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이나 바에서 여럿이 같이 와인을 마시는 경우 코르크 마개를 따고 마시기 전에 꼭 한 사람이 대표로 와인의 맛을 보게 되는데 이런 것을 와인 테이스팅(tasting)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테이스팅을 하고 와인을 마신 경험이 있을 것이다.
테이스팅은 와인의 맛을 본다는 뜻으로 와인 공장, 수입회사, 업소 등에서 또 개인들이 와인을 구입하고 품질에 이상은 없는지, 원하는 품질의 와인인지, 기대하는 맛은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그런데 왜 여럿이 같이 맛을 보면 될 일이지, 꼭 한사람이 대표로 맛을 보아야 하고 그 사람이 테이스팅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침을 삼키면서 쳐다보고 있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테이스팅의 유래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야기는 옛날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 처음으로 강력한 제국이었던 로마는 유럽으로 국토를 확장하면서 획득한 전리품 등으로 상류층은 경제적으로 상당히 부유하게 살았다. 그래서 상류층 인사들은 거의 매일 파티를 하는 등 사교생활을 즐기면서 와인을 많이 마셨다.
로마시대의 정치는 상당히 권모술수와 음모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로원과 군인, 상인 등 많은 집단들의 권력투쟁이 수없이 이어져 오던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평소에 자기와 사사건건 대립하는 반대당의 거물 원로 때문에 화가 난 거물 정치인이 “저 인간하고는 도저히 같이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눈엣가시 같은 그 인간을 제거해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계획을 세웠다.
자기 집에서 파티를 열어 많은 정객들을 초대하면서, 거절할 수 없는 구실을 만들어 없어져야할 그 인간과 일당들을 초대하였던 것이다. 참석한 정적들이 처음에는 경계심을 가지고, 와인을 마실 때도 또 식사를 할 때도 옆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아주 조금씩 입에만 적시면서 와인을 마셨는데 시간이 지나도 다른 특이한 위험이 보이지 않으므로 서서히 긴장이 완화되었고 파티의 분위기에 따라 조금씩 더 와인을 마시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별 탈이 없구나” 하고 안심을 하면서 와인을 본격적으로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하였다. 파티가 무르익어 갈 때 이러한 분위기를 간파한 주인이 지시를 내려, 하인들이 비밀리에 독약을 넣은 와인을 정적들의 잔에만 따라 자연스럽게 마시게 하였고, 그 와인을 마신 정적들이 모두 독살되자, 드디어 그는 권력을 잡았다. 이 후부터는 남의 집에 초대를 받아 파티에 참석하게 되는 경우, 반드시 파티의 호스트로 하여금 와인을 먼저 마시도록 하고 와인을 마신 호스트가 죽지 않고 멀쩡한지 어떤지를 확인한 후에 자기 잔에 와인을 따르도록 하였다는 것이 바로 와인 테이스팅을 하게 된 유래라고 한다.
또하나 그럴듯한 설이 있다. “어떤 사람이 아주 귀한 손님을 집으로 초대하여 파티를 하게 되었는데, 집에 보관하고 있는 와인 중에서 특별히 귀한 와인을 손님에게 서빙 하게 되었다. 테이스팅을 하지 않고 손님에게 와인을 따르고서 좋은 와인이라고 자랑을 하였는데 하필이면 그 와인이 변질된 것이어서 손님에게 큰 결례를 하였다" 는 이야기다. 이런 일은 예전에는 아주 흔했다.
옛날에는 와인을 양조할 때 과학적으로 또 미생물적으로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하던 시대라 병에 담긴 와인 자체도 문제가 많았고 병에 담긴 뒤에도 코르크나 용기 문제로 변질되는 일이 다반사이었다. 뿐만 아니라 보관 조건도 잘 모르던 시절이라 병 속의 와인의 변화를 잘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잘 못된 와인이 많았었다. 특히 귀하다고 오래 보관하는 와인은 더욱 변질될 위험이 많았다. 이후부터 손님에게 와인을 권할 때에는 꼭 미리 와인 맛을 보고 난후에 이상이 없으면 비로소 손님에게 와인을 따랐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손님에게 와인을 서빙 할 때에는 꼭 호스트가 먼저 와인 맛을 보게 되었는데 이것이 테이스팅의 시작이라는 이야기다.
와인 테이스팅의 유래와 관련, 이런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여러분들은 어느 쪽이 더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가.
여러분도 혹 누구의 집에 초대받아 파티에 참석하게 될 경우 특별히 호스트가 평소에 별로 미덥지 않은 사람이라면 꼭 이렇게 해보기 바란다. “당신이 먼저 맛보시오” 라고.
주인이 마신 뒤에 멀쩡하게 살아 있는지를 확인한 이후에 와인을 마시는 것이 당신의 안전을 위하여 좋을 것이다. 절대로 독약을 넣을 사람이 아니라고? 요즘 세상에 사람을 어떻게 믿는가. 마누라도 못 믿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못 믿는 세상이 아닌가.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다.
*필자 소개: 연세대 화공과 졸업, 미국 포도주 공장 연수(캘리포니아, 뉴욕 주), 독일 가이젠하임 포도주 대학에서 양조학 수학, 프랑스 보르도 소재 CAFA 와인스쿨 정규 소믈리에 과정 수료, 국산 와인 마주앙 개발 주역으로 중앙대, 세종대 초빙교수 역임, 서울대, 연세대, 한양대, 단국대, 기업체 등에서 와인 특강, 저서로 `와인, 알고 마시면 두배로 즐겁다(세종서적)` `와인 인사이클로피디아(세종서적)`, `와인 가이드(중앙북스)`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