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세곡동 은곡마을. 행정구역은 강남구지만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마을 안, ‘전통음식상설 교육장’이란 간판을 단 한옥집에서 고소한 냄새가 났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당에 수십 개의 장독이 보였다. 강의가 진행되는 방 안에 들어서니 ‘2011년도 전통음식교육’ 이라는 현수막 아래 조숙자(장류전문가ㆍ70)씨가 딸 또래의 30~40대 주부들 앞에서 밀 간장 만들기에 대해 설명하고, 주부 수강생들은 바닥에 앉아서 열심히 메모하고 있었다. 맨앞줄에 `청일점`인 50대 남성이 눈에 띄었다.
“밀간장은 1998년에 제가 개발한 간장입니다. 일반간장은 오래 보관하면 한약처럼 쓴 냄새가 나죠 ? 하지만 밀 간장은 향이 변하지 않아 오래두고 먹어도 좋습니다 ” 주부들은 조씨의 설명이 끝나자 다함께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에는 삶은 콩과 밀을 볶아 빻은 밀가루가 있었다. 수강생들로 빙 둘러싸인 채 조씨가 큰 그릇에 콩 삶은 물을 계속 부어가면서 밀가루와 콩을 섞었다. 이것을 대형 두유기(콩가는 기계)에 넣고 돌리자 메주가 가래떡처럼 뽑아져 나왔다. 말랑말랑해진 갈색모양의 메주를 대야 4개에 담아 방으로 옮겼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주부들은 손으로 따듯한 메주를 한 주먹씩 떼어내 공 같이 만든 후 손가락으로 눌러 눈, 코, 입 모양으로 홈을 세 개씩 냈다.
주부들은 메주 조각을 떼어 먹어보면서 “밀을 넣으니까 메주 향이 참 좋다. 미숫가루 맛이 난다" "캐러멜 착향료 등 화학제품이 들어간 간장보다 이렇게 담가 먹으면 건강에 좋겠다” "집에서 꼭 만들어 보겠다"며 얘기꽃을 피웠다. 유일한 남성 수강생인 이대성(56ㆍ귀농 준비중)씨는 “산에 들어가서 살려면 자연에서 직접 음식을 해먹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배우러 왔다”고 말했다. 모두들 진지한 표정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메주 만들기가 끝나자 조씨는 “밥에 밀간장과 참기름을 비벼주면 아이들도 참 잘먹으니 해줘보라”며 수강생들에게 메주덩이를 봉지에 넣어 나눠줬다. 이어 “숙제입니다~. 오늘 가져간 메주를, 가르쳐준 대로 집에서 띄워보시고 다음 주에 가져오세요, 잘 됐나 확인해봅시다” 며 강좌를 끝냈다.
조씨는 1993년부터 지금까지 3대째 내려온 장맛의 비결을 도시 주부들에게 매년 전수하고 있다. 2004년부터는 농업기술센터 장류(된장ㆍ간장)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식품회사의 러브콜이 있었지만 장을 제품화하지 않았다. “남들은 나보고 사업을 하지 않는다고 바보라고 해, 그동안 식품회사에서 밀 간장 제품화, 인터넷을 통한 소량판매 등 사업제안을 많이 했으나, 장을 대량생산하면 재료값을 내리게 되고 장 본래의 맛을 내기 힘들 거란 생각 때문에 모두 거절했어."
조씨는 “돈을 버는 것보다 전통 장의 제조법을 가르쳐주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며 “내가 주부들에게 하나하나 가르쳐 줘서 그 음식을 먹은 가족이 건강해지면 그게 곧 대한민국이 건강해지는 거지~”라며 웃었다.
서울시 농업기술센터는 밀간장 외에도 각 분야 명장들의 강좌를 열고 있다. 조숙자 강사의 두부 만들기(4월22일), 새우젓 담그기(4월29일), 조선식 강사의 텃밭 김치(5월3일~31일까지 매주 화요일), 최순자 강사의 떡 만들기(5월2일~23일까지 매주 월요일) 등이 있다. 각 강좌는 당일 오후 2시~4시까지 진행되며, 재료비는 1만∼10만 원 선이다.
자세한 내용은 농업기술센터 홈페이지(http://agro.seoul.go.kr) 강좌교육 메뉴를 이용하거나 전화 459-8994번으로 문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