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증이 많다는 것은 축복이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기에, 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세상의 수많은 일들. 하지만, 남들이 간과하는 것을 포착해 자기것으로 만들게 되면,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세계로 이끌기도 한다.   동서신의학병원 한방음악치료센터 이승현 교수(47)의 `인생 전환`도 “이상하다”란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오페라 가수를 꿈꿔왔던 성악도에서 중풍환자와 북, 장구, 피아노를 치는 한방음악치료 전문 한의학 박사로 변신했다.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인생”이다.   오는 26일 이화여대 음대에서 열리는 제4회 오행음악 연주회에서 해설을 맡아 준비에 바쁜 이 교수를 만나, 남다른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 대학 때 성악을 전공했었다. 지금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내 인생계획에서 한의학은 없었다. 원래는 멋진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었다. 이화여대 성악과에 들어간 후 성악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독일 유학을 갈 생각이었다. 독일문화원(괴테 인스티투트)을 1~2학년 동안 꾸준히 다녔다.   하지만, 목이 안 좋아 서울대병원에 찾아 갔는데, 성대결절이란 `잔인한` 진단 결과를 받았다. 대학 3학년 때 일이다. 의사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좌절했다. 그래서 많이 방황을 하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매일 매일 고민했었다.   - 성대결절 진단 이후 바로 한의학에 관심을 가진 것인가.   아니다. 고심 끝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아이들에게 가르치자’는 결단을 내렸다. 그래서 이대를 졸업한 후 경희대 교육대학원 음악교육학과에 입학했다. 그때 석사논문을 쓰게 됐는데, 독일 가곡인 리트(Lied)와 국악을 비교하는 내용이었다.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페라도 좋아했지만, 평소에 국악도 아주 좋아했기 때문이다.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국악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던 중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국악의 오음(五音)에 대한 설명이 한의학 책에 있었던 것이다. ‘황제내경’이란 책이었다. 하지만,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라고 쓰여 있지 않고, ‘각치궁상우’라고 표기돼 있었기 때문에 잘못된 책이구나 싶었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페이지를 복사해 놓고 도서관에 돌려준 뒤 까맣게 잊고 있었다.   - 한의학과의 인연이 맺어진 셈인데, 당시에는 지나쳤다. 그럼 본격적으로 한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언제인가.   한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음악 강사로 활동하던 때이다. 숙대에 음악치료대학원이 생기면서 한국음악학회에서 세미나를 열었는데, 발표된 논문 중 하나가 ‘음악치료’에 관한 내용이었다. 발표를 들으면서 내가 지금껏 해온 음악이 치료에 쓰인다는 것에 감탄했다. 하지만, 발표를 들을수록 의문이 들었다.   자폐아나 발달장애아에게 음악치료를 시키는데 정신과적 부분에서 어떤 음악을 들려주는 것일까 궁금했다. 자폐아들은 성향이 각기 다르다. 수학적 개념이 뛰어난 아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이, 말이 너무 많은 아이, 만들기에 전념하는 아이 등 말이다. `그렇다면, 치료 시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달리 분류한 음악으로 치료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발표자에게 물어보자, “분류기준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상했다.   다시 “그럼 어떤 음악을 들려주느냐?”고 물어봤다. “좋은 음악”이라며 아이들한테는 즉흥연주를 시키는데 무조건 자폐아가 하고 싶은 대로 피아노를 치게 한다고 말했다. 주먹을 쥐고 피아노 건반을 무작정 두드리는 것도 치료고, 건반에 손을 대지 않던 아이가 건반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치료효과가 있다고 본다는 것이었다.     발표자의 대답은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서 있는데, 1990년에 논문을 쓸 때 본 ‘오음’에 관한 생각이 났다. ‘한의학에도 음악치료란 것이 있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몇 달 후에 복사한 자료를 가지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경희대 한의대 박찬국 교수님께 찾아갔다. 박 교수님은 대한한의학원전학회에 계셨다.   박 교수님은 “한의학에도 음이 신체의 각 장부(臟腑)에 속해있다고 본다”며, 자신도 예과 2학년 때 ‘황제내경’을 들고 서울음대 국악교수를 찾아간 적이 있는데, 국악교수는 우리 음대로 연주하면 그 뿐이지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대답했다고 하셨다. 교수님은 다시 국립국악원을 찾아가 같은 질문을 했지만, 궁금증을 해결할 수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그러면 어떻게 학생들에게 가르치세요?”라고 내가 물었다. 