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과 관련한 언론보도 및 서적에서 한의학을 응원하거나 질타하는 글들을 보게 됩니다. 이같은 글들에 대한 논평을 바탕으로 한의(학)계가 반성해야 할 점을 지적하는 신미숙 교수의 칼럼을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당부드립니다.<편집자>
신미숙(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부교수, 한방재활의학 전공)
2010년 9월 11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독초(毒草)를 찾아서 주말마다 전국 떠도는 의사선생님> 란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서울아산병원 임경수 교수님이, 야생식물을 따서 나물로 해먹다가 독초(毒草·독성이 있는 식물)를 잘못 골라 식중독에 걸려 오는 환자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느끼고 누군가 정리해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깨닫고 직접 지난 2년여 동안 전국의 산과 들을 누벼서 야생 독성 식물 380여종을 찾아내 카메라에 담고 특성과 해독 방법을 모아 <식물 독성학> 도감(圖鑑)을 펴낸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2008년 응급의학과 과장직을 놓은 임 교수님은 업무 부담이 줄어든 참에 독성 식물 자료집을 만들고자 마음먹고 이후 매주 주말 1박2일 일정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야생 독성 식물을 카메라에 담았고 그 과정에서 뱀에 물리고, 멧돼지를 잡으려 깔아놓은 덫에 걸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 기사에서 김철중 의학전문기자는 이러한 임 교수님의 노력을 <응급실 의사의 독초 찾아 삼만리>로 표현하였다.
책에는 곰취(식용)와 동의나물(독초)의 구별, 미치광이풀(독초)과 천궁잎(식용)의 구별, 박새와 여초(독초)를 산마늘(식용)로 잘못 알고 먹을 수도 있다는 경고, 식용 식물 사이에 독초가 섞여 있는 것을 모르고 한꺼번에 뜯어 나물로 먹다가 식중독에 걸린 경우 등에 대한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임 교수님은 전국 응급실 의료진이 독성 식물 사진 자료와 처치법을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도록 하였으며 스마트폰으로도 독성 식물 자료를 받아볼 수 있도록 작업 중이라고 한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독초에 관련된 도감을 펴냈다는 기사를 읽으며 나는 또 한 번,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즘은 의료 분야에서도 공공연히 공공의료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고 사회봉사, 사회기여, 공익추구 등이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고 있다. 한의계에서 공익을 위해 가장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일까?
한약의 안전성을 핏대높여 주장하고 준비하는 것과 아울러 일반인들이 자주 접하는 야생식물 섭취로 인한 식중독 문제. 이러한 야생 약초에 대한 시시비비를 미리 일러주는 역할이 한의계의 공익을 위한 분야는 아니었을까? 전국의 본초, 방제학 교실의 교수님들이 이미 시도하신 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결과물이 도출되어 언론에 보도된 것은 임경수 교수님의 케이스가 처음이라고 하니 대중들에게 이렇다 할 핑곗거리가 없는 것이 안타깝고 부끄럽다.
한의학을 공부했던 학부 7년(92~96학번들은 한의대를 7년 다녔다) 과정에서 위험성, 부적응증, 부작용을 공부했던 경험이 거의 없다. 그저 `효과좋다`, `안전하다`, `탁월하다`, `전망좋다`는 장밋빛 용어들에 젖어 근거없는 자신감만 팽배해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이런 안일함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이 순간, 제2, 제3의 임경수 교수님은 또 어디선가 <침치료 부작용에 대한 보고서>, <뜸치료 부적응증>, <부항치료의 허와 실> 등에 관련된 리포트를 준비하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임 교수님 책 덕분에 한약은 또 하나의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그 책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한약은 자연입니다”라고 했던 우리의 표어 대신 “한약은 독초입니다”를 가슴 깊이 새기게 될테니까.
*필자 소개: 한방재활의학과학회 정회원, 한방비만학회 학술이사, 한의안면성형학회 홍보이사, 대한여한의사회 편집이사. 저서 `한방재활의학`(2005), 역서 `미용적 문제를 해결하는 침구치료`(2008), `요추와 골반의 도수치료`(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