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에 식약동원(食藥同源)이란 말이 있다. `음식과 약은 그 뿌리가 같다`는 뜻이다. 이 말대로 약 대신 식품으로 병을 치료하는 이색 한의사가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초아재 천연한의원을 개원한 정세연(35) 한의학 박사. 7년째 식품치료에 대한 연구와 진료에 여념이 없다.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의 길가에 자리잡고 있는 한의원의 문을 열자 실내에 가득 찬 풀잎 향이 코끝으로 번진다. 한약 냄새와는 전혀 다른 상쾌한 느낌이다.   천연한의원에서는 여느 한의원과 마찬가지로 한의사가 환자를 진맥하고,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한다. 다른 점은 `영양사`가 식이상담을 통해 식습관 관리를 해주고, 한의사가 환자에게 필요한 성분을 가진 식품을 중탕한 ‘천연약’을 처방한다는 것.   ‘음식이란 질병의 치료의 시작이자 끝’ 이라고 말하는 정 원장을 만나 식품치료에 대해 들어봤다. 정 원장은 처방전을 보여주면서 식품을 어떤 원리로 선택하여 천연약으로 만드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양방 의사가 휘갈겨 쓰는 영어표기의 처방전은 환자가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참 친숙한 이름들이 눈에 들어온다. 곶감 1개, 연잎 1장, 양상추 1.5 kg .. 등 평소에 우리가 먹는 익숙한 식품이었다. -처방전이 참 재밌네요. 천연약의 색이나 향은 어떤가요? 싹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풀잎 향이 좀 많이 나는 편이고 어떤 식품을 재료로 하느냐에 따라 색과 향이 달라집니다. 석류를 넣으면 좀 새콤한 맛이 나기도 합니다. 환자에게 필요한 식품은 천연약으로 처방해주면서 평상시에 그 식품을 많이 먹으라고도 합니다. 예를 들면 환자가 기침이 심하면 가래를 멈추고 기관지를 청소할 수 있도록 더덕과 도라지를 처방합니다. 또 곶감과 상추는 천연신경안정제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식품치료, 어떻게 이뤄지나요?   식품치료는 한의학의 한 분야입니다. 동의보감에는 채소, 곡류, 과일 편 등 각각의 재료의 효능과 성질이 제시된 음식편이 따로 있어요. 한의학에서는 우리가 먹는 모든 것에 대한 지식이 이미 다 나와있는데, 좀 더 약성이 강한 것이 한약 재료로 사용되는 거죠. 식품을 재료로 해서 만든 천연약은 마치 ‘트로이 목마`와 같은 효과를 낸다고 생각합니다. 약은 부작용이 많고 몸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 들어오기 때문이죠. 하지만 식품은 우리가 식사하면서 늘 먹던 것이라 약으로 섭취해도 거부감이 적고 흡수율이 커 효과가 좋습니다.     -식품으로 처방하는 게 참 인상적입니다. 식품치료를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중고등학교 시절 부모님을 따라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살게 됐어요.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몸무게가 늘어나 그해 겨울 살을 뺄 작정으로 저녁에 달리기를 한 적이 있죠. 그런데 운동을 한지 이틀 만에 감기에 걸렸고, 폐렴으로 악화됐어요. 병원을 찾아갔더니 의사는 카모마일 차를 마시라고 하더군요. 부모님과 저는 의아했지요. 한국에서는 폐렴에 걸리면 약을 먹으라고 할 텐데 의료체계가 더 발달된 유럽에서 차를 처방해주니 말이에요. 그래서 슈퍼에서 카모마일 차를 사 계속 마셨고 코로 뜨거운 김을 쐬었습니다. 며칠간 계속 하니 신기하게도 증상이 호전됐어요. 저는 식품이 약만큼 큰 효과가 있다는 것에 놀랐고 이때부터 자연, 천연물로 치료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생겼어요.   -한의원의 이름도 ‘천연’한의원이고 처방되는 약도 ‘천연약’인데, 왜 ‘천연’ 인가요? 콩나물 안에 있는 ‘아스파라긴산’에 숙취해소 효능이 있지요? 이 효능을 얻기 위해 아스파라긴산만을 추출하는 것이 아니라 콩나물을 통째로 다 사용하는 것이 ‘천연’이라고 봅니다. 가공품이 아니라 살아있는 그 자체를 통째로 써야 오롯이 그 식품에 있는 효능을 모두 가질 수 있는 것이죠.     -천연약은 한약과 무엇이 다른가요? 한약과 크게 다르진 않지만 천연약에는 식품재료가 많이 사용됩니다. 