지금은 글자의 뜻대로만 학생들에게만 가르친다고 대답하셨다. 예를 들어 ‘각(角)은 성(聲)이 직(直)이요’ 라고 하면, ‘각음은 곧은 소리이다’라고 해석만 하고, 음악에 대한 수업은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얼른 “그럼 교수님은 저에게 한의학을 가르쳐주세요. 저는 교수님께 음악을 가르쳐드릴게요”라고 말했다. 그게 나의 한의학 공부의 시작이자, ‘한방음악치료’가 탄생한 시점인 것이다. 그렇게 교수님과 나, 그리고 일부 조교와 학생들이 함께 스터디를 했다. 1년이 넘어 가니 교수님이 내게 정식으로 한의학을 공부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가 1999년이었다. 그래서 경희대 한의대 연구 조교부터 다시 시작했다. 2003년 2월에 결국 한의학 박사학위를 따게 됐다.   - 최초로 한방음악치료학을 정립했는데, 구체적으로 한방음악치료란 무엇이며, 서양음악치료와 무엇이 다른가.   한방에도 오장육부에 속한 ‘오음’이 존재했지만, 이를 ‘치료’에 접목한 사람은 없었다. 한방음악치료는 한의학의 이론과 치료방법을 바탕으로 연구된 새로운 음악치료법이다. 편향된 기를 조절한다. 오음과 오행, 12율려와 12경락을 활용하여, 한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것과 같이 음악을 통해 기가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기가 넘치는 부분을 줄여준다. 상담을 통해 환자별 증세를 진단한 후, 그에 맞는 한방음악치료를 한다.   194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서양의 음악치료는 이론적 기반을 심리학에서 가져온 것이다. 대상자가 자폐아, 발달장애아와 같은 정신과 질환자이다. 즉 육체적 질병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양음악치료의 목표는 심리적인 안정에 있다. 하지만, 한방음악치료는 전혀 다르다. 한의학에서는 심신일여(心身一如), 몸과 마음을 하나로 본다. 몸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정신적인 측면이 작용한 것이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 어떤 병을 치료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서양의 ‘음악치료’와 마찬가지로, 한방음악치료도 정신치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육체적인 질병치료를 한다. 오행은 오장육부와, 12율려는 12경락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뇌졸중, 뇌경색, 암, 부인과 질환, 만성피로증후군, 소화기 장애, 당뇨환자의 치료에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나는 이러한 한방음악치료에 관한 논문들을 한방음악학회, 소아과학과, 부인과학회, 사상체질학회, 원전학회 등에 게재하고 있다. 중풍환자가 한방음악치료를 받기 전과 후의 fMRI 촬영, 뇌 단층촬영, 혈액암환자의 면역수치 변화를 다룬 논문을 발표한 적도 있다. 모두 한방음악치료 후 상태가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30대 뇌경색 환자였다. 치료센터를 처음 찾아 왔을 때, 그는 걷지 못했다. 양방치료에서 할 것은 다 해봤고, 더 이상 방법이 없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당시 그 환자는 아스피린 30mg만을 복용하고 있었다. 한방음악치료를 45분씩 10회 받고 난 뒤에 저벅 저벅 걸었다. 나는 그가 100m를 몇 초에 걷는지도 경과를 살펴 논문으로 발표했다. 환자는 너무나 놀라워했다. 자신은 오행에 맞춘 음악에 따라 북치고 장구친 것 밖에 없는데 걸을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뇌출혈, 뇌경색 환자들 가운데 “내가 우리병동에서 가장 빨리 나았어요. 손 올라가는 것 좀 보세요”라며 입소문을 내는 경우가 많다. 아직 센터는 직접 환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양-한의사들이 진료를 의뢰한 환자만 치료할 수 있다. 치료를 원하는 모든 환자들을 받고 싶지만, 아직 사정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침, 약과 병행해서 한방음악치료를 한 환자들이 만족도도 더 높고, 치료효과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 한방음악치료는 국악만 사용하는가.   아니다. 음악은 표현수단에 따라 발하는 기운이 달라진다. 서양음악의 경우에는 선율, 리듬, 화성에 따라서 발하는 기운이 전혀 달라진다. 똑같은 모차르트 곡이라 하더라도 따뜻하고 상승하는 듯한 화기(火氣)를 낼 수도 있고, 위로 성장하고 밖으로 펼치는 듯한 목기(木氣를) 발하기도 하며, 몸의 기운을 아래로 가라앉히는 수기(水氣)를 발할 때도 있다.   국악의 경우에는 사용하는 악기의 음색과 자진모리나 휘모리 등의 장단, 선율에 따라 발하는 기운이 달라진다. 사람에 따라 국악을 통해 기를 더 잘 받아들일 수도 있고, 서양음악을 통해 더 잘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에 국악만 사용하지는 않는다. 외국인도 국악을 사용해서 치료하는 경우가 있다.   오행(목화토금수)의 기운을 발하는 음악들을 치료수단(서양음악: 선율, 리듬, 화성. 국악: 악기음색, 장단, 선율)으로 사용했을 때 환자가 더 잘 받아들이는 음악으로 골라서 치료한다고 볼 수 있다. 한의사들이 진료 후 처방을 할 때, 어떤 것을 우선순위에 두느냐와 마찬가지로 기의 순환을 먼저 할 것인지, 열을 먼저 내릴 것인지 등을 결정한다. 보사법(補瀉法)이다. 악기도 마라카스, 피아노, 장구, 소고 등을 환자에 따라 달리 주게 된다.   - 한방음악치료는 한의학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옛날에는 지금과 같은 스트레스 질환이 덜했다.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면서 생겨난 뇌경색, 뇌졸중 등 뇌신경적인 질환도  적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생기는 역류성 식도염도 마찬가지다. 