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나 TV 뉴스에서 큰 선박을 건조한 후 바다에 띄우는 행사를 하는 것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행사의 말미에 한 여성이 샴페인 병을 줄에 달아서 배에 부딪치게 하는 것을 보고 왜 저렇게 아까운 삼페인을 배에 부딪쳐 깨지게 할까? 무슨 유래로 저런 일을 할까? 하고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도 조선회사들에서는 이러한 명명식에 관한 이야기들을 더 잘 알고 있겠으나 와인과 샴페인이 관련된 일이라 와인 쪽에 알려진 이야기를 들어본 대로 이야기해 보겠다. 배를 다 만들고 진수하기 전에 하는 행사는 배의 명명(Christening ship)이라고 하여 큰 배의 경우 이런 명명식을 성대하게 개최하는 것이 관례이다. 이러한 명명식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해오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그리스, 로마, 이집트 시대부터 시작되어 내려오고 있다.
요즘에는 과학이 발달하여 배도 튼튼하게 만들고 또 일기예보도 정확하여서 해난 사고가 별로 없지만, 그래도 바다에서 예상치 못한 큰 풍랑이 있는 경우 해난 사고가 가끔 생긴다. 옛날에는 배도 작고 항해 기술도 발달하지 못하여 이러한 해난 사고가 많아 인명 피해도 컸다. 따라서 앞으로 항해하는 동안 인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풍파와 모든 불행한 사고를 헤치고 나가서 배와 선원들을 안전하게 지켜달라고 신에게 기원하는 제사 의식이 있었는데 이러한 의식이 진수식 혹은 명명식이었다. 제사에는 희생의 제물이 있는 법, 수천 년 전에는 황소를 잡아서 그 피를 희생의 제물로 바다의 신에게 바쳐서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였는데 나중에 바이킹 시대부터는 뱃머리에 병을 깨트리는 것으로 대신하였다고 한다.
항해 중 발생하는 모든 재난을 신들이 좌우하기 때문에 배가 진수할 때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대에서 인간사의 많은 부분은 신이 아닌 인간이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대로 들어오면서,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보다 앞날의 역경을 스스로 뚫고 나가라고 하는 뜻에서 샴페인이나 와인 병을 터트리는 것으로 바뀐 것은 자연과 신에 대한 시각이 서서히 달라진데서 오는 어쩌면 당연한 변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17 세기에 들어와서 영국에서는 해군의 군함들을 진수할 때에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귀한 성배를 배에 던져 깨지게 하였다. 그러나 해운업의 성장과 해군의 군비 확장으로 크고 작은 많은 군함들이 건조하게 되었는데 귀한 성배를 깨트리는 것은 낭비이고 또 옳지 않다고 하여서 성배 대신에 “와인을 한 병씩 깨트려라.”고 윌리엄 3세 왕이 칙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와인 병을 사용하다가 병 속에 압력이 있어서 부딪히면 잘 깨어질 수 있고, 또 깨어져서 거품이 넘치는 것이 볼 만한 샴페인 병으로 바꾸어지게 되었고 지금까지 영국 군함들의 명명식에서는 샴페인을 사용하는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가끔 예외는 있어서 마칼란 스카치 위스키가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19 세기에 들어와서 미국에서는 꼭 와인이나 샴페인이 아니더라도 뱃머리에 성수를 붓기도 하여서 미국 해군에서는 군함의 명명식 때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강의 물을 가져와서 뱃머리에 붓기도 하였다.
이렇게 여러 종류의 제주가 사용되기는 하였으나 최근에는 샴페인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고 선박의 명명식은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성대하게 진행되었고 사용되는 샴페인도 점점 귀한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명명식에서는 선박의 주인이 되는 회사 측에서 특별히 선발한 귀부인이 행사의 클라이막스에서 “나는 그대를 ㅇㅇㅇ로 명명하노라(I christen thee ㅇㅇㅇ)” 하고 샴페인을 뱃머리에 부딪쳐서 깨어지도록 하고 그 다음에 배를 고정시키고 있는 밧줄을 자르면 큰 배는 서서히 바다로 진수하게 된다.
요즈음 건조되는 큰 배들은 수만, 수십만 톤이나 되고 이런 배를 주문하는 회사도 크고, 배를 만드는 조선회사도 크다 보니 명명식도 성대하게 거행되고 있다. 그런데 만약 명명식이 적절하게 진행되지 못할 경우 배의 앞날에는 불행이 기다리고 있다는 미신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특히 샴페인이 깨어지지 않는 것은 아주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샴페인 병을 깨트리는 명명이 일반적이었으나 모든 상선들이 다 이런 명명식을 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1912 년 4월 14일 진수한 타이타닉호는 가장 완벽하게 만들어져서 앞으로의 항해에서 침몰 등의 해난 사고가 발생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는지는 혹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를 알 수 없으나 샴페인 터트리는 등의 행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배는 거의 국가적인 환송 행사를 마치고 처녀항해를 하다가 밤에 큰 빙산과 부딪쳐서 많은 승객들과 함께 침몰하는 비극적인 사고를 맞았다. 또 비슷한 다른 배도 있었다. `오로라` 라는 배는 명명식에서 샴페인이 단번에 깨지지 못하였는데 몇 번을 다시 시도해서 성공하였다고 한다. 이일로 사람들이 아마도 이배는 바다에서 불행스런 일을 만날 수도 있다고 수군거렸다. 언젠가 한번은 세계일주 크루즈를 하려고 항구에 정박하고 승객들을 태우고 출항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엔진에 고장이 생겨서 제 때에 출항하지 못하고 수리하느라 기다리게 되었다.
돈을 지불한 여행객들이 어떤 이유로든 배가 출발하지 않으니 거칠게 항의를 하였고, 불평하는 승객들을 달래려고 회사에서는 공짜로 술과 음료수를 제공하였는데 이렇게 제공한 와인, 샴페인, 맥주, 양주와 칵테일 등이 무려 수 천병이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금액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손해가 막심하였다. 이것으로 샴페인 병이 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액땜을 하였는지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 이 배는 잘 운항하고 있다고 한다.
또 어떤 명명식을 TV에서 봤는데, 악대의 연주가 끝나고 귀부인이 샴페인을 줄에 달아서 배에 부딪쳐 깨어지게 하는 순서에서 갑자기 샴페인 병을 들고 줄을 붙잡고 본인이 스스로 배에 부딪치는 일이 발생하여서 주위의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식장과 뱃머리가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귀부인이 줄을 놓치기라도 하는 경우 땅이나 바다로 떨어지는 사고가 생길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도 그 분이 힘이 세었는지 뱃머리에 쿵하고 부딪치고는 떨어지지 않고 다시 행사장 쪽으로 돌아왔다. 희한한 장면이었다. 자세히 보니 샴페인 병이 깨지지 않고 그냥 들고 있었는데, 그 후 그 배가 사고 없이 잘 향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필자 소개: 연세대 화공과 졸업, 미국 포도주 공장 연수(캘리포니아, 뉴욕 주), 독일 가이젠하임 포도주 대학에서 양조학 수학, 프랑스 보르도 소재 CAFA 와인스쿨 정규 소믈리에 과정 수료, 국산 와인 마주앙 개발 주역으로 중앙대, 세종대 초빙교수 역임, 서울대, 연세대, 한양대, 단국대, 기업체 등에서 와인 특강, 저서로 `와인, 알고 마시면 두배로 즐겁다(세종서적)` `와인 인사이클로피디아(세종서적)`, `와인 가이드(중앙북스)`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