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으세요. 혼자 걷는 제주올레는 사색과 명상의 길이지만, 더불어 함께 걷는 올레는 만남과 소통의 길입니다. 이번 축제에서는 생면부지의 사람도 백년지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9일부터 13일까지 5일간 제주올레 1∼5코스에서 `2010 제주올레 걷기 축제`를 여는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은 8일 "올레는 모두 똑같은 삶의 방식과 기준을 가지고 숨 가쁘게 달려가는 우리에게 다양성이란 가치관을 보여줬다"며 "이번 축제에선 가장 늦게 종점에 들어오는 이가 가장 축제를 즐긴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서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축제 홍보가 부족해 보인다.   ▲저예산영화가 개봉관을 잡기 어렵듯 인터넷 배너를 다는 등 외부에 대대적으로 홍보하기엔 축제예산과 인력이 너무 적었다. 첫 축제인 만큼 너무 많이 알려지면 오히려 부담스럽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만큼 우리 역량이 감당할 만큼 하겠다. 대신 올레가 한국 여행의 패러다임을 바꿨듯 축제문화의 질적 전환 즉, 기존 축제와는 뭔가 다르다는 인식을 심는 것이 올해의 목표다. 기자로 일할 당시 많은 축제를 가봤지만 테마만 다르고 내용은 같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주제를 프로그램에 제대로 녹여내지 못한 것이다. 3년 전 처음 올레 길을 낼 당시부터 축제를 염두에 뒀고 그동안 구상을 가다듬었다. 온갖 노력을 다해 준비했지만, 내년에는 부족한 부분을 보강해 더 나은 축제를 만들겠다.   --축제의 성격과 프로그램은.   ▲올레꾼과 지역주민,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올레꾼이 만나 함께 걷으며 마을 사람들이 준비한 공연도 보고 지역의 토속음식도 맛보는 `길 위의 축제`다. 한마디로 길에 문화를 입히는 것인데, 지금까지 올레를 걸으며 자연스럽게 살아있는 생활문화를 경험했다면, 축제 기간엔 이를 집약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30여개의 공연 대부분이 어린이들의 오카리나 연주 등 소박한 것이다. 그동안 솜씨를 갈고 닦았던 지역주민을 길의 무대로 불러내고, 몸국을 함께 나눠 먹으며 서로의 문화를 체험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주민들이 올레꾼들에게 유난히 정을 많이 주셨다. 아마 길이 외지인들을 좀처럼 구경하기 어려운 시골마을을 지나기 때문인 것 같다. 올레꾼 역시 처음엔 풍경이 좋아서 오지만 나중엔 사람에 반해서 다시 찾게 된다고 한다. 나는 길을 낸 사람이지만 동시에 걷는 사람의 입장, 즉 여행자 시선에서 제주를 바라봤다. 외국의 트레킹 길은 대부분 마을과 단절돼 있지만, 우린 반드시 올레가 마을을 거치도록 코스를 짰다. 제주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람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 축제를 찾는 외국인들에게도 말은 통하지 않더라도 눈빛과 미소, 친절로 감동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올레가 세계적 명소가 되려면.   ▲7일 시작된 `2010 월드 트레일 콘퍼런스`는 경험의 확장이자 올레를 알리는 절호의 기회다. 미국 등 세계 10개국의 트레일 전문가가 참가해 운영사례를 공유하고, 함께 올레를 걷는다. 올레가 우리나라에선 유명하지만 국제적으론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길이다. 지금까지 한국을 여행하는 김에 올레를 걸었다면, 앞으론 올레가 좋아서 우리나라에 오는 것을 꿈꾼다. 트레커에겐 정보가 귀한데, 참가자들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올레에 대해 얘기한다면 이보다 좋은 홍보 효과가 없다. 이번에 맺은 우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통로를 갖게 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올레는 이제 갓난아이에 불과하다. 지금까진 길을 내는데 역점을 뒀지만, 앞으로 유지·관리가 더 중요하다. 산티아고길에는 한해 600만명이 온다는데 오래된 역사와 풍부한 경험을 가진 외국의 트레일로부터 그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수확이 될 것이다.   --제주올레의 성공 요인은.   ▲첫 번째 경쟁력은 역시 제주의 자연이다. 스위스에서 한 달을 살았는데 풍경이 단조로워 지루할 뿐 아니라 너무 거대한 자연 앞에서 위축됐다. 반면에 제주는 사람이 딱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인데다 코스마다 성격이 다 다르다. 인접 마을이라도 바다 빛깔과 돌의 모습이 다르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숲길을 걷다 보면 2천종이 넘는 식물이 우리를 반긴다. 이렇다 보니 어느 코스를 추천해달라는 질문이 가장 어렵다. 두 번째는 민간의 열정이다. 여러 곳의 지원을 받다 보면 규제가 많아져 주체적, 독립적으로 운영하기에 어렵다. 비록 낮은 임금을 받지만 길을 사랑하는 사람이 길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처음부터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고향 제주의 길을 걸으며 치유받았던 것처럼 단 몇몇이라도 같은 경험을 하게 한다면 인생의 후반부를 걸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제주를 돌아보며 생겼던 수많은 편견과 오해를 종식하고 싶었다. 올레가 유명세를 타면서 과장된 비판과 근거 없는 질시를 받기도 하지만 올레의 기본정신을 이해하고 신뢰를 보내주시는 분들, 올레를 통해 제주의 진면목을 재발견했다는 분들이 많아져 감사할 뿐이다.   --제주올레의 3년간 성과와 과제는.   ▲올레를 걸으면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내면의 목소리에 깊이 귀 기울일 수 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숙제처럼 여행하고 전쟁같이 쉬었다면, 올레는 진짜 여행하는 법, 쉬는 법을 제시했다. 길을 느리게 천천히 걷는 행위 하나만으로도 사람이 변한다. 올레는 물질만능주의, 경쟁과 1등 강박증, 빨리빨리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 쉼의 가치와 의미를 전달했고,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   올레는 더 큰 수많은 개발을 막았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찾아오면서 생긴 길의 훼손과 변형에 대해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오름처럼 휴식년제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마을주민들이 올레를 통해 소득이 높아지고 개발 사업 유치에만 매달리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일을 하는 데 있어 자유로워질 것이다.     
최종편집: 2025-05-01 22: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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