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근대 약학이 들어온지 100여년. 이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약학 연구에 필수적인 통일된 의약용어사전이 나오지 못했다. 사전 편찬이 워낙 힘든 작업이라 누구도 쉽게 나서지 못한 탓이다. 최근 약학계의 원로 백우현 박사(76.한국제약기술교육원 원장)가 1천 672페이지의 <종합·실용 의약용어사전>을 펴내 약학계의 찬사를 받고 있다.   한국 최초의 이 의약분야 종합 용어 사전은 표제어가 3만2천648개에 이를 정도로 방대한 규모다. 그는 이 사전을 만들기 위해 12년간 국내외에서 수집해온 자료와 외국의 의약용어 사전, 메모지들과 씨름을 해왔다. 사전 완성과 동시에 개정판 준비를 하고 있는 백 박사를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약학계를 위해 정말 큰 일을 해내셨는데요..의약용어사전을 만들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1997년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제약기술 국제학회`인 PDA(Parenteral Drug Association)의  한국 지부를 창립하면서 `뉴스와 기술정보`라는 저널을 발간했어요. 그 당시 여러 편집위원들의 원고를 받아 보니 우리말로 된 의약용어가 정립돼있지 않아 같은 영어용어를 편집위원마다 다르게 번역해서 혼란스럽더군요. 이때 ‘간단한 GMP(우수의약품제조관리기술)용어집’이라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에 용어정리를 시작했어요.‘GMP용어집’을 작성하면서 의약 용어 전체의 해석에 일관적인 기준과 통일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1999년에 GMP용어뿐만 아니라 의약인에게 필요한 모든 용어를 집대성하는 용어사전 원고 작성에 들어갔습니다."  -사전 제작을 위한 정보수집은 어떻게 했나요? “제가 40년 이상을 제약회사 기술부분에 있었어요. 일하면서 접하게 되는 미국, 일본 등 해외의 의약용어 관련 서적 34종을 구입하는 등 여러 자료들을 전부 모아서 분석, 참고했지요. 특히 일본에는 다양한 주제의 의약관련 용어집 또는 사전이 16권이나 있었는데, 의약용어사전이나 용어집이 한 권도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도서 구입비만 대략 500만~600만원 든 것 같네요. 작업 시간과 노력은 돈으로 따질 수도 없는 것이고요.”  -사전 제목에 ‘종합•실용’이 붙은 것은 왜 그런가요. “일본의 경우를 보면 GMP용어집, 의약용어사전, 엔지니어링 용어집 등이 각각 따로 있어요. 가령 GMP용어집을 보다가 다른 분야로 벗어나면 또 다른 사전을 찾아야 돼죠. 나는 16권의 내용을 한 권의 책 안에 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작업했어요. 대학교수, 대학생, 제약회사 직원 등 의약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누가 봐도 종합적이면서 실용적인 사전입니다.” -제작기간이 12년이면 하루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한 거죠? “평일에는 퇴근 후 시간 나는 대로 작업했어요. 장소도 가릴 것 없이 USB를 가지고 다니면서 회사에 남아서 하기도 하고, 집에서도 하고 틈 나는 대로 했지요. 주말에는 아침부터 새벽2시까지 하루 종일 사전작성에 매달렸습니다. 집에 있는 골프채도 지금 녹슬어 버렸을 정도예요. 하하하..”    그의 사무실에는 12년간 총 11번의 수정작업을 거쳐 간 사전 교정지가 그의 키보다 높게 쌓여 있었다.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기억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아~내가 원래 메모하는 습관은 아주 철저해요. 매일 아침 6시 스포츠센터에서 운동하고 출근하는데, 러닝 머신에서 달리다가도 TV에 의약 관련 용어가 나오면 메모하곤 했어요. 요즘 신문엔 약자를 참 많이 쓰던데 새로운 용어가 보일 때마다 메모했습니다. 어떤 장소에서나 항상 메모할 준비가 돼있었죠. 사실 정말 이 작업은 끈기가 없으면 못해요."   -힘들거나 어려운 일은 없었나요?   "물론 사전을 제작하는 동안 지친 적도 있었죠. 정말 일이 많아 `아 내가 왜 이런 큰일을 시작했나`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지만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누구라도 꼭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멈추지 않고 사명감을 가지고 진행하다보니 결국 책이 나왔어요." -사전을 만든다는 게 엄청난 일인데 왜 혼자 하셨어요? "처음엔 몇 사람과 함께 해볼까 생각도 했지요. 하지만 사전의 용어가 하나하나는 독립적이지만 서로 연관돼있어 해석에 통일성이 필요하거든요. 예를 들어 microbe(미생물)라는 용어를 찾으면 `→microorganism(미생물)를 참조하라` 라고 적혀 있듯이 말이에요. 이런 작업은 혼자 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고, 학문용어와 기업체 용어를 모두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 제가 제약회사 기술분야에서 수십년을 일해왔고, 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해서 산업계와 학계를 좀 안다고 할까요,그래서 혼자 하게 됐습니다." 백 박사는 보령제약 생산본부장/중앙연구소장,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 겸임교수, 종근당 이사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 최초의 제약기술 전문지 ’팜텍’의 발행인이고 인하대학교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종근당 재직 시절, 세계보건기구(WHO) GMP, 미국 식품의약품관리청(FDA) CGMP, 유럽자유무역협회(EFTA) GMP 등을 연구해서 `종근당 GMP` 기준을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정부의 요청에 따라 한국 GMP 초안을 작성한 이후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GMP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힘든 작업을 끝냈으니 이제는 쉬실 것 같은데 혹시 앞으로 다른 계획이라도 있으신가요?   "사전이 출간됐다고 해서 작업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도 계속 새롭게 등장하는 의약계 용어들을 추가보완하고 수정하여 개정판을 낼 생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전을 이용해서 의약계의 발전에 꼭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또 지금 한국 제약회사의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ICH 원료의약품 GMP 해설서`와 WHO, 미국, 일본 등의 GMP기준을 해설한 `GLOBAL GMP Q&A` 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나이를 생각해서 쉬엄쉬엄하라고 말하지만, 건강이 따르는 때까지 제약업계 발전을 위해 일하고 싶어요. 바쁘게 일하는 것도 건강관리에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종합.실용 의약용어사전>은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02-880-5252, 889-4424) 또는 전국 대형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최종편집: 2025-07-31 05:37:56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제호 : 왓처데일리본사 : 서울특별시 강서구 화곡로 68길 82 강서IT밸리 704호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1267 등록(발행)일자 : 2010년 06월 16일
발행인 : 전태강 편집인 : 김태수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현구 청탁방지담당관 : 김태수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태수 Tel : 02-2643-428e-mail : watcher@watcherdaily.com
Copyright 왓처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