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기(정신과전문의) http://blog.naver.com/artppper
과거에는 인간은 백지 상태에서 큰다고 생각을 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스키너의 행동이론은 모두 인간은 백지라는 이론에 근거한다. 그것이 무의식이 되었건, 의식이 되었건, 인지행동이 되었건 백지 상태에 쓰여진 인생이라는 글씨를 다시 지우고 쓰면 된다는 것이 심리학 전성기의 이론의 주된 요지다.
하지만 DNA, 유전자 연구가 본격화 되면서 인간의 마음은 백지가 아니라는 것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누구는 키가 크고 누구는 키가 작듯이, 누구는 코가 오똑하고 누구는 납작코이듯이, 인간의 마음도 어느 정도는 타고난다는 것이 지금은 정설이다.
사소한 스트레스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항상 허허 웃으면서 즐겁게 사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성격의 차이는 상당부분 결국 뇌에서 기인한다.
과거에는 기억이라고 하면 완전히 심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기억의 상당부분이 결국은 뇌안에서 이루어지는 분자물리학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밝혀 냈다.
뇌속에는 뉴론이라는 신경세포가 있고 뇌세포를 연결하는 시냅스라는 구조가 있다. 시냅스라는 구조를 통해서 전기전도 및 신경전달물질을 통해서 생각과 감정이 형성되고 전달된다. 대표적인 예가 기억이다. 새로운 정보가 습득되고, 중요성이 판별되고, 저장되고, 저장된 정보를 찾아 사용하는 것은 뇌에 퍼져있는 뉴론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사를 처음 해서 길을 찾아갈 때는 신경을 써야 하지만, 나중에 익숙해지면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집을 찾아갈 수 있다. 처음 책을 읽으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여러번 읽으면 이해도 가고 책의 어디쯤에 어떤 대목이 있는지 알게 된다. 처음 아이들이 글씨를 쓸 때는 연필을 잡는 것도 도전이지만, 글씨를 쓰는 것은 나중에는 무의식적으로 된다. 운전도 그렇고 타이핑도 그렇다.
습관도 결국 그런 것이다. 습관이라는 것은 결국 뇌 속에 그 습관에 해당되는 뉴론 사이의 네트워크가 생긴다는 것이다. 나쁜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뇌 속에 이미 형성된, 어떤 의미에서 물리적인 네트워크를 바꾼다는 것이다. 매일 반복된 행동을 통해서 뇌 속의 신경네크워크를 바꾸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햇빛에 그을린 피부 색깔이 원래의 피부 색깔로 돌아가기에도 많은 시간이 흐른다. 하물며 뇌의 신경네트워크가 반복적이고 의식적인 행동을 통해서 없어지거나 바뀌어지는 것은 어렵다.
즉, 습관은 지우개로 지우기 쉽게 백지에 쓰여진 글씨가 아니다. 대리석에 조각된 문양이라는 것이 오히려 적절한 비유일 것이다. 그래서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뇌의 네트워크는 융통성이 있다. 따라서 꾸준히 노력하면 바뀔 수 있다.
게으름, 노심초사, 화내기, 폭식, 폭주, 늦잠 같은 습관을 바꾸다가 포기하고 싶을 때는 뇌를 떠올려라. 뇌의 구조를 떠올리고 뇌의 네트워크를 떠올리고 집중해라. 그러면 나쁜 습관을 버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 소개: 부여다사랑병원 원장,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보건학과에서 병원경영 강의, 저서는 <심리학 테라피>, <병원이 경영을 만나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