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숙(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부교수, 한방재활의학 전공)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내게 늘 멘토 역할을 해 주시는 띠동갑 의사 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한 번 보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2주 전쯤 서울에서 선생님을 오랜만에 뵈었다. 선생님 진료실 이야기, 또 경남 양산으로 이사해서 적응해가고 있는 내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선생님께서 툭 하니 던지시는 한 마디 말씀.   "신선생, 요즘 의사들끼리 하는 조크를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듣게나... 한의사가 `한 많은 의사`, `한심한 의사`의 줄임말이라고 하더라. 요즘 무너지고 있는 한의계의 위상을 놀리는 말 같은데... 왜 한의사가 이렇게 끝도 없이 추락하는 것 같아? "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신선생 생각하니까 마음이 많이 아프기도 하고 암튼 내 맘이 좀 그렇더라. 나는 한의사들을 날게 만든 것도 한의사들을 죽이는 것도 솔직히 한약이라고 생각해. 한약이라는 이미지의 성쇠에 따라 한의사들도 같이 움직였던 것 같거든."   "한의사로서 진료하는 것에 있어서 한약의 포션이 어느 정도일 것 같아? 이 두 가지는 절대로 떼어질 수 없는 건가? 어느 단어가 주는 어감이나 이미지를 바꾼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 한약 하면 떠오르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한의사에게 그대로 100%, 200% 이입되는 것 같아. 늘 사람들은 부정적인 것만 기억하니까, 이 연결고리를 끊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선생님의 말씀들 듣고 보니 그간 한약만큼이나 동네북 취급 받은 것도 없었겠다 싶은 생각이 문득 든다. 급성 간염이든 원인 불명의 독성 간염이든 혹은 약인성 간염이든, 간(肝)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거의 모든 병명에 대해서 의사라면 누구라도 0순위로 “한약”을 의심한다고 한다. 그래서 환자나 보호자에게 묻는다.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한약 먹었죠?”라고.   이제 이런 시나리오는 넌덜머리가 난다. 최근 부산대 한의전의 한 여학생이 게보린을 먹고 알러지 쇼크를 일으킨 일이 있었는데, 게보린 한 알에 온 몸에 두드러기가 일어나고 입술이 붓고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반혼수 상태에 빠지는 데 수초가 걸리지 않았다. 다행히 응급실로 옮기는 과정에서 증상이 호전되어 다른 치료를 받을 필요는 없게 되었지만 그 짧은 시간, 합성약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랄까, 양약의 불안전함, 양약의 독성이 생각보다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약의 약독은 지금도 수많은 환자들의 몸 속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을 것이다.     한약은 영원한 언더스터디(understudy), 주연배우가 사고가 나서 무대에 설 수 없을 때라야만 비로소 무대에 오를 수 있는,만약을 대비한 대역배우와 같다. 양약으로는, 기존의 현대의학으로는 답이 없다는 최종의 백기 선언이 내려져야만, 환자들은 한약을 찾고 한의사의 말을 들으니, 이러한 언더스터디의 무대밟기의 기회가 그리 흔할 리도 없고, 기회는 어쩌면 아니, 줄어들 게 뻔하니 한약의 진정한 치료효과는 대중들에게 발휘조차 못해보고 사그라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나만의 노파심은 아닐 것이다.   그 존재 자체가 이리도 불안한데 최근에 읽은 <마케팅성공사례 상식사전> 이라는 책에서는 풀무원의 성공사례를 높이 평가하면서 소비자들에게 가장 불친절한 상품으로 한약과 변호사 수임료를 예로 들고 있었다. 소비자단체를 포함한 일반인들이 한의사들에게 요구하는 것들 중 하나가 한약의 처방공개이다. 양약은 모두 그 처방내용을 공개하는데, 왜 한약은 그렇지 않냐는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친절하고 안전한 그러면서도 효과적인 한약으로 완벽한 이미지 변신을 하는 것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그런 날이 오면 한의사도 다시 한 번 날개짓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최근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발표한 대한민국을 먹여살릴 5가지 성장동력 중 하나로 거론된 <천연물 신약>. 이 주제의 제목을 접한 순간, 대한민국의 미래는 한약이라는 단어 자체를 이미 버렸음을, 천연물이라는 새롭고 멋진 단어로 이미 갈아탔음을 눈치챌 수 있었고 “한약이라는 단어가 서서히 사라지는 이 변화무쌍한 시대에 한의사들이 과연 서바이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이 글을 쓰는 지금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필자 소개: 한방재활의학과학회 정회원, 한방비만학회 학술이사, 한의안면성형학회 홍보이사, 대한여한의사회 편집이사. 저서 `한방재활의학`(2005), 역서 `미용적 문제를 해결하는 침구치료`(2008), `요추와 골반의 도수치료`(2008)
최종편집: 2025-05-02 01: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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