배추, 석류, 버섯 등 식품재료를 중탕합니다. 식품과 한약재를 섞어 함께 사용하기도 하는데 가급적 순한 한약재를 넣습니다. 환자별로 필요한 식품들의 수액을 파우치에 담아 주는데, 재료가 몇g 인지, 식품별로 어떻게 조합할지 등의 양과 비율이 중요합니다.   -기능성 식품과의 차이점은 무엇이죠?  천연약은 환자의 질병, 컨디션별로 필요한 식품을 처방한 개인별 맞춤약입니다. 또한 건강기능식품은 필요한 기능성분만을 추출하지만, 천연약은 한가지 성분만을 추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건강기능식품은 생선에서 오메가3만을 추출해내고 과일에서 비타민만을 추출해 고농도로 만들지요. 하지만 천연약은 식품에 있는 그 성분만을 추출하는 것이 아니라 식품 자체를 통째로 넣어 중탕함으로서 그 안에 있는 성분을 모두 얻습니다.   -약국에서 파는 약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약국에는 효과가 빨리 오는 센 약이 많습니다.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지만 독성이 있고 부작용이 많죠. 하지만 식품, 콩나물에 무슨 독성이 있나요? 위에 부담이 없어 일반 약처럼 속을 긁지 않아 `식후 30분`에 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밥 먹는 시간과 관계없이 하루 3번 섭취하면 됩니다.   -초아재에는 어떤 환자들이 주로 옵니까?  한 달에 약 100명 정도 진료합니다. 그중 70%가 암환자입니다. 암환자들은 병원에서 처음 암 진단을 받고 오기도 하고 방사능 치료를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환자에게 가능하면 불필요하게 많은 검사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암환자들은 그동안 너무 많은 검사를 받아 무척 지쳐있거든요. 이외에 생활습관병인 당뇨병이나 비만, 또는 통증, 여성질환, 피부질환 등으로 다양한 환자가 찾아 옵니다. 때로는 한의원에서 미각교육이 필요한 환자와 함께 식사하기도 합니다. 1식 5찬을 차려놓고 짠맛이나 단맛 등에서 어느정도가 적정수준의 맛인지 느끼게 해주며, 천연 드레싱 조리법 등 을 알려줍니다.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요? 얼마 전 60대 중반의 노인이 병원을 찾아왔어요. 위암, 대장암, 간암, 직장암 등 암이 몸 여기저기 전이됐고 오랜 기간의 투병생활로 몸이 많이 약해져있었죠 . 몸이 힘들어서 더 이상 항암치료를 계속할 수 없는 환자였어요. 암환자는 백혈구 수치가 어느 수준까지 올라가지 못하면 항암치료를 못합니다. 백혈구 수치가 다시 정상수준으로 돌아 올 때까지 항암치료를 쉬어야 하거든요.   그 환자는 성격이 굉장히 까칠했어요. 하지만 진료를 계속 받으면서 식품처방약에 적응이 됐고, 식욕도 점차 좋아졌어요. 지금은 백혈구 수치도 다시 정상으로 유지돼 예전처럼 똑같은 양방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 분의 성격과 태도가 처음 찾아오셨을 때와는 정반대로 많이 부드러워졌는데, 이렇게 환자분들의 건강이 회복되면서 웃는 얼굴을 보면 참 보람을 느낍니다.   -원장님의 치료관은 무엇입니까? 환자의 치료방향은 진료자의 철학에 따라 달라집니다. 환자의 암세포를 다 죽였는데 정작 면역력이 너무 약해져 영양실조나 사소한 병에 걸려 사망하는 등 아이러니한 상황이 많습니다. 저는 우리 몸은 ‘흐르는 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암이 더러워진 물이라면, 그 물만 떠내거나 끊어버릴 수 없어요. 깨끗한 물을 계속 첨가해 정화하면 그 물 전체가 깨끗해지듯이 우리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어린 싹에는 훌륭한 효과가 많은데, 항상 잎이 2개씩 나요. 한의학에서는 이를 두고 잎 하나는 몸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으로 봅니다. 그래서 우리 한의원 이름이 싹의 두 잎인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는 의미로 `초아재`(草芽齋)입니다. 환자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고 싶습니다.    
최종편집: 2025-07-31 12: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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