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처데일리]심안맥진학회 황재옥 회장(몸편안한의원 원장)이 한의학적 진단의 핵심인 맥진을 과학적으로 서술한 ‘맥진, 몸과 마음을 읽다(솔트앤씨드)’를 출간했다. 맥진은 한의학적 진단의 핵심으로 12개의 청진기로 온몸을 스캔하는 것과 같으며, 이것으로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맥진기로 맥파와 맥동을 추출해서 분석해온 40년간의 임상 데이터를 통해 한의학적 진단을 이야기하고 있다.“맥진은 12개의 청진기로 온몸을 스캔하는 셈”거시적 관점에서 우리 몸을 살펴보는 한의학적 건강검진반복되는 중이염이 도통 낫질 않는다는 고등학생 한 명이 한의원에 와서 맥진검사를 했다. 오른쪽 손목의 바깥쪽 요골동맥 3군데 맥 부위(촌관척)에 센서를 연결하자 모니터에 폐, 비장, 심포, 대장, 위장, 삼초의 기장부 6개 맥을 나타내는 파형이 나타났다. 또 왼쪽 손목의 요골동맥에 센서를 연결하자 모니터에 심장, 간장, 신장, 소장, 담낭, 방광의 혈장부 6개 맥 파형이 나타났다. 진료실로 들어가자 한의사는 맥파의 파형과 크기를 분석해 귀에서 왜 농이 아물지 않고 염증이 반복되고 있는지 설명해주었다. 귀를 관장하는 신장맥을 보니 춥고 진액이 메마른 상태였기 때문에 항생제를 먹고 주사를 맞아도 깨끗하게 낫지 않고 재발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심장맥과 간장맥을 보면 바짝 타고 메마른 데다가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고 긴장된 상태였다. 피부도 메마르면 열이 나고 상처를 잘 입는 것처럼 오장육부도 탄력이 없고 물기가 없으면 열이 나고 상처를 잘 입는 법이다. 맥파를 보면 성격이 굉장히 꼼꼼한 걸 알 수 있었는데, 내성적이고 말이 없어서 아파도 웬만하면 참는 성격이었다. 이 학생의 몸속 상태에 맞는 한약 처방과 침 치료로 염증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새 책 ‘맥진, 몸과 마음을 읽다’는 한의학의 진단에서 12장부의 맥을 짚어 환자의 상태를 판단하는 맥진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강조한다. 이 고등학생의 사례 외에도 40년 가까이 쌓인 임상 데이터는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요새는 한의원에서 왜 맥을 안 짚어줘요?” 저자는 이런 환자의 질문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침과 추나 치료만으로 한의원이 돌아가는 곳이 많다 보니까 환자들은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히 알고 싶은데 듣지 못하는 데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한의원만의 문제도 아니다. 의사와 얼굴 마주보고 대면하는 진료 시간이 2분, 3분밖에 안 된다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 병원에서 환자들은 갑갑증을 느낀다. 이건 난치병이 아닌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제 병이 뭐예요?” “제가 왜 아픈 거예요?” “고칠 수 있어요?” 이것이 그동안 환자들이 저자에게 가장 많이 질문하며 궁금해했던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책에서 맥진의 원리를 풀어냄으로써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는 답을 하고 있다. 손목 안쪽의 요골동맥 박동이 느껴지는 곳에 손가락을 얹고 맥을 파악하는 것을 ‘진맥’ 또는 ‘맥진’이라고 한다. 한의학의 맥진은 거창한 의료장비 없이도 언제 어디서나 진단을 내릴 수 있어 주요한 진단법으로 활용해왔지만, 손의 감각으로만 알아내려고 하면 너무 어렵고 배우고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그 때문에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맥진의 고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의학은 치료 기술이 잘 발달돼 있어 개인의 상태에 따라 맞춤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진단이 제대로 이뤄져야 치료도 정확해질 것이다. 그동안 손으로 맥을 짚는 한의학은 너무 주관적이며 가변적이라는 비평을 받아왔고, 몇몇 고수를 제외하면 너무 감으로 치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한의학 이론에 따라 디지털화된 과학적 기기로 개발된 맥진기 덕분에 정확도, 객관성, 가시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한의학 이론을 적용한 12장부의 27맥을 그려낼 수 있는 전세계 유일의 의료기구인 맥진기는 1993년에 처음 의료보험에 포함되어 보건복지부 지정 한방의료기 1호가 되었다(당시엔 한 번 맥진할 때 1만 원).