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애호가들로부터 많이 받아보는 질문이 하나있는데, 바로 우리나라 와인의 역사에 관한 것이다. 동호인 모임이나 인터넷 등으로 외국의 와인 역사는 꽤 많이 알고 있으나 정작 우리나라의 와인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74년 동양맥주 포도주공장 건설본부에서 와인에 입문하여 한국 포도주 산업의 초창기부터 일해 온 사람으로서, 적어도 와인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와인 애호가들이 우리나라의 근대 와인 역사에 대해서 알아두는 것이 참고가 되지 않을까 생각되어 이 글을 적는다.       근대 한국에서 와인 산업은 불모지였다. 1968년 농어촌개발공사와 일본 산토리사가 합자하여 한국산토리(주)를 설립하여 와인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나 판매가 부진하였고 이 회사는 나중에 해태주조에 인수되었으나 그 후에도 국산 와인은 거의 판매되지 않았다.   1970년대 초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도 가장 가난하였고 실업자들이 많았으며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안 되어 놀고 있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요즘에도 대학졸업자들이 졸업과 동시에 백수로 전락한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대학 졸업생의 수도 적으면서도 취업을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또 식량이 부족하여 봄철이면 춘궁기라 하여 서민들은 굶기를 밥 먹듯이 하던 어려운 시절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면 그 시절을 살아 온 사람으로 지금도 가슴이 아스라해 오는 것을 느낀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들 하던데 나뿐 아니라 이 시절을 살아왔던 사람들은 같은 추억을 가질 것으로 생각된다.    이 시기에는 막걸리, 소주 등의 술을 마셨는데 이런 주류들을 만들 때 사용한 원료가 서민들은 못 먹어서 굶어 죽던 그런 귀한 곡류들이었다. 물론 곡류를 대체하는 전분 물질 등을 일부 사용하였으나 외환 보유가 많지 못하여 정부 차원에서 시급하다고 정하는 물품 이외의 상품을 수입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에 가까웠으므로 주로 곡류를 사용하여 주류를 만들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가난한 국민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많이 가졌던 박정희 대통령이 서민들은 춘궁기에 못 먹어서 굶어죽는 사람도 생기는데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곡류로 술을 담근다는 보고를 받고 격노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시정하라고 지시하였는데 이에 따라 나온 것이 바로 `국민주 개발 정책`이었다. 이 정책의 요지는 `곡류는 국민들의 식량으로만 사용하고 술은 곡류가 아닌 다른 것으로 만들어 모든 국민이 마시는 술(국민주)로 하여 국민들의 양식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의 지시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대상을 잘 반영하는 정책으로 청와대에서 계획을 세우는데 저자도 몇 번 참가하여 내자호텔에서 청와대 비서관들과 이 정책의 보고서를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 때 추진했던 국민주 개발 정책의 핵심은 바로 국산 포도주 생산이었다. 비옥한 땅에서 재배되는 곡류와는 달리 포도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재배되는 상당히 특이한 작물이다. 따라서 비옥한 땅과 평지와 야산 등에는 곡류를 심어서 국민들의 식량으로 사용하고 척박한 곳에는 포도를 심어서 이것으로 포도주를 만들어 국민주로 사용하면 술 문제도 해결하고 부족한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이 사업에 참여했던 기업이 동양맥주(주), 백화양조(주), 해태주조(주) 3사였다. 이 회사들은 각각 영남과 호남에서 하천 부지나 산지 등을 개발하여 몇 만평 혹은 몇 십 만평씩의 포도원을 조성하였고 사이벨과 리스링 등의 양조용 포도 묘목을 도입하여 재배하였다. 나중에 진로, 금복주, 파라다이스, 대선 등의 다른 회사들도 동참하였다. 특히 동양맥주의 포도주 공장은 새마을 공장으로 지정을 받아 공장 건설에 여러 가지 혜택을 받았다. 당시의 공장 건설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각종 인, 허가 서류 등이 필요하였을 뿐만 아니라 관공서와의 업무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는데, 새마을 공장의 건설은 당시의 중앙정보부에서 앞장서서 해결해 주었고 또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애로사항을 파악하는 등의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들 회사 중에서 동양맥주의 마주앙 공장은 독일의 양조 기술과 현대식 기계를 수입하여서 와인을 만들었으며 그 후 마주앙은 `워싱턴 포스트`에 기사로 나오는 등 세계적 수준의 와인으로 그 품질을 인정 받게 되었다. 이렇게 생산된 와인이 동양맥주의 마주앙, 해태와 백화의 포도주였다. 