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기(정신과 전문의) http://blog.naver.com/artppper
김연아 선수가 아직은 유망주 고등학생이었을 때 과천링크에서 연습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딸아이가 매주 한번 정도 김연아 선수가 연습을 하던 과천링크로 스케이트를 타러 갔기 때문에 볼 수 있었다. 일반인 이용 가능 시간이었기 때문에 김연아 선수가 프로그램을 연습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점프 연습을 하는 것을 자주 봤는데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수없이 넘어지는 것을 봤다. 겉으로 볼 때는 아름답고 화려한 피겨도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김연아 선수 이야기가 뉴스에 나올 때마다 “아! 그 때 그 고등학생이 텔리비전에 나왔네.” 하면서 우리 가족들도 좋아했다.
김연아 선수가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 선수가 피겨에서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열심히 해서 체육특기자로 대학에 가는 정도가 대부분 선수들의 목표였다. 박세리 선수가 골프채를 잡기 시작했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일단 프로골퍼가 되고 나서 레슨 해서 생활을 하는 것이 대부분 여자 골프 선수들의 목표였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나 박세리 선수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운동이라는 것을 알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기에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성공 이야기가 꼭 운동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방송(JCBN)에는 `억대클럽`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남들이 아직은 눈여겨보지 않는 분야이지만 자신은 너무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까 성공한 이들이 `억대클럽`에 많이 등장한다. “더 플레어”의 박재우 대표는 칵테일 만드는 것이 너무나 좋아서 연습한 결과 세계 바텐더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손 네일아트”의 이손 사장은 남성 네일리스트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정진해서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 대부분 패션 디자이너들이 외국에서 패선학교를 나와 명품 의류회사에서 일한 후 자신의 브랜드를 오픈하겠다는 천편일률적인 꿈을 가지고 있을 때, 이겸비씨는 구두 디자인에 몰두해서 슈즈 브랜드 `겸비슈즈`를 성공적으로 런칭했다. 황희진씨는 자신이 사랑하는 강아지에게 스스로 옷을 만들어 입혀주다가 나중에 애완견 옷 노점을 열게 되었고, 그것이 애견 관련 사업으로 성장했다. 하현영씨는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져서 부업으로 꽃집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 꽃집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조경업체로 성장했다.
`억대클럽`에 출연할 정도로 유명한 사례는 아니더라도 주위를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해서 성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주부들의 경우 엄청난 재능이 자신 속에 숨어 있었는데 그것이 부업을 하면서 발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면 자신의 재능을 10년, 20년 썩힌 것이다. 만약에 부업을 할 기회가 없었다면 그 주부의 재능은 평생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자신만의 재능을 살려서 성공한 이들도 적지 않지만, 주위를 보면 좋은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살리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다. 막상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 잘 하는 일은 돈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해서 재테크를 할 생각만 하는 이들이 많다. 자기가 잘하는 특기로 남들이 돈도 벌고, 이름도 날리는 것을 보고서 그제서야 “나도 저 정도는 하는데” 하고 뛰어들지만 그 때는 경쟁이 치열해져서 이미 늦다. 뒤늦게 뛰어들어서 상투 잡은 경우도 적지 않다. 주식이다, 부동산이다, 경매다 하면서 다들 돈 벌 생각을 하지만, 최고의 재테크는 자신의 능력을 살려서 소득을 늘리는 것이다. 단 자신이 실제로 그 부분에 재능이 있는 지에 대해서는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뭔가 하고 싶어 하는 대상이 생기면 자신이 그에 대해 실제 재능이 있다고 착각한다. 자신이 잘 하는 것에 대해서는 본인은 재능으로 치지 않고, 그럴 듯해 보이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남들 뒤쫓아 가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 가장 흔한 예가 연예인 지망생이다. 2008년도에 배우와 탤런트는 2만 580명, 가수는 6천5백여명이 소득세를 신고했다고 한다. 이들의 평균 소득세 신고액은 가수가 29만 원, 배우와 탤런트는 57만 원이었다. 이들 모두 자신이 재능이 있다고 믿는다. 일반인에 비해서는 연기, 노래, 춤에 재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화려해 보이는 스타의 모습은 객관적인 판단을 그르치게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전문가가 되기에는 능력이 떨어지는데 막상 본인은 재능이 있다고 믿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김연아 선수로 인해서 피겨 스케이팅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피겨 스케이팅을 지원하는 어린 선수들이 급증할 것이다. 그 중에는 재능, 의욕, 노력을 다 갖춘 유망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정 운동, 특정 직업이 인기를 끌면 거품이 생기게 마련이다. 경쟁을 극복할 만한 재능은 갖추지 못한 이들이 본인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지원을 한다. 성공의 허상 때문에 과연 경쟁을 극복할 능력과 끈기가 있는지를 파악하지 않는다. 고시에 목숨을 건 고시폐인, 슈퍼 개미가 되고자 빚더미에 올라서도 주식시장에서 발을 못 빼는 주식폐인, 수많은 시간 오락을 하면서 연습이라고 합리화 하는 프로 게이머 지망생들도 어떤 점에서 거품의 희생자다.
따라서 인기가 있건 없건, 사람들이 관심을 두건 안 두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일을 내가 미치도록 좋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어야 한다. 끈기 있게 포기하지 않고 노력을 하다가 보면 내 도움을 받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나게 된다. 처음에는 천천히 늘어나지만 어느 순간 마치 눈덩이가 불어나듯이 나를 찾는 이들이 늘어난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경제학자들은 `티핑 포인트` `블루오션` 과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은 돈이 아닌 사람이다. 자신의 일에 열심히 몰두하는 리더와 그를 신뢰하는 소비자가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시장에 자그마한 노점을 열건, 인터넷 오픈 마켓을 시작하건 일단 부닥쳐 보면서 당신의 재능을 시험해 보라.
장례에 관심이 있다면 천편일률적인 장례식이 아닌 각 집안과 망자의 개성을 살리면서 격조 있는 장례식을 진행하는 장의업체를 자그마하게 시작해볼 수도 있다. 개나 고양이가 아닌 희귀한 애완동물에 관심이 있다면 희귀 애완동물의 사육시설과 먹거리와 관련된 사업을 작게 시작할 수도 있다. 항해에 관심이 있다면 오늘부터 항해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하고 미래의 요트 세일즈왕을 꿈 꿀 수도 있다. 겉만 번지르르해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분야를 자신의 재능이라고 착각하는 일만 없다면, 재능, 노력, 의욕이 합쳐지면 못할 일이 없다.
김연아 선수도 시작할 때부터 지금처럼 완벽하게 스케이트를 탔던 것은 아니다. 수없는 시련과 역경을 극복했기에 오늘이 있었다. 우리 안에 숨겨진 보석을 찾아내 최선을 다해서 연마하자. 모든 스포츠 게임은 인생의 축소판이며, 인생은 어떤 점에서 길고 굴곡이 있는 복잡한 게임이다. 진정한 재능을 찾아서 최선을 다한다면 시상대에 올라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 같이 가슴 벅찬 순간이 우리 모두의 삶에 한번 쯤은 찾아올 것이다.
*필자 소개: 부여다사랑병원 원장,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보건학과에서 병원경영 강의, 저서는 <심리학 테라피>, <병원이 경영을 만나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