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오장육부를 모두 살펴볼 수 있는 건강검진 방법이 바로 맥진기로 맥진검사를 하는 것이다. “조직의 병은 서양의학, 기능의 병은 한의학”12장부의 한의학적 해석을 알면 병을 이해할 수 있다!현대에 난치병이라 불리는 것들의 공통점은 병의 원인을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 의학에서도 통합의학, 기능의학 등의 흐름이 나타나서 인체가 독립된 기관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시스템으로서 작동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하나의 질병에 하나의 약물을 적용한다는 현대 의학의 문제점을 인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원래 서양철학은 유물론적 사고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사람을 보고 치료하기보다 질병만 보고 치료하는 데 집중한다. 따라서 조직을 관찰하고 미시적인 시각으로 더 작은 단위로 세밀하게 국소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발달해왔다. 만약 동양적 사고가 유입되지 않았다면 인체를 시스템으로 보는 시각은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다. 학력이 높은 손자보다 공부를 많이 못했던 할머니가 우리 몸의 작용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사실 그 옛날 『동의보감』의 한의학적 건강 상식들이 그만큼 대중적으로 많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자주 쓰는 말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간담이 서늘하다”, “마음이 편해야 속이 편하지”,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이런 말들은 모두 한의학적 표현이다. 이것은 몸에 나타나는 질환뿐 아니라 정신 질환에도 해당된다. 분노, 공포, 슬픔, 지나친 생각 등(칠정)은 몸에 영향을 미쳐서 질병을 일으킨다. 한의학 표현으로 말하면 거센 바람, 장마, 오랜 가뭄, 심한 추위 등 외부적 환경(육음)뿐 아니라 인간의 오욕칠정도 생활습관, 자세 등과 함께 병의 원인이 된다. 만약 급성 위통이 나타난 환자가 있다고 해보자. 맥진검사를 하면 식중독처럼 음식에 의한 복통인지, 스트레스로 인한 복통인지 맥진기가 그려내는 맥파를 보고 명확하게 바로 구별할 수 있다. 콧물, 재채기가 나올 때도 감기에 의한 것인지, 비염 증상인지 맥파를 보고 알 수 있다. 우리는 한의학의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몸이 아픈 원인을 찾고 몸을 회복하는 데 훨씬 효과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인간의 질병은 조직상의 질병, 기능상의 질병, 구조적 질병, 정신적 질병으로 나눌 수 있다. 조직상의 질병은 염증, 궤양, 혹이 있는지, 암이 숨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인데, 서양의학은 조직의 병을 진단하고 고치는 데 한의학보다 뛰어나다. 반면 한의학은 기능상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 예를 들면 “피곤해요”, “잠이 안 와요”, “밥맛이 없어요”, “툭하면 감기 걸려요” 등의 문제들이다. 소화가 안 되는 사람은, 첫째 마음이 편하지 않은 사람, 둘째 식생활이 불규칙적이고 습관이 좋지 않은 사람, 셋째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다. 맥진검사를 하면 이런 유형을 모두 구분해서 치료할 수 있다. 서양의학도 한의학도 사람의 몸을 완벽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열을 가릴 일이 아니라 관점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 싸울 일이 없고, 보완하면서 환자를 도울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12장부의 명칭만 설명해도 한의학적 관점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맥진에서 신장은 kidney와 일치하지 않으며 비장은 spleen과 일치하지 않는다. 