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은 경기도 양평에서 `팅이`와 `보리`를 키우며 산다.
팅이는 임 감독이 먹이를 주다가 집으로 데려와 기른 유기견의 새끼고 보리는 동네 꼬마가 길에서 발견했지만 주인을 찾지 못한 개다.
"야산에 있는 유기견에게 밥을 줬는데 주민들하고 마찰이 많았어요. 개가 텃밭을 망친다는 거죠. 쥐약을 놔서 개를 죽이겠다고 협박해 제가 구조할 수밖에 없었어요."
서울 성북동에 살던 임 감독은 개들 때문에 6년 전 양평으로 이사까지 했다. 몸집이 큰 개들이라 마당이 넓은 집에서 맘껏 뛰놀며 살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임 감독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회원으로 활동하다 2년 전부터 카라 대표를 맡고 있다. 대표직을 제의받았지만 영화 일 때문에 오랫동안 고사하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의 법회를 듣고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달라이 라마가 깨달음과 지혜는 실천으로 완성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 말씀이 저한테 꽂힌 거죠. 영화에만 24시간을 쓰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나중에 영화 안 만들 때 자원봉사하는 것도 좋지만, 인지도와 영향력이 있을 때 활동하는 게 더 나을거라고 봤어요."
동물 보호 활동에 앞장서던 임 감독은 최근 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옴니버스 영화 `미안해, 고마워`까지 내놓았다. 그는 제작총괄을 맡아 다른 3명의 감독과 함께 단편 1편씩을 연출했다.
야생동물을 제외한 동물 주무 부서인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제작비를 지원받아 영화를 만들게 됐다.
임 감독은 `인간과 동물의 교감`이라는 큰 주제를 제시했는데 다른 감독들이 모두 개를 소재로 택했다면서 "나는 개를 키우고 있지만, 다양성을 위해 고양이를 택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동물에 관심이 많은 감독이 별로 없었다"면서 "동물에 각별한 관심이 있지는 않지만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공존하는지 보여주자는 의도에 흔쾌히 공감하신 감독들을 섭외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연출한 `고양이 키스`는 길고양이를 돌보는 젊은 여성과 동물이라면 질색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렸다. 집 없는 고양이들에게 사료와 물을 주는 주인공에게 동네 주민은 화를 낸다. "도둑고양이는 다 없어져야 된다"는 말까지 나온다.
임 감독은 "사람에게는 쓰레기봉투 찢기고 밤에 좀 시끄러운 정도의 불편인데 고양이에게는 생존이 걸려있다"면서 "고양이는 보통 15년 정도 사는데 길고양이는 질병이나 사고, 사람들의 학대 때문에 평균 수명이 2~3년밖에 안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극 중에 나오는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에 대해 "지자체별로 시행된 지 몇 년 됐는데 고양이 개체 수를 너무 늘리지 않으면서 인간과 고양이가 공존하는 차선책인 것 같다"고 말했다.
동물에 대한 그의 사랑은 어릴 때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어릴 때 시골에 살았는데 동네 사람들이 나무에 개를 매달아 놓고 몽둥이 찜질해서 먹는 게 일상적인 풍경이었어요. 제가 알던 이웃의 개들이 그렇게 죽은 게 아주 큰 상처로 남았죠. 개 식용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 감독은 "키우는 개와 먹는 개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데 개는 다 같은 개다. 똥개는 먹어도 되고 몰티즈는 안 된다는 논리는 흑인은 노예로 팔려도 되고 백인은 안 된다는 거랑 똑같다"고 일갈했다.
그는 8년 전부터 육류나 생선은 전혀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다.
임 감독은 "인간은 지나치게 동물을 착취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은 지구를 같이 나눠쓰는 동반자가 돼야한다"면서 인간과 동물이 공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영화 `날아라, 펭귄`과 `여섯 개의 시선`을 만들었던 임 감독은 영화의 힘을 믿는다.
그는 "영화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움직일 수 있게 한다"면서 "영화로 미학적인 성취를 이루고 싶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좀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임 감독은 차기작으로 일본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면서 "시나리오를 내가 쓰면 흥행이 안 되고 다른 사람이 쓰면 흥행이 되는 것 같다"며 웃었다.
= 제작총괄을 맡은 임순례 감독을 비롯해 송일곤, 오점균, 박흥식 등 4명의 감독이 1편씩 연출한 영화 4편을 묶었다.
이들 영화는 인간과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의 교감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고마워, 미안해`(송일곤)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나서 딸이 아버지의 반려견을 키우는 내용으로 김지호가 출연했다.
`쭈쭈`(오점균)는 노숙자 영진이 다른 노숙자 패거리에게 잡아먹힐 뻔한 개를 구해주면서 개와 친구가 되고 세상에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렸다.
`내 동생`(박흥식)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보리를 친동생처럼 사랑하는 6살 소녀 보은이의 이야기다. 보은이에게 진짜 동생이 생기면서 이별의 순간이 찾아온다.
`고양이 키스`(임순례)는 길고양이를 두고 티격태격 다투던 부녀의 화해를 담았다.
오는 26일 개봉. 12세 관람가. 상영시간 11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