이와 같은 박 대통령의 지시가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와인이 생산되지 못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박 대통령은 국민주의 생산뿐만 아니라 사후 관리도 잘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해들은 말로는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마주앙을 공식 만찬 와인으로 사용하라" 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외국 정상들의 한국 방문 시에는 청와대에서 만찬을 개최하였고 이 공식 만찬에는 꼭 마주앙을 `스테이츠 와인(공식 만찬주)`으로 사용하였다. 또 박 대통령은 국무위원, 도지사 등과의 식사 모임에서도 마주앙을 따르면서 “한국에서 만든 세계적인 와인”이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 이후의 대통령들도 얼마 전까지는 마주앙을 청와대 만찬 때에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스테이츠 와인`으로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많이 애용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청와대 만찬에 참석했던 장관, 도지사들도 돌아가서 휘하의 국장, 실장들과 회식을 하면서 “각하께서 칭찬하던 와인이라”고 하면서 마주앙을 마셨고, 이들 실, 국장들은 다시 과장들과의 회식에서 마주앙을 마시면서 "각하께서 `최고`라고 칭찬하던 와인"이라면서 마셨다고들 한다. 이렇게 하여 마주앙은 공무원 사회에서 위에서 아래로 전파되면서 일반 공무원들도 마주앙을 마시게 되었다. 와인이 뭔지도 모를 그 시기에 우리나라의 공무원들은 상당히 시대를 앞서가면서 와인 문화를 즐겼었다. 마주앙은 공무원 사회, 특히 회식 자리에서 인기가 좋았다고 알려졌다. 그 시기에는 와인을 즐긴다기 보다 아마도 갖다 부은 수준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러한 연유로 마주앙의 가격은 아주 쌌으나 공무원 사회에서 명절 선물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당시 오비 맥주 회사에서는 맥주 판매하느라 또 영업 사원이 와인을 알지도 못해 와인의 판매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으나 고맙게도 공무원들이 대신해서 마주앙을 팔아주었다고 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이라 “곡류로는 배고픈 국민들의 배를 채우는데 전량 사용하고, 술은 곡류가 아닌 포도로 만들어서 모든 국민들이 마시도록 하자”는 나라사랑과 서민사랑의 취지에서 탄생한 이 국산 포도주가 출하만 되면 바로 국민주가 되고 엄청 잘 판매될 것으로 생각하고 나도 상당히 기대를 하였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생산 초기에는 전혀 국민적인 관심을 받지도 못하였을 뿐 아니라 별로 팔리지도 않았다. 수천 년 이어오는 우리나라의 주류 문화에 서양의 와인 문화가 하루아침에 쉽게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성급한 생각이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하여튼 초기에 마주앙은 판매 부진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되었고 동양맥주에서는 마주앙을 맥주에 끼워 팔기를 하는 등으로 시장을 개척하는 노력을 하였고 또 공무원들이 많이 선전해주어서 어려운 시기를 지나게 되었다. 그 동안 미미하게 증가하던 판매량이 1980년대 초반부터는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로 들어서서 마주앙 공장을 포함한 국산 와인 공장들은 증설하기에 바빴다.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가 발전하였고 또 외국과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필연적으로 서양문화가 우리의 문화에 들어오는 등 세계화의 결과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러나 국산 와인의 호시절도 88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끝나고 말았다. 와인의 수입이 자유화하면서 유럽에서 만들어진 와인을 선호하는 애호가들이 많아지면서 수입 와인의 판매는 급격하게 늘어났고 반대로 국산 와인의 판매는 급격하게 감소했다. 1990년 최고를 기록한 이후 국산 와인의 판매는 매년 감소하였고 1996년에는 1990년 대비 절반으로 줄었고 그 이후에도 계속 감소하고 있으며 지금은 아마도 1/10 이하로 줄어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국산 와인 생산 회사들은 외국 와인의 수입 홍수 속에서 그 격랑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 다 쓰러지고 한국은 국산 와인이 없는, 와인 세계에서의 후진국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박정희 대통령이 살려놓은 국산 와인의 싹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수입 와인의 판매가 증가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필자 소개: 연세대 화공과 졸업, 미국 포도주 공장 연수(캘리포니아, 뉴욕 주), 독일 가이젠하임 포도주 대학에서 양조학 수학, 프랑스 보르도 소재 CAFA 와인스쿨 정규 소믈리에 과정 수료, 국산 와인 마주앙 개발 주역으로중앙대, 세종대 초빙교수 역임, 서울대, 연세대, 한양대, 단국대, 기업체 등에서 와인 특강, 저서로 `와인, 알고 마시면 두배로 즐겁다(세종서적)` `와인 인사이클로피디아(세종서적)`, `와인 가이드(중앙북스)` 등 다수.  
최종편집: 2025-05-02 0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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