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숙(42. 경기 광명시)씨는 지난해 2월 샤워중 가슴에 멍울이 잡히는 것을 느꼈다. `혹시나` 하고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은 결과 유방암 2기라는 판정이었다.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머리와 눈썹이 빠져 서글퍼졌다. 또 병원에서 함께 치료받던 환우가 숨진 소식을 접하면 자신도 혹시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암환자들은 암을 진단받는 순간부터 치료 후까지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 않을까" "낫더라도 재발되면 어쩌지" 하며 두려움을 느낀다. 암과 관련된 이러한 정신적 고통은 환자의 투병에 상당한 지장을 준다. 미국 `종합 암 네트워크`(NCCN)에서는 이를 ‘디스트레스’(distress)라고 명명하고 암에 대한 대처능력을 저해하는 정서적, 심리적, 사회적, 영적 영역의 불쾌한 경험이라고 정의했다. 한국 국립암센터는 2009년 암 환자의 이같은 정신적 고통을 이해하고 관리하기 위한 ‘암 환자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디스트레스 관리 권고안’을 내놓았다.
또한 미국의 디스트레스 검사방법을 한국형으로 바꿔 국내 암환자의 디스트레스 유병율을 조사했다. 국립암센터가 서울대병원,경북대병원 등 5개 의료기관에서 암 환자 379명을 대상으로 디스트레스 평가를 시행한 결과 환자 중 42.1%가 디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암환자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디스트레스는 왜 생기는 것일까? 전문의들에 따르면 신체적 증상, 가족문제, 의료진과의 비효율적 의사소통, 암환자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주원인이다. 구체적인 증상으로 먼저 당혹감, 슬픔, 두려움이 나타나고 병적인 상태로 발전하면 우울, 불안, 공황, 사회적 고립, 실존적 위기로 이어진다.
국립암센터 정신건강 클리닉 김종흔 박사는 암환자의 1/3~1/2 정도가 디스트레스를 겪고 있고, 남성보다 여성이 증세가 더 심한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간병하는 가족들이 환자가 본인의 감정을 잘 표현하여 디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여성암환자 85% 는 화병
이대 여성암 전문병원 문병인 교수는 지난 2월 여성 암 환자 100명을 대상으로 40개 문항의 화병 체크 리스트를 통해 환자들의 심리적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하는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결과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고 짜증이 난다’ ‘밤에 잠을 잘 못 잔다’ ‘슬프고 눈물이 자주난다’ 등 40개 문항 중 11개 이상에 해당하는 57명의 환자는 `화병`, 4~10개에 해당된 28명은 `화병 의심`으로 진단됐다. 즉, 여성암환자 100명중 85명이 화병이거나 화병으로 의심되는 것이다.
문 교수는 “기존에 발표된 일반인의 화병 유병률이 4~5% 정도인 점을 고려할 때 많은 여성암 환자들이 매우 큰 신체적, 감정적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돼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여성암환자의 가족들은 환자의 심경변화에 대해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디스트레스 치료는 조기진단과 가족의 도움이 큰 힘
디스트레스는 암 투병과정과 질병 예후에 부정적 영향을 줘 환자의 삶의 질과 치료 순응도를 떨어뜨린다. 심할 경우 자살사고와 안락사 요청의 위험을 높이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다른 정신질환 처럼 조기진단과 치료, 관리가 중요하다.
한국 사회에서는 병 간호에 가족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김미숙 씨는 유방암 치료과정에서 여성호르몬억제 주사를 맞아 42세의 젊은 나이에 폐경이 됐다. 땀이 많이 나고 얼굴이 화끈 거리는 등 갱년기 증상까지 앓아 심리적 고통이 더 컸다.
김씨의 남편은 매일 아침마다 전날 밤에 미리 불려 놓은 콩을 갈아 준다.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던 아들(11)과 딸(14)은 엄마가 꼭 나을 거라고 격려해 준다. 직장과 가사를 병행하는 남편과 어리지만 일찍 철이 든 자녀들의 응원으로 김씨는 희망을 가지고 치료에 임하고 있다.
이대여성암전문병원에서는 환자들을 위해 연극교실, 노래교실, 오카리나 교실, 웃음치료 등 매달 다양한 `파워 업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김씨는 "환우들과 함께 이러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 환자의 디스트레스 완화방법 > 1.약물요법 :항우울증, 항불안제, 수면제, 정신자극제 처방으로 불안증, 폐경기 증상, 불면증을 완화한다.
2.정신과적 치료: 심리교육, 인지행동치료, 정신치료.3.보완대체요법 : 명상, 음악치료, 미술치료, 향기치료, 웃음치료, 태극권 등. 4.봉사활동: 테레사 효과, 즉 봉사를 통해 얻는 희열과 행복감으로 엔돌핀이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5.일기쓰기: 그날 한 일과 생각을 기록해 두면 치료받는 동안 갖게 되는 느낌들을 더 확실하게 해주고 의사나 간호사에게 질문을 할 때도 도움이 된다.6.친구를 만나거나 종교 활동을 하는 것은 좋은 감정을 갖게 해준다.7.일상생활을 스스로 해결하게 되면 자신감이 생긴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컨디션이 좋아질 경우에 할 일들을 계획해 본다.
8. 운동을 하면 긴장감,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고, 식욕도 생긴다.9.자조모임(환우회): 치료과정에 잘 대처했던 다른 암환자와 이야기를 나눈다.10.손으로 하는 일(뜨개질, 모형 만들기, 그림 그리기)과 독서: 몰입은 통증이나 문제를 잊는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