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기(정신과전문의) http://blog.naver.com/artppper
똑 같이 고도 300m의 산도 오르고자 하는 열의가 있는 사람에게는 낮게 느껴질 것이고, 억지로 오르는 사람에게는 높게 느껴질 것이다. 객관적인 어려움 못지 않게 본인이 가지는 열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자기계발 책들을 보게 되면 에너지, 열정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자기계발책을 읽고 나면 "아! 열정이 참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직장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에 대해서 억지로 열의를 가지고 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며칠 가기 어렵다. 열정이라는 것이 억지로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생기고 그것에 열정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 연애와 비슷하다. 억지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수 없듯이 억지로 열정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만약 내가 열정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첫번째 행운이다.
만약 내가 남보다 그 일을 탁월하게 잘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두번째 행운이다. 얼마전 이승철 씨가 가수되기가 판검사 되기 보다 더 어렵다는 말을 했다. 경쟁이 더 엄청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 바로 지금 행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상황 상황 귀로 듣고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내가 남보다 잘 하는지 못 하는 지 순간 순간 비교할 수 있다. 좋아지는 것이 매 순간 느껴진다.
하지만 공부는 그렇지 않다. 암기를 하고, 기억을 하는 것 자체가 기쁨인 사람은 없다. 공부는 지금 하지만 내가 얼마나 성취가 뛰어난지는 한달, 혹은 일년 후의 시험으로 결정이 된다. 따라서 연예인, 운동선수, 사업가, 투자전문가, 요리사 같은 일이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문제는,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 일에 열정이 있더라도 잘하지 못하고 성과가 좋지 못하면 그 열정을 이어갈 수 없다. 내가 열정이 끝없이 있더라도 남이 써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누구나 학교다니면서 한번쯤은 이를 악물고 열심히 공부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달, 두달, 세달 시험을 봐도 성과가 없으면 그 쯤해서 열정은 시들해진다. 부모들은 아이가 공부를 안해서 성적이 안 나온다고 하지만, 사실 아이들은 공부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열심히 안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열정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 남보다 잘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행복한 것이다.
만약 그 일이 사람들이 인정을 해주는 것이라면 그것은 세번째 행운이다. 어떤 사람이 잠을 자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한번 자면 깨지를 않는다. 아무 곳에서나 잘 수 있다. 그 사람은 어떻게 해야 잠을 잘 잘지 연구한다. 침대에서 자는 것, 방바닥에서 자는 것, 길에서 자는 것 그 차이를 느끼고 즐긴다. 방바닥에서 자더라도 어떤 요를 깔고, 어떤 이불을 덮느냐에 대한 느낌을 잘 느낀다. 그는 잠의 전문가다. 잠에 열정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그를 그냥 잠만 자려고 하는 게으른 사람으로 취급할 뿐이다. 와인을 시음하는 전문가가 있듯이 그가 이불회사 혹은 침대회사에 취직하지 않는 한 그의 재능은 소용없다. 어쩌면 커다란 침대회사에는 이렇게 전문적으로 잠을 자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도둑질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소매치기의 전문가다. 그는 세상의 인정을 받기는 커녕 감옥을 들락날락하게 된다. 지하철에 대한 모든 것을 외우고, 지하철 소리만 들어도 몇호차인지 아는 전문가도 마찬가지다. 그가 열정이 있고, 잘 하지만, 그것이 세상에서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일이라면 문제다. 그는 먹고 사는 일에서는 무미건조하고 지겨운 삶을 살고,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는 취미에 대해서 열정을 가지게 된다.
그나마 열정을 가질 대상이 없는 것보다는 열정을 가질 취미가 있는 것이 나을 수도 있지만, 그 간극이 커질수록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그의 실제적 삶은 상대적으로 비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일을 벌리는 시점이 세상의 분위기와 맞아 떨어지면 그것이 대단한 네번째 행운을 가져올 수도 있다. 커피 전문가인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이렇게 부각될 것이라는 것은 불과 몇년전만 해도 아무도 몰랐다. 인터넷 쇼핑몰에 가면 바리스타 중 일부는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상당한 매출을 올리기도 한다.
과거에 코미디언 혹은 개그맨은 그 수입이 영화배우나 탤런트에 비하면 훨씬 적었다. 유재석, 강호동씨의 수입은 엔터테인먼트 종사자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한다. 예능이 주류가 되는 세상이 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시기가 세상이 움직이는 방향과 엇박자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열정을 지니고 있더라도 불경기에 사업을 시작하면 성장하기 힘들다.
반대로 경기가 좋을 때 사업을 시작하면 세상의 힘을 등에 엎고 빨리 확장할 수 있다. 나의 열정이 세상의 변화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성공을 가져올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현재 열정을 쏟을 일이 있고, 그 일을 잘 할 수 있고, 그 일이 세상에서 인정받는 일이라면 당신은 아직도 행복한 사람이다. 만약에 지금의 일에 더 이상 쥐어 짤 열정이 남아 있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자기계발책을 읽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생계를 당장 내팽개칠 수도 없다. 꾸준히 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일이 없나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 열정이 없는 삶은 얼어붙은 삶이니까.
만약 당신이 열정을 가질 일이 생겼다면 그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처음부터 커다란 행운을 꿈꾸지 않는 것이다. 그 일이 세상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일이라면 좌절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열정을 잃지 않고 노력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필자 소개: 부여다사랑병원 원장,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보건학과에서 병원경영 강의, 저서는 <심리학 테라피>, <병원이 경영을 만나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