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보약’이라고 한다. 며칠 굶어도 살 수 있지만, 잠을 못자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 고문 가운데 잠 안재우기가 있는 이유다. 그런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고생하는 한국인은 해마다 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수면장애 중 하나인 불면증으로 건강보험 급여를 받은 환자수는 2005년 21만 7천957명에서 2006년 26만3천924명, 2007년 32만8천825명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수면 장애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체적으로 잠이 부족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8개 회원국 국민들의 생활실태를 조사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469분(7시간 49분)으로 가장 짧다. 영국인(503분), 호주인(512분), 미국인(518분), 프랑스인(530분)보다 훨씬 적다. 보약 같은 잠을 마다한 한국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충분한 수면에 대해 서울수면센타 한진규 원장에게 들어본다.
- 수면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수면장애 유병률이 늘어나면서 잠에 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면장애는 우리나라 인구의 약 20% 이상이 경험한 적이 있거나 앓고 있는 매우 흔한 질환입니다. 또한 국민의 17%정도는 일주일에 세번 이상 반복되는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전기가 없던 시절, 밤은 단지 잠을 청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밤중이나 새벽에도 인터넷, 공부, 독서, 사무 등 일상생활을 충분히 할 수 있게 되면서, 과잉된 불빛이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로 지적받고 있습니다.
잠을 잘 때는 캄캄한 상태가 가장 좋습니다. 굳이 조명을 켜고 자야 한다면, 햇빛과 가장 유사한 색인 노란색과 오렌지색 계열의 간접조명 하나 정도가 적당합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가정에서 형광등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형광등은 공장에서 사고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제작된, 신경을 예민하게 하는 흰색과 푸른 계열의 빛을 발하기 때문에,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끄고 자야 합니다.
- 밤늦게 자면 신체에 무슨 영향을 주게 됩니까.
최근,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지 않고 활동하는 일명 ‘올빼미족’이 늘고 있는 현상은 특히 우려됩니다. 한국인 10명 중 7명이 밤 12시 이후에나 잠을 자고 있습니다. 무척 심각한 상황입니다. 아침 일찍 깰 필요가 없다면 부족한 잠을 더 자서 보충하면 그만이지만, 학생, 직장인 등 등교와 출근시간이 일정한 사람들은 늦게 자도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항상 잠이 모자랄 수 밖에 없습니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상이 반복되어 적정 수면시간을 채우지 못하게 되면, 신체는 이상을 일으킵니다.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새롭고 복잡한 문제나 창의력, 재치, 순발력 등을 요하는 일들을 잘 수행할 수 없게 됩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평소보다 수면시간을 4시간 정도 줄이면 신체 반응 속도가 45% 감소하고, 하룻밤을 꼬박 세우게 되면 평소보다 두 배 가량 느려졌습니다. 결국, 충분한 잠을 자지 못하면,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늦게 자고 덜 자는 습관은 빨리 수면훈련을 해서 고쳐야 합니다.
- 수면 훈련,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햇빛`을 이용해 수면 훈련을 하는 것이 가장 유익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나가 햇빛을 몸에 충분히 쪼입니다. 생체시계는 아침에 처음 햇빛을 감지하면 자연스레 그 시각을 기상시간으로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자명종 소리로 잠을 깨우는 것은 신경질적으로 잠을 깨우는 좋지 않은 방법입니다.
잠이 잘 오지 않는 사람들은 오전에 30분~1시간 정도 먼저 일어나 온몸에 햇빛을 충분히 쪼여줍니다. 그러면, 15시간 후부터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수면 호르몬(멜라토닌)이 분비되기 시작하므로, 좀 더 일찍 잠을 잘 수 있습니다.
햇빛을 직접 바라볼 필요는 없지만, 선글라스나 챙이 있는 모자를 쓰는 것은 피합니다. 또한 점심시간에도 30분 정도 햇빛을 충분히 쬡니다. 낮에 필요 이상으로 누워있거나, 주변 환경을 어둡게 하고 자려고 노력해선 안됩니다. 멜라토닌이 낮에 분비돼 정작 자야할 저녁 시간에 잠이 안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가장 적절한 수면 시간은 어느 정도 인가요.