질병은 시대의 거울이다. 음악도 시대와 사물이 만들어낸 유물 중의 하나다. 시대가 바뀌면 질병도 바뀌듯이 한의학과 치료도 거기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 한의학의 기본틀과 기본 치료정신에 입각해서 또 다른 치료수단의 개발은 반드시 필요하다.   - ‘오행음악 연주회’를 여는 이유는.   이번 ‘오행음악 연주회’는 일반인들에게 한방음악치료를 소개하기 위해서 만든 자리다. 요즘 한의학은 ‘비과학적이다’, ‘객관적이지 않다’, ‘약재에서 중금속이 나왔다’며 폄하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 있다. 나는 한방으로 병이 나았다는 것 그 자체가 `과학적인` 증거라고 생각한다. 과학화하고 객관화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일반인들한테 한의학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더 늘려야 이런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일반인들이 한의학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고, 음악 안에도 한의학의 음양오행사상이 있고, 질병의 치료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이번 오행음악 연주회는 4번째다. 2004년에는 국악으로만, 2006년에는 서양음악으로 연주회를 열었다. 2008년에는 국립국악원에서 했다. 2006년 서양음악을 처음으로 오행으로 소개했던 공연과, 2008년 신명 나고 슬퍼지고 했던 감정이 음악으로 오행의 기를 느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국악인들이 알았던 국립국악원 공연은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연주회는 대부분 서양음악을 통해 오행음악을 접하게 된다. 한 스테이지에서만 해금과 바이올린의 비교를 한다.  (한방음악치료학회는 제4회 오행음악 연주회를 26일 오후 7시 30분부터 이화여대 음대 김영의 홀에서 연다.)     -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 냈다. 진취적인 사람으로 느껴진다.   내가 호기심이 있고 진취적이어서 이런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닌 것 같다. 음대 3학년 때 성대결절이 오지 않았고, 그로 인해 이론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지 않았더라면, 또 석사 논문으로 국악과 독일음악을 비교하지 않았더라면 한의학과의 인연은 없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 같다.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예정하셨고, 이 길을 걸어가게 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한방음악치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인데 바르게 하고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하고 내가 이룬 것은 아니다.   - 앞으로 꿈이 있다면.   한방음악치료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전공학과가 생기는 것이 나의 꿈이다. 한방음악치료는 한의사와 한의대학생들이 꽃 피워야 하고 연구해야 한다. 한의학이 꼭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다. 치료 수단으로서 말이다.   한의학 안에서 포용하면 외연이 넓어지면서 일반인들에게도 아주 좋은 치료분야로서 서양의학에서 하지 못한 부분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해외에서 한의학보다 중의학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우리 한의학에는 세계 중심으로서의 한의학으로 발전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이 잠재돼 있다. 단지 현재 키워내지 못하고 있는 것 뿐이다. 한의학이 세계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그 한 축을 세우고 싶다.   <이승현 교수의 약력> 이화여대 음악대학 성악과 졸업(1988.3) 경희대 교육대학원 음악교육학 석사(1991.2) (학위논문: 독일 Lied와 한국 傳統歌曲의 음악적 표현방법에 대한 비교연구) 경희대 대학원 한의학 박사(2003.2) (학위논문: 五行으로 분류한 음악이 누에의 形質변화에 미치는 영향 -한방음악치료를 중심으로)   삼육의명대학 음악과 강사(1992) Austria Salzburg Mozarteum Internationalen Akademie Diplom(1996) 삼육대학교 음악교육과 강사(1999)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연구조교(1999) 삼육의명대학 음악과 겸임교수(2000) 동덕여대 대학원 음악학과 강사(2002) 경희대 한의과대학 강사(2004) 이화여대 음악연구소 음악전문과정 강사(2004~) 경희대 교육대학원 한방음악치료 전문교육자과정 주임교수(2003.9~)  
최종편집: 2025-05-01 22:17:53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제호 : 왓처데일리본사 : 서울특별시 강서구 화곡로 68길 82 강서IT밸리 704호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1267 등록(발행)일자 : 2010년 06월 16일
발행인 : 전태강 편집인 : 김태수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현구 청탁방지담당관 : 김태수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태수 Tel : 02-2643-428e-mail : watcher@watcherdaily.com
Copyright 왓처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