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처데일리] 전국적으로 많은 의료 봉사단체가 있지만 배를 타고 봉사를 나서는 다소 생소한 단체가 있다. 바로 머시쉽이라는 곳이다. 머시쉽은 의료인들이 배에 승선해 전세계를 다니며 의료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을 치료하고 있다. 머시쉽의 임구영 이사(헵시바치과 원장)를 만나봤다. Q. 봉사활동이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인데 의료봉사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또한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면봉사활동을 처음 시작한 것은 학생 때부터였다. 사실 봉사라기보다는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보고, 듣고, 느끼고 싶어서 다니기 시작했다. 기왕이면 가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좋기에 의료라는 하나의 도구를 가지고 간 것이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가장 실질적인 도움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는데, 의료라는 것이 먹고 마시는 것 같은 행위처럼 중요한 일이라고 느꼈다. 아플 때 힘든 것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Q. 의료봉사단체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머시쉽은 어떤 성격의 단체인지 소개한다면머시쉽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병원선을 이용해 제대로 된 수술을 해준다는 것에 있다. 보통의 진료봉사 시에는 여러 가지 시간 및 장소에 제약이 많아서 수술을 하기는 어려운데 머시쉽에서는 입원도 가능하고 수술도 가능하다. 수술실, 입원실, 중환자실이 있고 의사들과 간호사들과 기타 도움을 주는 많은 이들이 있다. 대학병원에서만 할 수 있는 어려운 수술도 가능하다. 현지 의료인이 할 수 없는 고난이도의 수술을 하기 때문에 현지 의료인과 마찰이 생기지 않는 큰 장점도 있다. 예전에 시에라리온을 갔을 때 원래 비자 받기가 복잡했지만 머시쉽에 간다는 증명서 하나로 비자를 쉽게 받는 것은 물론 공항에서부터 직원들에게 환영을 받은 적이 있다. 이것은 머시쉽이 그 나라에서 얼마나 좋은 영향력을 미쳤는지를 알 수 있는 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머시쉽 내의 수술실과 마취장비, 중환자실 등 시설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 대학병원에 못 지 않다. 많은 분들이 기증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술 팀을 이루기위해서는 많은 인력들이 필요한데 모든 분들이 다 자원자로서 참여하고 있다. 아프리카까지 오고 가는 경비뿐 아니라 먹고 자는 비용까지 스스로 지불하며 봉사하는 분들이다. 병원선에는 의사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3교대 하는 야간 간호사도 필요하며 수술기구를 닦아주는 허드렛일 같은 귀찮은 일도 하는 사람들도 필요하다. 또한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하는 분도 필요한데 이 모든 이들이 자원자이다. Q. 병원선이라는 것이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단어이다. 승선 의료봉사를 펼치면서 애로 사항도 많을 것 같다.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사람들이 머시쉽에 대해서 많이 오해하는 것이, 병원선이므로 돌아다니며 치료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머시쉽은 한곳에 적어도 6개월에서 12개월 정도 머무르므로 머시쉽에 가는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의 한 나라로 가서 머시쉽에서 머무르며 봉사하다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것이다. 모든 봉사가 어려운 점이 많겠지만, 머시쉽에 단기로 2주 승선만 했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숙소도 약간 좁기는 하지만 괜찮았고, 식사도 미국식으로 매우 잘 먹었다. 한국음식이 먹고 싶을 때면 식당에 가서 라면을 끓여 먹거나 교민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다만 아프리카 까지 오고 가는 시간을 합치면 3주의 휴가를 내야하기 때문에 한국 사정상 휴가를 길게 내는 것이 어려운 점이 많았다.병원선의 경우에 중요한 것이 응급상황에서 어떻게 배를 탈출할 것인가 등의 교육을 받는다. 배는 침몰할 수도 있고 화재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안타까운 것이 있었다. 봉사를 위해 머시쉽에 도착한 시간이 밤 12시가 다 됐었는데도 당일 날 응급 화재 발생 시 어디로 탈출할지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연기가 났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비상구는 어디인지에 대한 교육도 하며 도착즉시 많은 교육을 받았다. 