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미모로 시간을 뛰어넘는 `세기의 미녀 톱 5`와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성형외과 전문의 박원진 박사의 보고서.
비비안 리(Vivien Leigh)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외모만큼이나 비비안의 인생은 극과 극을 치달았고 절정과 고독을 오고갔던 화려함 뒤에 외롭게 꺼져간 여배우 비비안 리.
눈부시도록 흰 살결에 맑고 푸른 눈동자, 상큼한 콧날에 우아한 목을 가진 비비안 리. 그녀처럼 차갑고 서늘한, 손에 닿지 않는 아름다운 여배우도 찾기 힘들다. 스칼렛이 입었던 진홍빛 드레스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각인되었고 그녀 외에 다른 어떤 배우도 스칼렛이 될 수는 없도록 만들었다.
비비안 리는 1913년 11월 5일, 인도의 다르질링에서 프랑스계 영국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런던 증권가의 부호였던 아버지 덕분으로 7살이 되기 전 영국의 로햄스턴에 있는 성심수녀원에 들어가면서부터 배우의 꿈을 키웠다. 비비안은 어릴 때부터 특유의 미모로 관심을 받고 자랐으며 1937년 영화 `영광의 결전`으로 첫 데뷔 후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일약 대스타가 된다.
영원한 `스칼렛 오하라`로 기억되는 비비안 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새롭게 탄생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18인치의 잘록한 허리로 가녀리고 청순한 매력을 발산한다. 볼록한 이마와 도도한 눈썹, 입체감이 살아있는 작은 얼굴, 입술선이 또렷하고 얇은 윗입술과 도톰한 아랫입술은 조각과 같은 입술로 유명하다. 또 야무진 콧날과 깊고 진한 쌍꺼풀이 난초같이 여리지만 강인한 그녀의 도도한 매력을 돋보이게 한다.
"비비안은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의 소유자이자 내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당황스러울 정도의 매력을 가진 여배우이다." 비비안에 대한 로렌스 올리비에의 첫 인상이다.
불륜의 사랑으로 유명한 로렌스와의 사랑은 20년간 순탄한 결혼생활을 이어가지만 건강의 악화와 함께 그녀의 불행은 찾아온다. 아내의 병치레와 조울증에 지친 로렌스는 30세나 연하인 새로운 연인 조안 플로라이트를 사귀고 있었고 공식적으로 비비안에게 이혼을 요구해왔다. 당시 비비안은 46세. 로렌스 올리비에와 조안은 1961년 3월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고, 로렌스를 잃음으로 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비비안은 6년 후인 1967년 7월 7일 폐결핵과 견딜 수 없는 고독으로 사망했다.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가 극찬했듯이 난초같이 우아한 이미지에 귀족적인 얼굴, 연기를 할 때 혼신한 손의 힘을 다한 열정까지 그녀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여배우였다. 그녀는 결벽에 가까운 완벽주의와 집착이 심한 성격 탓에 고통을 많이 받았고 무엇보다 자신을 내던져 버렸던 화려한 사랑으로 인해 가장 큰 상처와 고독을 겪어야 했다. 그녀의 눈빛이 말해주듯 날카롭고 강인한 성격은 그녀를 정상에 올려놓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그녀를 멀어지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감독 엘리아 카잔은 "비비안 리는 내가 만난 여배우들 가운데 가장 열심히 노력하는 배우였다. 그녀는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만 있다면 유리 위를 네발로 기기라도 할 사람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노력하는 배우였다. 그녀의 영화에서 알 수 있듯이 연기든 사랑이든 그녀의 모든 것을 내던진 그녀의 열정이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한다.
*필자 소개: 원진성형외과 원장, 대한성형외과학회 정회원, 일본 미용성형외과학회 정회원, 삼성서울병원 성형외과 교수, 서울대 의대 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