방광맥에서는 오줌보인 방광(bladder)을 보는 것이 아니라 척추를 본다. 12장부의 분류는 해부학적 분류가 아니라 기능적 분류이기 때문이다. “몸의 문제인지, 마음의 병인지 구별할 수 있다”40년 가까운 맥진 임상 사례로 보는 질병예방법맥을 보는 근본적인 이유는 환자가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나 당장의 불편함은 이야기하지만 그 외에는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양의학적 사고에 젖어들어 있는 현대인들은 여러 가지 증상들이 서로 관련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들도 많다. 그런데 맥진을 하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심상, 생활습관까지 파악할 수 있다. 청소년의 비장맥을 보면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어린 아이들은 가정이 행복하면 12장부의 맥이 위로 뛰며, 밝고 명랑하다. 나대느라고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전반적으로 밑으로 내려가는 맥인 경우에는 아이들이 움직이질 않고 말을 안 한다는 특징이 있다. 언어장애가 있다거나 어린아이라서 표현을 잘 못하는 경우라도 맥파를 보면 환자 스스로 모르고 있는 것까지 짚어낼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한의사라면 꼭 맥진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년의 한 여성이 갑작스럽게 발생한 이명으로 맥진검사를 하러 왔다. 맥을 보고 나서 뭔가 불만이 있지 않은지 상담을 했는데, “빨간 자동차를 사고 싶다”는 말을 남편이 안 들어줘서 화딱지가 났던 것이 이명이 생긴 원인이었다. 단순히 자동차 이야기만 들으면 별난 여성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아내의 취향을 무시하고 남편이 20, 30년간 아내의 일에 대해 마음대로 해왔던 것이 쌓였다가 폭발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한의학은 기능을 보는 데 탁월하기 때문에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뛰어난 것이며 치료약도 잘 구비되어 있다. 밤에 라면을 끓여먹고 잤더니 부었다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것도 안 했는데 띵띵 붓는다는 사람도 있다. 림프 순환의 문제일 수 있는데, 한의학적으로는 뇌와 화병, 즉 심적인 문제로 본다. 이럴 때 이뇨제를 쓰는 것이 아니라 화병 푸는 약을 쓰는 것이 다르다. 한약에는 마음에 작용하는 처방들이 발달해 있어서 곧잘 듣는다고 한다. 저자의 임상 사례를 보면 심리적인 부분도 꼭 짚어주는데, “맥을 보면 부글부글 끓고 있고 속상한 게 참 많은데 무슨 일이 있나요?” 하고 말을 거는 경우가 많다. 한의학적 용어로 병의 원인은 육음칠정으로 정리된다. 육음은 피부, 입, 코 등으로부터 시작해 바깥에서 안으로 병이 침투하는 양상이며 날씨와 관련이 있고 초기에는 오한, 발열, 두통 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칠정(감정)은 직접적으로 내장을 상하게 하며, 기능적인 영향을 미치고, 상태를 급격히 악화시키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인간의 질병은 마음에서 비롯되었고, 마음에서 출발해 몸을 약하게 만든다는 걸 보여주는 데이터는 차고 넘친다. 40년 가까이 맥진을 하면서 환자와 대화하다 보니까 저자는 고전의 원리 원칙이 얼마나 정확한지, 얼마나 사람을 종합적으로 정밀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현대 의학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 짧은 진료 시간에 답답해진 환자는 완전히 낫지 않았는데 이 병원에서 더 이상은 나아질 것 같지 않을 때 “괜찮다”고 말해버린다. 환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곳이 필요한데, 그런 면에서 맥진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맥진의 장점은 심신을 다 읽기 때문이다. 저자는 후배 한의사들을 위한 당부도 잊지 않는다. 학문의 깊이가 짧은 사람이 한의학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자꾸 서양의학적으로 해석하고 따라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마치 부처님을 기독교 교리로 해석하려고 하는 것과 같아서 설명이 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과 사물을 보는 한의학적 시선을 잃어버리는 건 잘못된 선택이라는 당부다. 