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와인을 다룬 일본의 만화가 한국에서 출판되어 사회적으로 큰 반응을 일으켰고 모 대기업의 총수는 임직원들에게 이 책을 구입해  주기도 하고 또 읽어 보도록 추천하였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비슷하게 흉내 낸 드라마도 TV에 방영된 적이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어린 학생들도 와인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고서는 소믈리에가 되겠다고 난리들이다. 독자들도 이 책을 읽었거나 이 책에 관하여 이야기해 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초보자를 위한 와인 책이 많이 출판되었으나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지는 못 하였는데, 이 책은 기존의 와인 책들과는 달리 만화책이었다. 엄청난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와인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와인에 관심이 없던 일반인들도 재미있게 읽고 와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만화책으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와인에 관심이 많아져서 와인의 판매가  늘어나는 등 와인 산업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가 일본 사람이지만 많은 아시아 나라들에서도 비슷하게 인기가 많았고, 유럽의 와인회사 직원들도 소식을 듣고는 상담 때에 “망가, 망가” 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이렇게 독자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와인 책이 앞으로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보고 일반인이 재미있게 와인에 접근하게 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와인 업계에서 직업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만화에 푹 빠져서 만화에 나오는 대로 흉내를 내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여 와인 업계에서 오래 일해 온 사람으로서 몇 가지를 짚고 넘어 가고자 한다. 물론 만화책의 내용을 하나씩 지적하면서 옳다, 그르다 따지고 싶지는 않다. 다만 만화에서 크게 잘못 이야기되고 있는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와인의 맛을 볼 때에 냄새를 맡으면서 자주 머릿속에 여자의 형상을 그리고 있다. 이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이 “나는 왜 여자의 형상이 머리에 안 떠오르나?” “나는 와인 맛보는 재능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 본 일이 있다. 여자의 형상이 머릿속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아주 정상이니 걱정하지 말기를 바란다. 와인을 마시면서 머릿속에 여자가 나타난다는 것 자체가 아주 개인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일 뿐이다.   내가 포도주 공장에서 일하면서 또 미국, 독일, 프랑스에서 와인 공부를 하면서 와인 맛보는 수업을 많이 받았는데 와인의 맛을 보고 표현을 할 때에는 구체적이고도 객관적인 표현을 하여서 남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배웠다. 사람마다 자기가 느끼는 맛을 표현할 때 나름대로의 추상적인 용어를 사용하면 듣는 사람이 “도대체 이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하고 생각할 것이다. 혼자서 맛보고 즐기고 끝나는 경우에야 무슨 말로 표현하든 상관이 없으나 내가 마신 와인의 맛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에는 서로가 알 수 있는 그런 용어를 사용해야 와인의 맛을 공감하고 같이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특히 프랑스 보르도에 있는 와인스쿨의 소믈리에 과정에서는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보고, 입안 전체에서 오는 느낌을  본인이 정확하게 느껴야 하고 또 이러한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한다. 이 때 실제로 잘 사용되고 있는 객관적이면서 정해진 용어들을 활용하도록 배웠다.   조금 자세히 말하면 눈으로 보는 와인 색깔의 종류, 짙기, 투명도, 점도 등을 표현하는 용어들을 배우고 또 코로 냄새를 맡을 때에 포도의 향인 아로마와 숙성향인 부케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용어들, 또 혀 맛보고 표현할 때 사용되는 용어들, 기타 와인에 관한 표현을 할 때 사용되는 용어들을 예시하고 이러한 구체적이고도 객관적인 용어들을 사용하여 와인의 맛을 표현하는 훈련을 하였다. 이런 어휘를 많이 알고 있으면서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는 것이 소믈리에나 와인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 기타 와인 전문가들이 표현하는 방법이다. 부탁하거니와 와인 업계에서 직업적으로 혹은 전문적으로 일을 하는 분들은 와인 냄새를 맡으면서 여인의 형상이 나타난다는 등의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말고 객관적이고 남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가능하면 정해진 용어들을 사용하기 바란다.   둘째, 디캔팅을 하는 행동에 관해서 한마디를 하지 않을 수 없다.그 책을 보면 와인 병을 쳐들고 와인을 무슨 명주실을 뽑듯이 가느다랗게 뽑아서 디캔터에 따르는, 재미있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이것을 보고 소믈리에들이 따라한답시고 이상하고도 해괴망측한 행동으로 디캔팅을 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일반 아마추어들이야 디캔팅을 잘 알지 못하니 따라할 수도 있다손치더라도 적어도 소믈리에가 직업인 사람들이 만화책에 나온 것을 흉내 내고 있다니 한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실은 무슨 실을 뽑아! 도대체가 이런 해괴한 모양의 디캔팅은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행동이다. 디캔팅이란 와인 병 속에 있는 침전물을 미리 제거하여 와인을 잔에 따를 때에 와인 잔 속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여 손님이 좋은 와인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디캔팅하는 요령은 왼손에는 디캔터를, 오른손에는 와인 병을 잡는데 와인 병이 뉘어진 상태에서 흔들리지 않게 서서히 와인을 디캔터에 따르게 된다. 병의 어깨 부분 아래에 촛불을 켜 놓고서 병의 위쪽에서 와인을 주시하면 처음에는 맑은 와인만 지나다가 얼마 후에는 침전물이 지나가는 것이 보이는데 적당한 시점에서 디캔팅을 중지하면 디캔터 속에는 맑은 와인이, 병 속에는 침전물이 많이 든 와인이 남게 된다. 이렇게 하여 디캔터 속의 맑은 와인을 서빙한다.   디캔팅은 항상 촛불 위에서 실시하여 침전물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해야 한다. 그런데 손을 높이 쳐들고서 무슨 명주실을 뽑듯이 가늘게 뽑아가지고서야 어떻게 촛불 위에서 침전물을 볼 수가 있겠는가? 디캔팅은 그런 폼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혹시라도 현직 소믈리에들은 이런 흉내라도 내지 말기를 바란다. 또 이런 만화, 아니 엉뚱한 모션과 표현을 하는 드라마가 만들어질까 걱정되기도 한다.   디캔팅은 침전물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디캔팅을 하는 과정에 와인이 교반되므로 와인 속에 포화되어있던 향이 많이 휘발하여 와인의 향을 좋게 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디캔팅에 관하여는 따로 자세히 설명할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   *필자 소개: 연세대 화공과 졸업, 미국 포도주 공장 연수(캘리포니아, 뉴욕 주), 독일 가이젠하임 포도주 대학에서 양조학 수학, 프랑스 보르도 소재 CAFA 와인스쿨 정규 소믈리에 과정 수료, 국산 와인 마주앙 개발 주역으로중앙대, 세종대 초빙교수 역임, 서울대, 연세대, 한양대, 단국대, 기업체 등에서 와인 특강, 저서로 `와인, 알고 마시면 두배로 즐겁다(세종서적)` `와인 인사이클로피디아(세종서적)`, `와인 가이드(중앙북스)` 등 다수.    
최종편집: 2025-05-02 0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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