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알고 이야기 합시다
"소믈리에가 되고 싶은데 거기서 배울 수 있나요?"지난해 내가 운영하고 있는 와인스쿨로 한 여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아들이 지금 고 2 학생인데 꼭 소믈리에가 되고 싶다면서 지금 당장 소믈리에 공부를 하겠다고 졸라 와인 학원으로 전화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고등학생뿐 아니다 중학생들도 소믈리에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상담 전화가 오고 있다. 소믈리에 지망생들은 어린 학생들뿐만 아니다. 현재 업소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소믈리에로 직업을 바꾸기를 원하는 사람, 전공을 바꾸어서 소믈리에를 공부하고 싶다는 대학생, 소믈리에 과정을 배우면 취업이 가능하냐는 가정주부, 또 현재는 직장인이나 나중에 와인 관련 사업의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 등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소믈리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TV 드라마에서 재벌 가족들의 식사 때에나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 나왔었는데 요즈음에는 보통 사람들의 식사에도 와인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또 와인이 심장병에도 좋다, 불면증에도 좋다, 성인병도 예방한다, 암도 예방한다는 등 여러 가지로 건강에 좋다는 연구 결과들이 심심찮게 매스컴을 통하여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드라마나 뉴스들을 보고 웰빙을 추구하는 사람들 가운데 기왕에 술을 마시려면 건강에 좋은 와인을 마시자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 한때 골프를 모르면 대화하기가 어렵다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이 요즈음에는 와인을 모르면 대화에 끼어들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와인에 관심을 가지고 또 즐기는 층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기업 등에서는 세계화는 영어만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서양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고 서양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와인을 아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판단, 와인의 상식과 매너 등을 강의해 달라는 의뢰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국제화 시대에 와인이 우리의 생활 속에 깊이 들어오는데 따른 자연적인 추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몇 해 전에는 만화책에 소믈리에가 소개되어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되기도 해서 그러는지 요즘 젊은 층에는 와인보다는 소믈리에라는 직업에 더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시대상으로 어린 학생들도 장래 희망이 소믈리에가 되어 멋있게 일하고 싶다면서 학교 공부를 그만 두고 소믈리에 공부를 하겠다고 부모님을 졸라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와인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지고 또 공부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와인이 점점 더 대중화되고 와인의 소비도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와인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아주 환영할 만한 일로 생각된다.많은 어린 학생들이 소믈리에가 되는 것이 장래 희망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나 어린 학생들이 소믈리에가 되기를 희망하게 되는 그 동기를 알고 보면 썩 그렇게 좋다고는 볼 수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만화나 드라마에서 소믈리에를 너무 미화하고 있어서 어린 학생들이 혹시나 소믈리에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 때문이다.
소믈리에가 해야 할 여러 가지 많은 업무 중에서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업무는 숨겨지고 와인 맛보는 것만을 너무 강조하여서 와인의 맛을 보고 와인 이름을 알아맞히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멋있는 사람으로만 부각되어 이것이 어린 학생들로 하여금 “야, 그 소믈리에 정말 근사해 보인다.” 하고 생각하게 되지 않나 하는 점이다.
소믈리에를 지망하는 학생들과 일반인들 또 사회적으로도 소믈리에라는 직업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소믈리에는 옛날에 군대나 기관 등에서 짐을 운반하는 짐승을 관리하는 사람 혹은 보급품을 관리하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이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레스토랑 등에서 고객에게 와인을 추천하고 와인을 서빙하는 사람을 칭한다. 영어로는 와인 웨이터(wine waiter) 혹은 와인 스튜어드(wine steward) 라고도 한다.
소믈리에는 업소에서 단지 와인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고 꼬냑, 위스키, 맥주 등의 주류와 사이다, 콜라, 과일주스, 생수, 커피, 차 등 주방에서 조리해서 나오는 요리 이외의 모든 음료를 서비스한다. 또 창고에 있는 이런 제품들의 재고 관리와 구매에 관한 업무도 한다.
소믈리에는 레스토랑이나 바 등에서 고객들이 원하는 경우 주문한 요리에 잘 어울리는 적당한 와인을 추천하고, 와인을 품격 있게 서빙하여 고객들이 만족하도록 하여 업소가 돈을 많이 벌도록 하는 것이 기본 임무이다.와인을 잘 추천하기 위하여 음식과 와인의 맛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고 와인의 맛을 잘 알기 위하여 본인이 와인 이론 공부도 많이 하고 또 와인 맛을 보는 훈련도 많이 해야 한다.
그러나 소믈리에가 하는 여러 가지 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와인 맛을 보는 일이 아니라 와인을 잘 서빙하여 고객이 만족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기 바란다. 실제로 고객들과 와인의 맛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별로 길지 않고 와인을 서빙하는 등 고객이 즐거운 시간을 가지도록 배려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전체적인 서비스를 통하여 고객이 만족하고 다시 방문할 수 있도록 하여 업소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 당연히 가장 중요하다.
소믈리에가 와인 맛에 대하여 너무 아는 체하여 손님들과 토론을 벌이거나 손님들을 교육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 또 너무 오랫동안 와인 맛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소믈리에는 근사한 제복을 입고 우아하게 와인의 맛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 업장에서 고객의 만족을 위하여 피나게 노력해야 하는 영업사원의 하나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또 레스토랑 등에 근무하는 소믈리에는 대체로 점심시간에 시작하여 밤 10시경까지 근무하고, 와인 바 등에서는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 경까지 일을 해야 하는 힘든 직업이다. 이렇게 주로 야간에 근무하다보니 주간에 근무하는 일반 직장인들과는 다르게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 등의 사회생활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또 소믈리에도 매니저가 될 때까지는 와인 잔을 씻거나, 업장 청소 등의 힘든 일을 하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와인 문화가 대중화되면 머지않아 우리나라의 와인 시장이 지금보다 4~5배 커질 것으로 전망되며 그렇게 되면 와인 산업에서 종사해야 할 사람들도 많아지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소믈리에의 수요도 많아지고 중요성도 커지게 되므로 현재보다 소믈리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대우가 훨씬 좋아지게 될 것으로 보이므로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소믈리에가 되기를 희망할 것이다. 그러나 소믈리에 직업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버리고 현실적으로 소믈리에 업무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필자 소개: 연세대 화공과 졸업, 미국 포도주 공장 연수(캘리포니아, 뉴욕 주), 독일 가이젠하임 포도주 대학에서 양조학 수학, 프랑스 보르도 소재 CAFA 와인스쿨 정규 소믈리에 과정 수료, 국산 와인 마주앙 개발 주역으로 중앙대, 세종대 초빙교수 역임, 서울대, 연세대, 한양대, 단국대, 기업체 등에서 와인 특강, 저서로 `와인, 알고 마시면 두배로 즐겁다(세종서적)` `와인 인사이클로피디아(세종서적)`, `와인 가이드(중앙북스)`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