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기(정신과 전문의) http://blog.naver.com/artppper
지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 인생을 돌이켜보게 된다. 20대에 성장이 멈추게 되면 30대부터 육체적으로는 조금씩 쇠퇴하게 된다. 엄청난 노력을 해야 20대의 몸매, 20대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한 때는 방어율이 영점대였던 투수, 타율이 4할에 달하는 타자도 나이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프로야구 최고령 선수였던 송진우 회장도 2009년에 은퇴했다. 2004년에는 40세 8개월의 나이로 최고령 퍼펙트게임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던 메이저 리그 통산 303승을 올린 랜디 존슨도 22년간의 긴 현역생활을 끝내고 은퇴했다.
하지만 정신은 다르다. 노력하기에 따라서 우리의 정신은 치매라는 뇌의 생물학적 변화를 맞이하지 않는 한 계속적으로 성장을 한다. 더구나 인류는 다른 동물은 모르는 세상의 진실을 알고 있다. 그러한 진실이 인간을 성숙시키는데 한 몫을 한다.
우선 인간만이 언젠가 모두 다 죽는다는 것을 인식한다. 감기에 걸릴 확률보다 죽을 확률이 더 확실하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죽을 확률이 더 확실하다.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동물들은 남들에게는 죽음이 닥쳐도 자신은 죽음을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동물을 죽이면서도 나는 죽지 않는다고 생각을 한다. 인간만이 우리 모두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기에 얼마나 삶이 무가치한지를 알며 동시에 삶이 단 한번 밖에 찾아오지 않는 얼마나 값진 선물인지도 안다. 공고해보이고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 같던 것들이 언젠가 눈에서 모두 자취를 감춘다는 것을 안다.
한번 사는 인생이기에 보람차게 살아야 한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왜 그 때 그렇게 살았는 지 후회되는 일투성이다. 너무 공부만 하고 일만 하고 인생을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 후회가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놀기만 하고 이루어 놓은 것 없이 인생을 살아서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이 진정 원하던 사랑을 가족 때문에 포기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 인생에는 언젠가 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할 지 결정한다면 우리는 조금은 후회가 덜한 삶을 살 것이다.
인간은 맹목적인 욕망 밑에 숨어 있는 원인을 자각할 수 있다. 튼튼한 회사에서 매달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데도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우두머리가 되고 싶은 동물의 욕구와 큰 차이가 없다. 죽어라고 일하면서도 조직에서 못 빠져나오는 것은 개미의 행동과 유사하다. 주가가 오르고 집값이 오르면 상투를 잡는 것일지 모른다고 하면서도 뛰어들게 되는 습성은, 어쩌다 한번 사냥에 성공하면 1~2주일 버틸 음식을 한꺼번에 먹어야 하던 맹수의 탐식에서 비롯된다.
부모가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감싸게 되는 이유, 노후대책은 고사하고 하루 생활하기도 힘든데 아이들 과외비로 수입의 상당 부분을 쓰는 이유는 자식의 절반은 정확히 나로부터 기인한다는 생물학적 법칙에서 기인한다. 인간이기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인생의 미로에서 길을 헤맬 때 남의 조건에 귀 기울이고 책을 읽으면서 올바른 길을 찾아 나가고자 한다. 실제로는 무조건적인 반사행동을 하면서 그것을 내 자유의지라고 착각을 하다가도, 지혜를 맞닥뜨리게 되면 그릇된 행동을 멈추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평생에 걸쳐 실수를 한다. 지혜 있는 자들은 평생에 걸쳐 실수를 분석하고 반성한다. 우리가 하는 실수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바위와 같은 장애물이다. 우리의 인생 껍질은 실수라는 바위에 부닥칠 때마다 금이 가고 깨어진다. 그러면서 삶이 조금씩 달라져간다.
사람들은 때때로 언제가 가장 행복했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대학교 때가 제일 좋았어.” “초등학교 때가 좋았어.” “군대 때가 좋았어.” "솔로 때가 제일 좋았어." 하면서 과거의 어느 한 순간에 대해 애착을 보이는 분들이 있다. 물론 삶이 힘들 때 돌이켜보고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이러한 위안을 얻는 순간이 없다면 삶은 삭막하고 인생은 무너질 것이다. 자신의 인생 중 과거의 순간에 위안을 받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천국, 극락, 에덴동산, 황금시대, 요순시대와 같은 신화적 세계를 상상하며 위안을 받는다.
도처에 사랑 투성이다. 노래는 모두 사랑에 대한 가사며 드라마는 모두 남녀의 사랑이 주제다. 그런데 실제 세상에서 유행가 가사 같고 드라마 같은 사랑은 거의 없다. 우리는 있지는 않지만 있을 법한 사랑을 생각하면서 위로를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생각하면서 위로를 받는다. 레닌과 함께 러시아 혁명을 이끌어냈던 이들에게 있어서 모든 모순이 해결된 사회주의 사회는 위로의 대상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은 한 해가 지나가고 새해를 맞이할 때 마다 그래도 이미 과거가 된 작년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삶이 아닐까? 매년 더 자유로운 삶을 산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나의 희망과 위안을 과거에서 찾거나, 세상의 변화에서 찾거나, 사랑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보다 나은 미래에서 찾아야 한다.
아주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씩 어제보다 나은 오늘, 지난 달 보다 나은 이 달, 지난해 보다 나은 올해가 된다면 그 조금의 차이가 쌓여 내일 죽어도 아깝지 않은 값진 인생을 만들게 될 것이다. 그 결과에 상관없이 내가 선택하고 내가 땀 흘리고 내가 고통 받았기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삶을 올해는 살게 되었으면 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모두 버리기 아까운 올 한해를 만드시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필자 소개: 부여다사랑병원 원장,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보건학과에서 병원경영 강의, 저서는 <심리학 테라피>, <병원이 경영을 만나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