼 말이다. 100% 나로부터 기인한 복제자식이기 때문에 더 사랑하게 될까?
나는 복제자식보다는 결혼해서 낳은 자식을 더 사랑할 것 같다. 우리가 아이를 사랑하는 이유는 나와 닮아서 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와 다른 점 때문에 새로운 가능성이 있고 키우는 재미가 더 있다.
우리는 자식들이 나의 장점은 닮고 나의 단점은 닮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이 도둑이더라도 자식은 도둑질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이 공부를 못했더라도 자식은 공부를 잘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단점을 닮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사람은 때때로 자신의 장단점을 착각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자신의 장점은 저돌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그 사람에 대해서 폭력적이라고 생각을 한다. 자신의 장점은 말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그 사람이 입을 열면 언제 말이 끝나나 지겹게 기다린다. 사실은 단점인데 본인은 장점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식에게 자신을 닮도록 강요하는 경우, 부모는 장점을 닮게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자식은 단점을 닮게 되는 것이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나온 부모의 경우 자신의 장점은 머리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을 할 것이고, 운동을 잘하는 부모의 경우 자신의 장점은 건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장점의 경우는 부모가 자식에게 무엇을 원하는지가 분명하다. 때때로 부모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아이에게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무엇을 원하는지가 명확하다. 아이가 힘들어하면 부모는 자신이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해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힘들어하면 고삐를 늦추게 되고 아이와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부모는 아이에게 특정한 윤리, 성격, 태도, 종교를 강요하는 수도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올바르다고 생각하기에 아이가 따르는 것을 당연히 여기게 되고 강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수도 있고 시대에 뒤떨어진 윤리적 태도를 강요하는 수도 있다. 한 예로 남자는 강해야 한다면서 우는 아이를 야단치기도 하고, 모름지기 여자는 부지런해야 한다고 하면서 어린 아이에게 집안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부모 자신이 의식하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특정 태도를 강요하는 수도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항상 코맹맹이 소리로 이쁜 척하면서 힘든 일은 요리조리 피하는 여성이 있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도 딸과 똑 같았다. 아이는 애기 짓을 할 때 어머니가 좋아한다는 것을 알기에 매사에 어리광투성이었다.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싫다고 하면 어머니 표정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알기에 아니라고 얘기하지도 못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조금만 힘든 일이 있으면 자신이 해볼 생각은 하지 않고 어리광을 피우면서 남에게 넘기기 일쑤다. 회사에서 처음에는 귀엽다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중에는 다들 같이 일하기를 피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지금도 어른스러운 다른 두 딸보다 그 어리광쟁이 딸만 감싸고돈다. 자신을 제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이 자신을 닮기를 바라는 동시에 자식이 자신과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지닌다. 특히 단점을 닮지 않기를 바란다. 일부 부모는 자식을 경쟁자로 생각하고 깎아내리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이 자기보다 훌륭하기를 바란다. 자식이 자신보다 더 공부도 잘하고 더 부유하게 살기를 바란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 속에는 자식이 자신과는 다르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도 일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부모도 사람이기에 생각의 폭은 한계가 있다. 자식이 다르게 살기를 바라는데 그 다르다는 방향이 나쁜 쪽이 아닌 좋은 쪽을 향하기를 바란다. 무엇이 좋은 것인지에 대한 가치판단은 그 사람이 살아온 시대의 상식을 벗어나기 힘들다. 따라서 부모는 항상 “공부 열심히 해라” “어디 가서든 필요한 사람이 되라” “아껴서 살라” 고 말하게 된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좋은 방향으로 자식이 자신과는 다르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때로는 “좋다” “나쁘다” 와는 또다른 차원에서 자식이 다르게 살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다. 평생 가정주부로 시부모와 남편만을 돌보면서 살고, 그 노력에 대해서 인정받지 못했던 어머니는 딸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커리어 우먼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평생 공장에서 주어진 일만 하면서 단순한 삶을 살던 아버지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여행작가로 살아가는 아들에 대해서 자기와는 또 다른 대단한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기존 자본주의 제도권이 아닌 다른 삶을 꿈꾸는 부모 중에는 공동체를 만들어서 아이들을 키우는 이들도 있다. 자식들은 본인들과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부모의 기대를 받는 아이들은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 비해서 너무 행복하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어렸을 때 자신도 나름 공부를 하는데 성적이 우수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부모는 공부에 관심이 없으면 기술이라도 익혀야 하지 않느냐면서 고등학교 졸업하면 공장에 가서 일이라도 하라고 했다. 그 때 부모에게 들은 말이 그에게는 지금도 상처로 남아 있다. 자신에 대한 기대를 부모가 포기한 순간으로 기억이 남기 때문이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아이에게 체벌을 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옳은 지 아니면 체벌을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 교육적으로 옳은 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그 사람은 만약에 부모가 아이를 진정 사랑한다면 때때로 체벌이 있어도 아이는 잘 자랄 것이고, 체벌이 없어도 아이는 잘 자랄 것이라고 대답을 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식에 대해서 포기를 하는 순간이다. 부모가 더 이상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자식에게 있어서 큰 상처다.
특히 이혼이 늘어나면서 물질적 감정적으로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재혼을 하는 경우 아이들이 계모 계부와 관계가 원만치 못해서 힘든 경우도 많다. 부모가 이혼을 한 후 부모 중 한쪽과 사는데 나머지 한쪽과의 관계가 불안정해지면서 아이들이 힘들어 한다.
이혼을 한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하는 경우 아버지 쪽 자식과 어머니 쪽 자식들이 함께 살면서 이복형제들끼리 갈등이 심하기도 하다. 상황이 복잡해지고 힘들어지다 보면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아이들은 부모의 기대를 잃고 부모가 자신을 포기했다는 절망감에 빠지기도 한다.
출산율 저하를 걱정하기에 앞서 이미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이 사회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부모도 사람이다. 세상이 바뀌게 되면 부모세대에서는 올바른 판단이 자식세대에서는 구닥다리 사고 방식이 되기도 한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영어를 가르쳤는데 미국이 쇠퇴하고 중국이 득세하면서 영어의 쓰임새가 줄어들 수도 있다. 의사가 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미래에는 의사가 쇠퇴하는 직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기대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관심과 기대는 사랑이다.
사랑은 에너지이고 힘이다. 부모가 가졌던 관심과 기대가 아이의 의식 그리고 무의식에 남게 된다. 꺼지지 않는 불씨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는 부모로부터 받은 꺼지지 않는 마음 속 불씨에서 비롯된다.
모든 부모는 어느 정도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자식을 키울 수밖에 없다. 극성스러운 부모가 무관심한 부모보다 낫다. 억지로라도 자식을 끌고 가려는 부모가 자식을 포기하는 부모보다 훌륭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필자 소개: 부여다사랑병원 원장,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보건학과에서 병원경영 강의, 저서는 <심리학 테라피>, <병원이 경영을 만나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