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한식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너무 비싸서 서민들이 맛보기는 어려운 음식이라고 대답한다.
특히 중국에서 자리 잡은 일부 유명 한식당들의 경우 중국 고위층이나 부유층이 출입하는 경우가 많아 그 한식당을 가보지 못한 사람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상류사회에 속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중국에서도 돈 많고 권력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수도 베이징에서 이름을 날리는 한식당 중의 하나가 `애강산`(愛江山)이다.
애강산의 메뉴판은 1인분에 980위안(16만2천원) 짜리 최고급 쇠고기 등심부터 평범하지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된장찌개에 이르기까지 249가지 음식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한국인 거주지인 왕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1호점은 손님 가운데 70% 이상이 중국인일 정도로 현지화에도 성공했다는 평이다.
베이징 서북부인 하이뎬(海淀)구에 있는 2호점과 중심지 창안제(長安街)에 있는 3호점의 경우 중국인 손님의 비중이 더욱 높다.
애강산은 고급 마케팅으로 중국인들을 공략해 성공한 경우로 손꼽힌다.
애강산 창업주인 신자상 회장은 “한국 사람들이 중국 사람을 번듯하게 대접할 레스토랑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에서 2006년 1호점을 열게 됐다”며 “상위 1%의 중국인들을 주 고객층으로 겨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곳을 찾는 한국인 손님의 1인당 평균 매출액은 150∼200위안(2만5천∼3만3천원) 가량인데 반해 중국인 손님의 경우 1인당 매출액이 300∼400위안(5만∼6만6천원)에 달할 정도로 ‘손이 크다’고 한다.
또한 980위안 짜리 최고급 쇠고기 등심을 시키는 손님은 거의 100% 중국인이라는 게 애강산 측의 설명이다.
애강산을 찾은 한 젊은 중국 여성 고객은 “한국 음식점에 자주 찾아온다”며 “중국 음식이 느끼한데 비해 한국 음식은 맛이 깔끔해서 좋아한다”며 “한국 음식의 매운 맛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 비빔밥 레스토랑 비비고
‘베이징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는 번화가 왕푸징(王府井)에는 CJ가 운영하는 한국 비빔밥 전문 레스토랑인 ‘비비고’ 파일럿점이 자리를 잡고 까다로운 중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세계 음식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비비고는 CJ가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전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레스토랑으로 현재 중국에서는 베이징 왕푸징 거리에 1호점이 운영되고 있다.
왕푸징의 고급 쇼핑몰인 동방신천지(東方新天地)의 식당가에 위치한 비비고는 비빔밥을 주 메뉴로 하고 불고기, 떡볶이, 수육, 잡채 등의 사이드 메뉴를 먹을 수 있는 현대식 레스토랑이다.
손님이 맥도널드나 KFC 같은 패스트푸드점에서처럼 매장 입구에서 주문하면 즉석에서 바로 음식을 받아갈 수 있어 바쁜 직장인들에게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주 메뉴는 비빔밥, 돌솥비빔밥, 덮밥식의 ‘비비고 라이스’ 3가지로 가격은 32∼35위안으로(5천300∼5천800원)으로 먹는 것에 한해서는 한국보다 저렴한 중국의 물가를 고려한다면 낮은 가격이라고는 할 수 없다.
게다가 보통 고객들이 간단한 사이드 메뉴와 음료를 곁들이는 경우가 많아 평균 매출은 50위안(8천300원)에 이른다.
베이징의 중심가에 위치하다 보니 한국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경우가 많은 다른 한식당과 달리 비비고의 고객은 거의 대부분이 중국인 또는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다.
