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기(정신과 전문의)  http://blog.naver.com/artppper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처음 하는 일은 우는 것이다. 바깥 세상에 나와서 하는 생애 첫 호흡이라는 역사적 의미도 있지만, 어쩌면 엄마 뱃속과는 너무 다른 세상을 접하는데서 오는 불안도 그 울음에 한 몫을 할 것이다. 부모의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사소한 일에도 불안해지고 울면서 자신을 달랜다. 울음으로써 부모를 부른다. 그러다가 6~8개월이 되면 항상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과 낯선 이를 구분할 수 있다. 그래서 평소 부모형제와 지내던 집에 낯선 사람이 오면 빤히 쳐다본다. 이 사람을 믿어도 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다. 판단이라기보다는 느낌이 더 적당한 말일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상대방을 바라보고 느낌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상대방이 뭔가 마음에 안 들거나 혹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면 울기 시작한다. 중요한 손님이라도 왔는데 아이가 계속 울기만 하면 집주인은 난감해진다. 하지만 개월 수가 진행이 되면서 아이는 점점 안정감을 가지기 시작한다. 낯선 사람이 오더라도 자신을 해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10개월쯤 되면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을 경우 유난히 더 불안하게 된다. 대개 그 대상은 어머니가 되지만 때로는 할머니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아이를 돌봐주는 분이 그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때의 불안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나를 돌봐주는 이의 사랑을 완전히 확신했기 때문에 너무 좋아서 떨어지고 싶지 않다. 동시에 나를 돌봐주는 그 사람이 나와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분리된 남이라는 것을 점점 더 인식해간다.   우리는 이런 이중적인 상황을 나중에 사랑을 하면서 다시 겪게 된다. 사랑이 더해갈수록 헤어지고 싶지 않지만, 사랑이 더해갈수록 나와 상대방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동시에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의 시기는 길지 않다. 아이가 말귀를 알아듣게 되면서, 부모는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야단을 치기 시작한다.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안 들지 걱정하기 시작한다. 혹시 어머니 몰래 동전이라도 훔치는 일을 하거나, 가지 말라고 한 곳에 가면 들키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나쁜 짓을 하고 나서 불안한 것은 죄책감에서 비롯되는데 이 나이 때부터 생겨난다. 만약에 이유 없이 아이를 반복적으로 구타하는 부모를 만난 아이는 앞으로 인생에 불행이 있을 때마다 몸이 불안을 기억하게 된다.   학교에 가면서는 시험 때문에 주기적으로 불안하게 된다. 어렸을 때 우리는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귀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아이의 밥 먹는 모습, 잠자는 모습, 걷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는 좋아한다. 아이가 하는 것이 다 귀엽고 예쁘다. 아이는 자신이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고 여긴다. 존중받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에 가면서 그 즐거운 시절은 모두 끝이 난다. 아이는 공부를 잘해야 인정을 받는다. 그게 아니면 운동이 되었건 예능이 되었건 재능이 있어야 인정을 받는다. 그리고 그 재능을 인정받는 방법은 시험이다.   시험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오랫동안 공부한 것을 제한된 시간 안에 표현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시험은 어떤 점에서 속임수를 동반하고 있다. 쉬운 문제도 있지만 일부러 사람들이 틀리기 쉽게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거기에다가 대부분의 시험은 내가 가진 특정한 능력을 측정할 뿐이다. 시험의 결과가 안 좋으면 기분이 나쁘다. 시험을 못 봤다고 내가 모자란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 누구나 논리로는 이해한다. 하지만 감정은 그렇지 않다. 시험을 못 보면 마치 내가 모든 점에서 부족한 인간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고도 시험을 치는 꿈을 꾼다. 뭔가 일이 잘 안 풀리고 궁지에 몰리면 시간이 다가오는데 풀어야 할 문제는 많이 남아 있는 꿈을 꾼다. 학교 다니는 동안 불안이 뇌리에 박히는 것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면 모든 인간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누군가 죽었다고 하면 멀리 떠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사람이 죽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아이들이 이 나이 때 귀신 이야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동시에 좋아하는 것은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대학까지는 우리는 정해진 틀 안에서 진도를 나간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정해진 삶이 있다. 대학을 나와서 사회에 발을 디디면 불확실성이 점점 많아진다. 직장을 잡지 못하면 이러다가 계속 뒤처지게 되는 것이 아닌 지 불안하다. 이성 관계는 사람들 사이의 마음의 관계이기에 불확실하다. 막상 결혼을 생각하게 될 사람이 생기면 이 사람이 나와 안 맞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고, 결혼이 늦어지게 되면 이러다 평생 싱글로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다.   그러다 보면 성인기가 지나가고 중년기로 돌입한다. 육체적으로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한다. 오래 앉아서 일하면 허리도 아파온다. 감기라도 걸리면 아픈 기간이 오래간다. 마음도 편치 않다. 젊었을 때는 다음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덧 중년이 되면 지금 밀려나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만 같다. 불안하다. 경기가 나빠져서 해고 명단에라도 들어가면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다. 과거에 심리학자들이 청소년기에 관심을 많이 두었다면 최근에는 중년기에 관심을 많이 둔다. 과거에 평균수명이 짧았을 때는 청소년기가 삶의 전환점이었다면, 지금은 고령화 때문에 수명이 길어져서 중년기가 삶의 전환점을 도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노년기로 돌입하면 질병이 두렵다. 암에 걸려서 세상을 떠나는 이들도 주위에 늘어나고 뇌출혈 때문에 반신불수가 되는 이들도 생긴다. 기억력도 과거 같지 않다. 치매라도 걸릴까 무섭다. 그리고 죽음이 조금씩 다가온다. 어렸을 때 심한 불안을 느끼고 한참을 피해왔던 죽음의 공포가 몸에 와 닫기 시작한다. 중년기 때 삶의 방향을 잘 잡았던 이들에게는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마음속에 위로가 되는 기억들이 있다. 하지만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온 이들에게 죽음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다. 불안이 점점 심해지고 그 때문에 더욱 탐욕스러워지는 이들도 있다. 건강식품을 먹고,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려 애쓴다.  돈이라도 불어나면 죽음이 오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어김없이 찾아온다.   이렇게 보면 삶은 끝없는 불안이다. 불안하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것들을 한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오락을 하고 문자를 날린다. 돈을 모은다. 늙지 않기 위해 운동을 하고 영양제를 먹는다. 하지만 불안을 무조건 피하고 덮으려는 것은 그 한계가 있다. 차라리 역으로 어느 정도 불안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순간순간 더욱 값진 선택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불안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안을 달래줄 수 있는 내 안의 그 무언가를 형성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느낌이 있다면 덜 불안할 수도 있다. 나의 특정한 점이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삶에 일관된 방향성이 있다면 그 역시 도움이 된다. 값진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값진 감정을 많이 느끼고 값진 기억이 존재한다면 불안이 내 영혼을 잠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 소개:  부여다사랑병원 원장,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보건학과에서 병원경영 강의, 저서는 <심리학 테라피>, <병원이 경영을 만나다> 등.  
최종편집: 2025-05-02 03:3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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