책 속으로현대인들은 서양의학적 사고로 분류된 장기의 이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12장부의 목록을 보면 그 개념을 오해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물론 12장부가 해부학적 분류와 전혀 상관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기 때문에 몇 가지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은 인체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이걸 반드시 알고 난 후에 이 책을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첫째, 12장부에서 심장은 두 개다. 해부학적으로 심장이 두 개란 뜻이 아니니까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 맥진 결과지에 보이는 심포(心包)는 혈액을 펌프질해서 온몸에 퍼뜨리는 역할을 하는 심장을 말한다. 해부학적으로 바라보는 심장에 좀 더 가까워서, 현대인들이 보통 ‘심장병’이라고 생각하는 협심증, 심근경색 등의 질병을 이 심포맥에서 볼 수 있다.반면 심장(心臟)은 마음을 보는 기관이다. 해부학적 분류보다는 기능적인 분류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 땅에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 생긴 지가 2023년 현재 기점으로 15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우리가 서양의학적 사고방식에 젖어든 지도 150년이 안 되었다는 뜻이다. 반면에 한의학적 사고는 우리가 쓰는 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 몸속 DNA에는 몇 세기 동안 저장된 한의학적 사고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심장이 두 개라는 말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일로 마음이 아플 때 우리는 “심장이 아파”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그때의 ‘심장’이 바로 맥진 결과지에 있는 심장이다. 영어 사전을 찾아봐도 heart는 심장이기도 하고 마음이기도 하다. p. 30 “먹는 즐거움과 위장장애를 바꾸셨네요”비유하자면 자궁은 동굴이다. 정자가 추운 데 들어가면 활동성이 떨어지지만 따끈따끈한 데 들어가면 즐거워서 춤을 춘다. 이 환자는 자궁의 상태를 보는 삼초맥이 춥고 거칠거칠했다. 이것은 자궁 점막에 물이 말랐다는 뜻이다. 자궁이 춥고 건조하면 아기가 생겨도 쉽게 미끄러져 유산된다. 삼초맥이 까칠까칠한 사람의 특징이다. 그래서 자궁을 덥히는 한약을 처방해준 것이다. 삼초맥을 보면 출산 후 젖의 분비, 부부관계 시에 즐거운지 안 즐거운지도 알 수 있다. 맥을 보고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도 알려주는데, 말해주면 환자는 놀라서 난리가 난다. 40년 동안 맥을 봐오면서 ‘이 사람이 왜 이런 말을 할까’ 관찰하면서 고민하다 보니까 깨달은 것이다.p. 113 한의학에서의 난임 치료부모들은 의대, 법대만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맥을 보면서 깨달은 건 사람은 타고난 것이 있다는 것이다. 공부가 잘 맞는 아이들은 맥에서 표시가 난다.“넌 뭘 좋아하니? 농구 좋아한다고? 그런데 농구선수를 하기에는 체격 조건이 안 맞아. 맥을 보니 허리가 너무 부실해서 힘들겠어.” 이렇게 말하면 엄마도 아이도 이해를 한다. 맥을 보면서 상담하면 부모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는 걸 느낀다. 엄마는 무조건 공부하라 그러는데 이곳 진료실에서는 “인생에서 공부가 최고는 아냐”라고 하니까 위안을 얻는 것이다. 아이들은 “제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어요”라고 하는데 엄마 아빠가 안 들어주는 상황이면, 아이를 잠시 내보내고 부모와 한참 이야기하기도 한다.p. 235 총명탕을 먹였는데 왜 성적이 안 오를까한 여성 환자의 맥진을 봤는데 심장 맥이 뚝 떨어져 있었다. “환자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네요. 누가 죽었습니까?” 물었다. 가슴이 뚝 떨어진 맥이 나타나는 경우는 시련을 겪은 것인데, 여성의 경우 가장 많은 임상 사례가 자식이 죽었거나 친정엄마가 돌아가셨거나 그런 일들이다. 자식의 죽음은 가슴에 못 박힌 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환자는 신기하다면서 몇 주 전에 50대 초반의 남동생이 자살한 현장을 보았다고 고백했다. 