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어바인 캠퍼스 의과대학 존 C. 롱허스트 교수는 지난 1~3일 부산에서 개최된 국제 침술-경락학술대회 `SAMS 2010` 참가자들의 이목이 가장 집중된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AMS Awards `여행자상` 수상, 첫 세션의 좌장, 전기침과 경락에 대한 기조연설과 논문발표 등 다양한 활동으로 대회 분위기를 이끌었다.
대회 둘째날인 2일은 그야말로 롱허스트 교수의 날이었다. 그는 이날 `혈압에 미치는 전기침 작용에 대한 신경전달물질계`란 제목의 기조연설과 AMS Awards의 여행자상에 선정된 논문 ‘경락의 정의 : 현대기초의 이해’를 발표했다. 그의 발표가 특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그의 `진지함`과 ‘깐깐함’ 때문이다. 과학자로서 완벽한 논리로 무장한 그의 연구방식과 발표장에서의 당당한 태도 등은 많은 학자들이 그의 연구 내용에 신뢰를 갖게 했다. 왓처데일리가 내년부터 이름을 바꿔 개최하는 isams의 2011년 대회장이기도 한 롱허스트 교수를 만났다.
- 전통의학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계기는.
심장전문의이지만 10년 넘게 한의학을 연구해 왔다. 침 시술은 직접 하지 않고 동료들이 하고 있다. 1992년 중국 정부 요청으로 중국의 여러 대학에 강의를 하러 가게 되었다. 그때 중국 전통의학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1994년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하기 위해 중국에 다시 왔을 때, 2년전 나에게 침술에 대해 알려주었던 리 펑 박사가 연구를 함께 해줄 것을 요청했다. 처음엔 거절했다. 침술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서양 학자들이 침술이 임상적으로 유용하다고 믿지 않는 것처럼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서양에서도 인정받은 자신의 우수한 논문을 보여주었고, 침술이 심장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후 침술에 ‘실용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후에 롱허스트와 리 펑 두 교수는 함께 연구를 하게 되었고, 그 논문은 심혈관 질환 관련 유명 저널인 ‘순환(Circulation)’에 실렸다.)
- 혈압과 전기침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는데, 어떤 내용인가.
침술은 혈압을 정상화해 신체의 항상성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통의학에 알려져 있다. 침은 정상혈압에서는 별로 효과가 없다. 이번 연구는 침(전기침)이 신경을 자극하면, 자극이 뇌로 보내져 뇌의 여러 부위에서 분비되는 서로 다른 신경전달물질들이 높은 혈압을 정상으로 되돌린다는 내용이다. 우리의 뇌에는 `흥분성` 전달물질 시스템과 `억제성` 전달물질 시스템이 있는데, 침술이 이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단지 침술이 작용한다는 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히 심혈관계에 어떤 작용을 미치는지를 연구한 것이다.
- 경락을 현대적으로 정의한 논평발표도 관심을 끌었는데.
나는 고대의 이론을 현대 과학에 기초해 번역하는데 주력한다. `고대이론=현대과학`은 아니다. 경락, 기 등 전통의학의 주요 원리는 현대 과학으로는 인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런 작업을 하는 이유는 서양 과학계에 `침술에 진실이 있다`고 설득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경락을 정의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실패해 왔다.
경혈을 자극하면 실질적으로 그 아래에 있는 신경경로가 자극된다. 나는 `경락=로드맵`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침으로 어떤 부위를 자극해야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경락은 수 천년전부터 있어 왔던 개념이고, 그 때는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연구는 ‘경락을 볼 수 있다’, ‘이미지화한다’, ‘피부의 저항을 측정한다’ 등의 내용들이다. 이런 연구들은 그렇게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경락이 신경의 어떤 부위를 자극해야 가장 효과적인지를 알려주는 로드맵이라고 여기고 이에 대해 발표했다.
- 앞으로의 연구 계획은.
오늘 발표한, `높은 혈압을 내려 정상으로 돌리는 침술`에 대한 내용과 달리, `낮은 혈압을 증가시켜 정상으로 돌리는 침술`에 대한 논문을 내년 쯤 발표할 예정이다. 우리는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을 관찰하기 위한 매우 근본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 동물 모델에서 혈압을 정상으로 돌리는 침술 연구를 진행했으며, 관점을 바꿔 부교감신경의 작용도 연구했다. 이미 연구는 마친 상태다. 또한 `경락=로드맵`이라는 연구를 발전시켜 나갈 생각이다. 같은 경락의 다른 경혈점들을 자극해서 각 부위가 같은 효과를 내는지, 다른 효과를 내는지를 연구할 것이다.
또한 비침습적(인체에 해를 줄이고 효과가 좋은)인 침 개발도 연구할 계획이다. 인체 표면에 붙이면서 접촉 부위를 줄일 것이다. 이 연구는 군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침은 군인들이 전장에서 다치거나 동료의 죽음을 봤을 경우에 스트레스와 고통을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군은 생각하고 있다. 침습적인 바늘은 위험할 수 있으므로 부착형 바늘을 부착하려고 한다. 군대는 이 침을 원격 제어해 전장의 정보 수집과 통제에 사용하는 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나의 관심사는 다르다. 나는 환자들이 침술을 행할 수 있는 장소에서 벗어나더라도 스스로 치료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isams 2011 대회장을 맡았는데, 그 배경은.
나의 다양한 일 중 하나는 수잔 새뮤얼리 통합의학센터(Susan Samueli Center for Integrative Medicine)의 교수이다. 서양의학 뿐만 아니라 침술, 동종요법, 허브의학, 마사지, 태극권, 명상 등을 가르치고 연구조사와 클리닉 운영도 한다. 새뮤얼리 센터는 현재까지 3번의 국제 과학 심포지엄을 개최했고, 2011년에 isams까지 하면 4번째가 된다.
작년 SAMS 대회에 왔을 때 대한약침학회(KPI) 강대인 회장에게 학술대회의 해외 개최에 관심이 있는지 의향을 묻고, 파트너십을 제안해 결정된 내용이다. 대회에 미국 과학자위원회(National Committee of Scientists)가 참가할 것이다. NCS는 미국에서 최고의 과학자들의 모임이다. 초점은 심혈관, 침술, 허브, 통증 연구 등이다. 세계에서 20~30명의 저명인사들이 초청돼, 강연할 것이다. 최고의 `현대 과학자`들이 어떻게 침술이나 허브 연구를 시도하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이는 KPI와 isams의 평판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세계적으로 저명한 과학자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게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50년 정도 침술을 연구한 학자들을 불러 연구 경험에 대한 강연을 하게 하고 싶다. 그 외 정부 관계자나 법쪽에 관련된 사람들도 초청하려 한다.
결국 목적은 2가지이다. 첫 번째는, 대체의학, 전통의학, 심혈관계에 대한 세계적인 학술대회를 열고 싶다. 두 번째는, isams와 KPI를 돕기 위해서다. KPI는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침술에 대해 교육하기 위해 매우 노력하고 있다고 느낀다. 나와 관련 있는 세계적인 석학들을 초청한다면 약침학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미국에서 한의학의 미래는 밝은가.
예스 라는 대답을 기대하고 있겠지만, 확실하지 않다.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한의학이 누구에게, 어떻게, 왜 효과가 있는지 등에 대한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젊은 세대들을 교육하는 일이다. 나이든 학자들은 예전의 나와 같이 동양의학을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점차 동양의학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고 있다. 나는 의사들을 상대로 침술, 마사지, 허브 등에 대해 강연하고 있는데, 후에 그들이 감사의 인사를 전할 때, 그렇게 느낀다. 하지만, 과정 중에 있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