사람마다 적절한 수면시간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대표적인 쇼트 슬리퍼(short sleeper)로 3시간만 자도 거뜬히 전구를 발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다릅니다. 대표적인 롱 슬리퍼(long sleeper)인 그는 10시간 이상을 자야 상대성이론을 생각해낼 수 있었습니다. 4시간 이하를 자도 그 다음날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는 사람을 쇼트 슬리퍼, 10시간 정도 자야 피로가 풀리는 사람은 롱 슬리퍼라 부릅니다. 하지만, 이들은 전체 인구의 약 5%에 해당하는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성인들의 95% 정도는 약 7~9시간 정도 잠을 자야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발표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하루 3시간 이하, 10시간 이상 잠을 자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는 사람들보다 사망률이 높게 나타나기도 해, 지나치게 적거나 많은 수면 시간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아는 18시간, 초등학생은 11시간, 중고등학생은 9시간 30분을 평균적으로 자야 합니다.
자신의 적정 수면시간을 알기 위해서는 6시간, 7시간, 8시간, 9시간 등으로 나누어 최소한 3~5일정도 수면 체크를 합니다. 취침시간과 기상시간을 기록하면서 하루동안 얼마나 졸았는지, 컨디션은 괜찮았는지, 집중력은 좋았는지 등을 검토해 최상의 수면 시간을 찾습니다.
단, 저녁 12시부터 5시까지는 여러 단계의 잠을 모두 잘 수 있게 뇌에서 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되므로, 이 시간을 꼭 포함해서 자도록 합니다.
- 잠을 충분히 자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잠은 신체와 정신건강의 바로미터입니다. 잠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눠지는데, 각 단계별로 하는 역할이 다릅니다. 1~2단계는 얕은잠으로, 잠을 자고 있는지 아닌지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이때에는 주변 소리가 들릴 정도로 의식이 살아 있어, 잠이 들더라도 금방 깰 수 있습니다. 얕은잠에서 깨어야 상쾌한 기분이 듭니다.
3~4단계는 깊은잠입니다. 전체 수면의 15%를 차지하는 이 단계에서는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뇌에서는 서파(느린 뇌파)가 나옵니다. 전체 성장호르몬의 80%가 분비되기 때문에, 깊은잠은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합니다. 또한 면역호르몬이 분비되어 면역력을 높이기도 합니다.
꿈수면 단계는 감정조절, 장기기억, 성기능, 얼굴형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꿈을 꾸지 않는 사람들은 ‘얕은잠’이나 ‘깊은잠’ 단계에 머물러 있어 앞서 말한 내용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꿈을 꾸는 것이 건강에 유익하다는 뜻인가요.
꿈수면이 충분한 사람은 우울증이 적습니다. 꿈에서는 평생 적으로 여기던 사람과도 친구가 되고, 화해를 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안 좋은 감정들을 꿈수면이 해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수면이 충분한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예민하지 않고, 원만한 성격이 됩니다. 반면, 불면증이 심해지면서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있는데, 스케줄이 불규칙한 연예인들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면증이 심한 사람들은 꿈수면 상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꿈 자체를 꿀 수 없어 감정기복이 크고, 감정 조절을 잘 하지 못합니다.
또한 꿈수면 단계에서는 낮 동안 뇌의 겉에서 맴돌던 정보들이 장기 기억으로 저장됩니다. 하지만, 꿈수면 단계는 나이가 들수록 줄어들기 쉽습니다. 고령층에서 많이 발생하는 치매환자들이 최근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치매환자의 경우, 어렸을 때 충분한 수면으로 습득된 자신의 고향, 이름, 나이 등의 장기기억은 다른 이에게 잘 말할 수 있지만, 꿈수면이 부족한 최근에는 자신이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등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어린 아기가 잠을 잘 때, 조그마한 성기가 자주 발기 되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관찰합니다. 성인들도 남녀의 구별 없이 약 1시간 30분마다 형성되는 꿈수면 때 성기능이 왕성해집니다. 그러므로 꿈을 꾸는 것은 건강에 유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서울수면센타 한진규 원장 약력: 고려대 의대 졸업, 고려대 안양병원 신경과 전공의 수료, 국립나주정신병원 신경과 과장, 국립보건원 뇌신경질환과 연구원,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수면 전임의, 신경과 최초 미국 수면전문의 자격 취득, 싱가포르 수면학교 강사 역임, 고려대 신경과 교수 역임, 대한수면연구회 학술이사, 한국수면학회 이사, 저서 `잠이 인생을 바꾼다`(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