상상해보면 참 끔찍한 경험이다. 그런 일을 겪으면 이명이 간헐적으로 있던 사람도 급격히 나빠진다. 그 정도면 잠을 잘 수가 없을 것이다.p. 274 환자가 마음의 상처를 먼저 털어놓진 않는다우리 말에는 마음의 병이 장기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반영된 표현들이 많다. 맥진을 해보면 실제 임상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낙담(落膽)하면 실제로 담낭맥이 아래로 떨어진다. ‘간 떨어질 뻔했다’는 표현이 있는데, 크게 놀란 일이 있었을 때는 간장맥이 뚝 떨어져 있다. 낙담과 달리 ‘낙심(落心)하다’라는 말도 있는데, 이때는 심장맥에서 뚝 떨어져 있는 모양을 확인할 수 있다.인간은 뇌의 지배도 받지만 영의 지배를 받는다. 인간은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능력만 있는 것이 아니며, 감성의 동물이다. 맥에는 그 사람의 감정, 기능이 그대로 반사되어 나오기 때문에 건강한 상태에서 맥진을 하면 기질적인 것도 알 수 있다. 산만한 성격인지 예민한 성격인지 활발한지 조용한지, 맥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금방 포착할 수 있다. (중략) 그래서 나는 결혼 적령기의 자녀를 둔 한의사 후배들에게 사위나 며느리를 맞게 되면 꼭 맥진을 하라고 말하곤 한다. 나쁜 사람, 착한 사람, 독한 사람, 까칠한 사람 등 맥파를 보면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p. 205-206 마음속 깊은 상처는 맥에 나타난다그래서 화가 났을 때는 오히려 굶는 것이 더 좋다. 위장 경락이 심장으로 연결되기 때문인데, 위장병 걸린 사람에게 가장 많은 경우가 골치 아픈 것이다. “저놈 얼굴만 쳐다봐도 밥맛 떨어져”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고, 물만 먹어도 체한다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생각과 감정에서 오는 것으로, 위장은 감정의 지배를 가장 많이 받기 때문이다. (중략)한의사는 위장이 담고 있는 에너지, 감정, 흐르는 길을 설명해야 한다. 밥맛이 좋으려면 기분도 좋아야 한다. 신나면 밥맛이 꿀맛 같다. 감정이 불편하고 비장맥에 고뇌가 많고 심장맥에 번뇌가 있으면 “건들지 마. 아무 생각도 하기 싫고 그냥 누워 있을 거야” 하는 심정이 된다. 근심걱정이 머릿속에 들어가 있으면 밥 먹으라고 엄마가 깨워도 “나 안 먹어”라고 한다. 이건 비장의 문제로 비장과 위장은 표리 관계이며 위치상으로도 가까이 붙어 있다.p. 290 기분이 좋으면 위장도 즐겁다맥진을 경험한 환자들의 이야기“놀라서 혼비백산해서 위가 아픈 거네요”한의학은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한 인체 관찰이 뛰어나다. 갑작스러운 외부적 자극이 질병을 일으켜 약을 쓸 때도 원인이 물기냐, 냉기냐, 바람이냐 개인에 맞춰서 병인을 없애는 치료를 한다. 40대 초반의 여성이 배가 꼬이는 위경련으로 찾아와 맥진검사를 했다. “나이도 젊은데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왜 이렇게 기가 안정을 못 취하고 난리법석이냐”고 물었다. 비장맥, 대장맥, 위장맥, 삼초맥이 뜨거운 냄비 위에서 콩이 튀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사연을 들어보니 어제 친정엄마가 보이스피싱에 걸려 현금 5천만 원을 날릴 뻔했다고 한다.“할머니, 손은 왜 떠세요? 맥을 보니 파킨슨 아니에요”서양의학은 궤양, 혹, 암 등 조직상의 질병을 진단하고 고치는 데 뛰어나다. 반면 한의학은 오장육부 기능상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 “피곤해요” “어지러워요” “잠이 안 와요” “밥맛이 없어요” 등 흔히 병원에서 이상 없다고 말하는 대부분이 기능적 질환이다. 꼬리뼈에 금이 가서 정형외과에서 심을 박는 치료를 받은 후 통증 때문에 침을 맞으러 온 할머니가 있었다. 손을 떠는 것이 눈에 들어왔는데 책상을 짚어보라고 했더니 떨지 않았다. 병원에서 파킨슨 진단을 받았다는데, 맥을 보니 근심걱정은 보이지만 잡티가 없었다. “할머니, 파킨슨 아니에요.”“맥을 보니 울고 있네요. 얼마 떼이셨어요?”건강한 상태에서 맥진검사를 하면 기질적인 것도 보인다. 맥파를 보고 그 사람 성격까지 금방 포착할 수 있다. 마치 12개의 파이프를 통해 내부 감정의 주파수를 듣는 것과 같다. 나이, 성별 등을 확인하고 12장부의 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며 진료실에 이제 막 앉은 환자에게 물었다. “얼마 떼이셨어요?” 깜짝 놀라며 환자가 “7억이요. 