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기(정신과 전문의) http://blog.naver.com/artppper
텔레비전을 틀다 보면 말썽꾸러기 아이를 착한 아이로 바꾸는 프로가 가끔 눈에 띈다. 대체적으로 부모의 태도가 바뀌면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내용이다. 바꿔 말하면 그 동안 아이가 문제행동을 일으켰던 것이 부모의 무지 때문이라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한 계몽적 프로는 소위 올바른 양육 태도를 알려주는 장점이 있는 반면, 지금도 나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 부모에게 죄책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자식이 정신분열증과 같은 정신질환에 걸리는 경우 어떻게 환자를 대해야 좋은 것이냐고 묻는 부모가 많다. 특히 정신질환은 재발을 잘하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부모도 지치게 마련이다. 그런데 부모의 사랑은 끝이 없기에 환자의 증상이 더 이상 나아지지 않으면 자신을 탓하게 된다. 조금 더 일찍 알아서 치료를 했다면, 조금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하고 말이다.
처음 정신과 레지던트를 했을 때는 이러한 부모들의 질문에 대해서 나름 최선의 충고를 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한 충고들은 거의 효과가 없었다. 우선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그 집의 역사인 것이다. 10년, 20년, 30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방식, 자식이 부모를 대하는 방식이 하루아침에 바뀌기 어렵다.
텔레비전 프로의 경우 촬영이 이루어진다. 누군가 자신을 관찰하고 촬영해서 기록을 남긴다는 것 때문에 부모와 자식 모두 평소와 다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중간 중간 촬영이 멈출 때도 있지만 언제 다시 촬영이 이루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말한 방식을 유지한다. 방송에 나온다는 것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대단한 인센티브다. 하지만 1년, 2년, 10년 후까지 그런 태도가 이루어질까 하면 나는 의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충고를 아낀다. 대신 아버지가 환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어머니가 환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환자가 아버지를 어떻게 대하는지, 환자가 어머니를 어떻게 대하는지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만약 부모가 자식을 구타하고,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지 않는다면 지금 가족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최선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만약 누가 나와 똑같은 부모를 만나서, 나와 똑같은 학교를 나오고, 나와 똑같은 여인과 결혼했다면 그가 나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그런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나인 것이다. 이번에는 다른 가정을 해보자. 내가 어려움에 처한 가정의 부모 중 한명과 똑같은 집에 태어나, 똑같은 학교를 나오고, 똑같은 직장을 다니고,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이다. 나는 그 분들보다 더 형편없으면 형편없었지 더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 똑같다. 모든 부모는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 아무도 그 당사자인 부모보다 더 잘할 수 없다. 부모가 원한다면 다른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알릴 수는 있다. 하지만 현재 당신의 방식은 올바르지 않고 전문가인 내가 제시하는 방식이 올바르다, 따라서 당신은 내 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는 것은 그 부모의 사랑과 정성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군다나 평범한 가정은 모두 물리적인 제약을 지니고 있다. 빈부 양극화 속에 열심히 일해도 돈은 모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어려운 가정은 맞벌이다. 전문가들은 항상 아빠가 아이와 충분히 시간을 보내주지 않는 것이, 엄마가 아이와 충분히 시간을 보내주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일을 해야 먹고 살지 않는가?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온 부모도 쉬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아이가 계속 떼쓰고 짜증을 내면 부모도 짜증이 나게 된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관심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 아이가 떼쓰면서 짜증을 낼 때 그것에 대해서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것으로 대응을 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떼쓴다고 들어줘서도 안 된다고 한다.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떼쓸 때 들어주면 줄수록 점점 더 떼만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아이가 떼쓰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면 안 된다. 그렇다고 들어줘도 안 된다. 대신 아이의 관심을 긍정적인 것으로 돌려야 한다. 말은 쉽지만 평범한 수입에, 평범한 여유시간에, 평범한 부모에게 그것이 가능할까? 당연히 벅차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소리지르거나 때리는 것을 옹호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내 의견이 그렇다고 말썽꾸러기 아이가 있는 다른 부모들에게 무조건 소리지르지 말고 때리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 또한 올바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부모가 열심히 해도 바뀌지 않은 아이가 있다. 흔히들 아이가 문제가 있으면 부모의 양육태도가 문제 있다고들 생각을 한다. 똑같은 증상인데 어떤 경우는 버릇없이 키워서 아이가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경우는 부모가 너무 엄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점에서 이유와 그에 대한 설명을 찾는 인간의 본능 때문이다. 사실은 아이가 그렇게 떼쓰고 말을 안 듣는 이유 중 상당부분은 아이의 타고 태어난 점 때문에 그렇다. 어떤 점에서 부모가 아이를 힘들게 하는 것에 못지않게 아이도 부모를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는 그 원인을 자꾸 스스로에게 찾는 것이다. 사실은 아이의 뇌가 그렇게 타고 태어난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집은 부모가 모두 아주 착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낳았는데 둘 다 너무 말을 안 듣고 제멋대로였다. 주의력집중 장애로 진단을 받았는데, 불행하게도 약에도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지독한 말썽꾸러기인 아이들을 상대하다가 보니까 부모도 점점 억세졌다. 그 집을 보면서 나는 부모가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에 비하면 작을 수 있지만 아이 역시 부모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느꼈다.
만약 어떤 아이가 촬영 대상이었는데 전문가의 충고에 따라 부모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가 나아지지 않는다. 당신이 담당 PD라도 실패한 경우를 방송에 내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전문가의 충고에 따라서 부모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가 바뀌지 않는 경우도 방송에 내보내야 맞다. 그래야 보통 수입을 가진, 보통 여유 시간을 지닌, 보통 부모들이 죄책감을 덜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방송에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부모들은 전문가가 시키는 대로 하면 아이가 무조건 좋아질 것 같다는 환상을 가진다. 그리고 텔레비전이나 책에 나오는 전문가의 조언을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을 문제 부모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부모는 자기의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그 누구도 당신의 아이를 위해서 당신만큼 신경 쓰고 노력하지 못한다. 당신의 아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다. 그 어떤 부모도 당신을 대신할 수 없다. 언어적 학대나 신체적 학대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전문가도 당신보다 더 아이를 잘 키울 수 없다.
*필자 소개: 부여다사랑병원 원장,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보건학과에서 병원경영 강의, 저서는 <심리학 테라피>, <병원이 경영을 만나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