세월호에도 이런 교육이 있었더라면 그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또한 한 배안에 고립돼 많은 분들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병이 전염되기도 쉬우므로 위생관리에도 만전을 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사람만의 감염이 문제가 아니라 나로 인해 모든 사람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므로 세세한 곳까지 신경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Q. 의료봉사를 하면 환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봉사를 베푸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의료봉사활동이 주는 의미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어려운 곳에 사는 분들을 보면서 나 자신이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됐다. 우리나라는 집, 차, 휴대폰 등 누가 좀 더 크고 좋은 것을 가졌나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그런 것들이 얼마나 사치스런 것인지에 대해서도 반성하게 됐다.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하게 웃으며 사는 분들을 보는 것과 그분들을 돕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오는 분들을 만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머시쉽에서 한국 대학병원에서도 보기 힘든 큰 종양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보고 ‘여기는 왜 이렇게 큰 종양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돌이켜 보니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조그만 것이 생기면 바로 바로 치료를 받으니 그 만큼 커질 때까지 그냥 놔두지를 않았던 것이었다. 그만큼 한국의 의료보험 시스템이 좋은 것이라는 말이다. 그 나라에서는 처음에 비용 때문에 치료받기가 어렵고 커지면 기술적으로 수술받기가 더 어려워지니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그러고 보니 어릴 때 ‘혹부리 영감님’에 관한 옛날이야기를 많이 보았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만 해도 지하철에서 혹 있는 사람이 구걸을 하는 것도 많이 보았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그런 병들을 치료하지 못해 그런 환자가 많았지만 요즘은 일찍 발견해 치료를 하니 그런 환자가 거의 없는 것이다. Q. 의료봉사활동을 다니다 보면 개인적인 시간에 제약이 있을 것 같은데. 가족들이 섭섭해 할 것 같다. 어떤가? 휴가를 함께 보내지 못해 섭섭해 하는 부분도 있지만 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응원해 주는 것이 있기에 가능했다. 가족들도 봉사에 대해서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아픈 이들을 건강하게 해주기 위한 것이기에 오히려 더욱 독려해주기도 한다. 그럴 때는 늘 고맙게 생각한다. Q. 의료 봉사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다면머시쉽에 한번 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휴가를 길게 내는 것도 어렵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기 때문인데 매년 그곳에 와서 봉사하는 이들이 참 존경스럽다. 한번은 머시쉽에서 어떤 나이 지긋하신 미국 의사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산부인과 의사입니다”라고 말을 건넨 적이 있다. 깜짝 놀라 한국말로 “아니, 한국말을 할 줄 아세요?”라고 했더니 “많이 잊어 버렸어요”라고 하더라. 알고 보니 1970년대에 전주예수병원에 와서 2년 동안 봉사하면서 배웠던 거라고 하더라. 이제는 나이가 70대가 됐는데도 사모님과 함께 아프리카에 있는 머시쉽에 와서 봉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의 발전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머시쉽에서는 봉사할 곳이 정해지면 그 나라에 적어도 3개월 전에 한 팀이 가서 환자들을 스크리닝해 수술 받을 사람들을 선별하고, 6개월의 수술스케줄을 정한다. 스크리닝 하는 날 보면 정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운동장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다. 그 분들에게는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 것이 정말 감사한 일일 것이다.Q. 마지막으로 봉사에 대해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굳이 봉사라고 생각하지 말고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관광지를 돌아다니지는 않지만 현지 사람들과 만나서 접하고 그들에게 도움까지 줄 수 있다면 어떤 여행보다 즐겁고 배우는 것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봉사라는 것에 얽매이기 보다는 무언가를 보고, 듣고, 배우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봉사하는 순간순간이 참 뜻 깊을 것이라고 본다.사진: 최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