전 재산이었어요”라며 울먹였다. 7억이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그 이상 떼인 사람도 많다며 50억 원을 떼인 사람 얘기를 들려주었다. 환자는 울음을 뚝 그치고 차분해졌다.“무릎이 왜 그렇게 부었어요?”맥진이 보여주는 12장부의 맥파 중 비장맥, 방광맥, 신장맥을 보면 경추, 요추, 무릎 등 척추 문제, 구조적 질환을 파악할 수 있다. 언젠가 환자의 맥을 보고 “무릎이 왜 그렇게 부었어요?”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며 ‘맥에 무릎이 어딨어요?’라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긴 바지를 입고 왔고 이제 막 앉아서 얼굴만 봤는데 그런 말을 하니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신장맥이 작고 본맥에 이어 꼬리를 달고 있는 가지맥을 보니 무릎 관절이 띵띵 부어서 온 사람이었다. 차 례 프롤로그 _ “자네 나무에서 떨어졌구만!” 1장 환경이 질병을 만든다“근무지가 바뀌니 맥이 바뀌었네요”|“앉아만 있어서인지 온몸이 물통이에요”|“먹는 즐거움과 위장장애를 바꾸셨네요”|먹으면 체했던 이유는 ‘속상해서’|“마음은 안정됐는데 육체가 괴롭네요”|우리 딸이 유난히 까칠했던 이유|위경련을 일으킨 보이스피싱 사건|한의학에서 난치병은 개념이 다르다|“알츠하이머 진단받았던 사람 맞나요?2장 오장육부의 기능을 한눈에 바라본다12장부의 관찰에는 순서가 있다|영육의 건강이 27맥에 담겨 있다|남자는 기장부, 여자는 혈장부 위주로|오장의 문제인가, 육부의 문제인가|만성적인가, 최근에 발병했는가|맥파에 나타나는 근골격계 질환들|기능적 관점에서 보면 난치병도 고친다3장 12장부는 관계성을 가진다상초와 하초는 밸런스를 이뤄야 한다|심장은 12장부의 사령탑이다|폐는 기를 관장하는 으뜸 기관이다|간은 몸을 방어하는 장군과 같다|비장맥에서 뇌의 활동을 본다|신장과 방광은 비뇨기와 척추를 본다|육부에 병이 있는데 원인은 오장에 있다?4장 마음이 다쳐서 몸이 아픈 사람들마음속 깊은 상처는 맥에 나타난다|퇴근하면 집에 가서 또 일해야 하는 워킹맘|아프진 않지만 심장이 추운 사람들|엄마 아빠가 행복하면 아이도 행복하다|엄마의 욕심과 아이의 희망이 충돌할 때|꽁한 남자, 여성스러운 남자|치료를 위해 일을 그만둘 수 있을까5장 12장부를 이해하면 양생법이 보인다무리하면 기력이 딸려 폐가 싫어한다|팔다리를 움직여야 비장이 건강하다|마음의 상처는 심장에 타격을 입힌다|화를 다스리지 못하면 간담이 상한다|낮밤의 구별이 있어야 신장이 편안하다|위와 장은 찬물에 괴로워한다|허리를 숙이고 걸으면 인생도 꺾인다지은이 소개 황재옥몸편안한의원 원장, 이내풍 대표 원장. 고등학생일 때 위장 천공을 진단받았던 경험을 계기로 한의학에 입문했다. 한의대생이었을 때, 맥진기를 발명한 백희수 선생님을 만나 맥진의 원리를 깨우쳤다. 백희수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기존의 맥진기를 디지털화한 심안맥진기를 개발해 40년 가까이 임상 데이터를 쌓았다. “요새 한의원에서 왜 진맥을 안 봐줘요?”라는 질문을 환자들에게 많이 받고 있는데, 손으로 짚어내는 맥은 한의사 개인의 숙련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의학의 과학화, 현대화는 인생의 숙제와도 같은 일이 되었다.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하면 감각의 힘이 현저하게 떨어지는데, 이 점은 의사든 한의사든 모두 해당하는 부분이다. 손으로 짚는 맥을 대신해, 맥진기를 통해 맥동과 맥파를 추출해내면 한의사와 환자가 함께 볼 수 있는 가시적인 데이터가 확보되기 때문에 진단과 치료는 훨씬 더 정확해진다. 아무리 훌륭한 치료법이 있어도 진단이 정확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법이다. 타고난 본인의 몸속 상황과 질병이 발생한 지금 이 순간의 몸속 상황을 정확히 모르면 한의학의 특성인 개인 맞춤 진료도 정확도가 떨어질 것이다. 맥진기는 12개의 청진기를 몸에 대고 전신을 스캔해서 볼 수 있는 도구인 셈이다. 환자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어도, 심지어 거짓말을 해도 맥동과 맥파를 살펴보면 진짜 몸속 상태를 알 수 있다. 특히 몸 상태뿐 아니라 마음 상태까지 볼 수 있는데, 마음을 읽는 데 워낙 탁월해서 어느 심리상담가는 맥진기 구매를 의뢰해왔을 정도다. 1987년에 맥진학회와 약침학회를 조직해 이후로는 후배 한의사들과 함께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현재 전국에서 3천 명 이상의 한의사들이 심안맥진기로 진단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이명한의학』(공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