비빔밥이 다이어트에 좋은 건강식으로 알려진 탓에 특히 20∼30대 ‘오피스레이디’ 손님의 비중이 절반 이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비비고는 현지화를 하되 한국의 맛을 철저히 고수한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일부 중국 손님들이 요구하는 대로 음식 맛을 중국화한다면 한식의 정체성을 잃고 장기적으로 손님의 발길이 끊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CJ중국본사에서 외식사업을 담당하는 김경중 부장은 “비비고의 기본 개념은 한국의 맛을 세계 어디서나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라며 “중국 손님이 요구한다고 다른 비빔밥에서 나물을 빼고 향차이를 넣는 것 같은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8월부터 왕푸징에 비비고 파일럿점을 운영하고 있는 CJ는 안정적인 정착에 성공했다는 판단에 따라 올해 베이징에 2∼3곳의 매장을 추가로 늘리고 내년에는 상하이에 교두보를 마련하는 등 프랜차이즈 확장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박근태 CJ중국본사 대표는 “기존의 한식당이 다양한 메뉴를 가진 덩치가 큰 방식이었다면 우리는 규모를 가볍게 하고 음식의 표준화를 통해 중국 전역으로 빠르게 진출해나가는 새로운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중국인 남성 고객은 “한국 음식은 건강에 매우 좋고 무엇보다도 기름기가 적어서 좋다”며 “중국 음식처럼 낭비가 없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어떤 때는 중국 사람이 먹는 것에 비해 양이 적은 때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상하이의 한식당들
중국 상하이의 한식당들은 크게 한국인과 조선족, 일본인, 중국인 등이 운영하는 4가지 부류로 구분된다.
조선족이 운영하는 한식당은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인타운인 훙췐루(虹泉路) 주변에서 수십 곳이 성업하고 있는데 대부분 한국에서 먹는 한식당보다 맛이 좋을 정도로 한국의 맛을 잘 살리고 있다.
한식당을 개업하는 조선족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한국요리를 상당 기간 배운 사람들이다.
한국인이 주인인 한식당들은 훙췐루 주변에도 수십 곳이 성업하고 있지만, 일부는 중국인 밀집지역으로 진출해 성공한 사례도 여럿 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곱창구이집 ‘오발탄’과 우삽겹 구이집 ‘본가’는 중국에서 크게 성공한 한식당으로 꼽힌다.
이들 식당은 고객의 70% 이상이 중국인이고 식사를 하려면 최소 30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다.
문제는 중국인과 일본인이 운영하는 한식당들이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은 시내 중심가에서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영업하고 있지만, 맛이 중국화해 한국 고유의 맛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한식을 중국인의 입맛에 맞도록 변형한 것인데 한국인이 볼 때는 한식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까 우려를 갖게 만든다.
한식은 상하이에서 한류 바람을 타고 크게 주목받고 있으며 전통 한식의 맛에 매우 가까운 특징이 있다.
특히 중국 여성들은 한식이 건강과 미용에 좋다는 인식을 하고 있으며 한국 드라마에서 고기를 상추에 싸서 먹는 등의 한국 음식문화를 선호하고 있다.
현재 상하이에서 성공한 한식당들은 일반 중국 음식보다 30~100%가량 비싸지만 깔끔하고 맛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식당을 찾는 중국인들도 대부분 고소득층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한식당도 일본, 유럽 등 선진국 식당들과 비슷한 정도의 고급식당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중국은 음식 문화가 매우 발달한 나라여서 한식당들이 파고들어갈 여지가 많지 않다는 문제가 있으며 실제 많은 한식당은 한국인을 주요 손님으로 하고 있다.
개업하고 나서 얼마 안 돼 실패한 한식당들도 많이 있다.
비빔밥이 최근 수년간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가운데 작년 상하이 중심가에 비빔밥 전문점이 생겼는데,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이 비빔밥 전문점은 음식의 맛이 없는 데다 한식에 대한 종업원들의 이해가 부족해 서비스가 미흡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오천년`이라는 한식당도 작년 개업했으나 높은 가격 대비 특별히 맛이 좋거나 한국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지 못해 수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같은 한식이라도 적당한 가격을 받고 맛이 있어야 하는 데 실패한 한식당들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