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같은 큰 병에 걸려도 돈 걱정 없이 다 나을 때까지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한국의 현행 국민건강보험 제도 아래에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집안에 중병 환자가 나오면 `가정 파산`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별도의 암보험 등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부자들에겐 별로 부담이 되지 않지만, 서민들에겐 무거운 짐이 아닐 수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8년도 건강보험대상자 4천816만명 중 1년간 건강보험진료비를 500만원 이상 지불한 고액환자는 88만2천998명으로, 이들의 총 진료비는 10조4천577억원이나 됐다.    하지만, 치료비가 많이 드는 암 등 중증질환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여전히 낮은 게 현실이다. 질병별 건강보험 보장률은 위암 63.9%, 대장암 71.3%, 간암 69.1%, 폐암 76.6%, 유방암 68.7%, 자궁경부암 71.2%, 백혈병 76.3%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20~30%의 치료비는 환자가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이같이 낮은 건강보험 보장률에 국민들이 만족할 리 없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2008년도 건강보험 보장성 만족도는 49.2% 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도 많은 국민들이 높은 의료비 부담 때문에 빈곤계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한국사회보장학회는 2005년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주요 원인에 질병부담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최근 ‘1만1천원의 기적’이라 불리는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운동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이같이 의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를 주축으로 하는 이 운동의 기본 개념은 `국민 한 명당  월평균 건강보험료를 1만1천원 더 내서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무상급식에 이어 보편적 복지의 제2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운동`에 대해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이상이 상임위원장(46. 제주대 의대 부교수)에게 들어봤다.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시작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비급여 항목의 비중이 높고, 진료 시점에서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병원비가 서민 가계에 큰 짐이 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아파도 병원비가 걱정돼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구요. 이것은 보편적인 의료보장이 아닙니다. 보편적인 의료보장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보장의 폭, 보장의 범위, 보장의 깊이가 모두 충족되어야 합니다.   보장의 폭은 의료보장에 적용되는 인구의 비중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는 이 점에서 보편주의 원칙에 비교적 충실합니다. 보장의 범위는 급여항목의 정도를, 보장의 깊이는 무상의료의 정도를 뜻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료 보장의 범위와 깊이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즉 급여항목이 적고, 무상의료혜택이 적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들은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풀뿌리 사회운동으로 해결하기 위해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를 지난 7월 17일 출범했습니다. -1만1천원이란 금액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모든 국민이 똑같이 1만1천원을 더 내면 되는 것인가요?   건강보험의 보험료는 소득수준에 따라 정률로 부과됩니다. 1만1천원은 전체 국민의 평균치 입니다. 따라서 소득이 적은 계층은 1만1천원보다 적게 내고, 소득이 많은 계층은 1만1천원보다 많이 내도록 합니다. 최하위 소득계층 5%에 해당하는 건강보험가입자는 월 평균 추가 보험료가 1인당 약 3천원이고, 최상위 소득계층 5%에 해당하는 건강보험 가입자는 1인당 약 3만원입니다.   가구당으로 계산하면, 월 평균 추가 보험료는 약 2만8천원입니다. 최하위 5% 소득계층은 가구당 약 5천원, 최상위 5% 소득계층은 약 10만원을 추가부담하게됩니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은 1인당 월평균 3만3천원(가구당 8만2천원)의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는데, 약 1만1천원(가구당 2만8천원)이 추가되면, 평균 4만4천원(가구당 11만원)을 내면 되는 것이지요.   -1만 1천원이란 금액은 어떻게 산정된 것입니까.   우리나라의 건강보험보장률은 2008년에 62.2%였으나 2010년에는 50%후반대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보장률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8개국의 평균 수준인 80% 정도까지 올리려면 12조 4천억원의 재정이 더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보험료가 약 34% 인상돼야 하는 것이죠.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보험료 추가 인상분은 건강보험 3주체 모두에게 부과됩니다. 국민 부담 보험료가 전체 건강보험 재정의 약 50%를, 기업부담 보험료가 30%, 국고지원이 약 15%를 차지합니다. 국민 부담 보험료에 기업 부담 보험료와 국고지원이 연동돼 있기 때문에 연도가 달라져도 이 같은 분담비율은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추가 재정12조4천억원 가운데 국민 부담액은 6조2천억원, 기업 3조6천억원, 정부 2조7천억이 됩니다. 국민 부담액 6조2천억원을 국민1인당 월 평균 건강보험료로 환산하면 1만1천원이 됩니다.    이 계산법을 적용하면, 건강보험료율은 월 소득 대비 5.33%에서 1.87%p 증가한 7.20% 수준으로 늘어나고, 건강보험 재정은 약 36조2천억원에서 48조6천억원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보장성이 강화되는 범위는 어디까지입니까. 추가 재정은 암, 백혈병 등 모든 질병의 치료에 사용됩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무상의료와 급여 혜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선 △상급병실, 고가의 진단과 치료, 선택진료(특진) 등의 국민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을 급여항목으로 전환 할 수 있고, △입원중심 병원 진료비의 90%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할 수 있게 되며, △환자의 연간 본인부담금을 100만원 이하로 제한하는 ‘본인부담금 100만원 상한제’도 실시할 수 있습니다. 입원비가 100만원이 초과되면 초과 금액을 건강보험에서 내주는 것입니다. (6조2천억원) 또한 △상급종합병원 병상의 50%, 종합병원과 병원 병상의 30%에 간병서비스 제공, 간호인력 확충에도 사용됩니다.(3조원) △70세 노인에게는 틀니를 급여 제공할 수 있고, 치석 제거 시술(스케일링) 등 치과치료의 보장성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1조8천억원) △보험료 지급력이 부족한 소득 최하위 5%의 국민들은 보험료를 낼 수 있는 형편이 안되기 때문에 면제를 해줘야 합니다. 이보다 경제력이 조금 더 낫기는 하지만, 생활이 어려운 소득 하위 5~15% 국민들에게는 보험료 대출도 해줄 수 있습니다. (8천억원) △종업원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10%에 건강보험료 기업 부담분의 50%를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4천억원) -외래진료비는 보장 항목에 포함되지 않나요.   네. 이번 운동에서는 1차 의료기관(동네의원)은 제외됩니다. 병원급 이상 입원진료비만 포함될 예정입니다. 외래진료비까지 모두 보장해주는 것이 의료보장성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건강보험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들은 대부분 월 소득 대비 건강보험료율이 10% 내외 수준입니다. 북유럽 국가들과 독일 14.2%, 프랑스 13.5%, 대만 8.1% 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들 나라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습니다. 이 운동을 현실화시킨다고 해도 건강보험료율은 7.2% 밖에 되지 않습니다. 단계적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외래 진료비보다 고액의 입원비로 고통받는 국민들이 많아 이를 우선으로 두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늘어나면 불필요한 의료이용도 늘어날 수 있을 텐데요.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되면, 의료이용이 더 늘어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렇게 늘어나는 의료 이용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바람직한 일입니다. 정작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돈이 없어서 치료를 포기했던 사람들이 제대로 의료이용을 하기 때문이죠. 의료복지가 잘 되어 있는 스웨덴, 영국 등은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이 80~90%이상으로 매우 높지만, 불필요한 의료이용이 무분별하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습니다.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해서 오랫동안 입원하는 등 의료이용이 증가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기우라고 생각합니다. 퇴원명령제, 임상진료지침 등으로 해결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의사가 퇴원명령을 내렸는데도 환자가 무작정 입원을 지속할 때에는, 건강보험 혜택은 자동적으로 끊어지게 됩니다. 결국, 환자도 더이상 입원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또한 `비급여 항목`이 `급여항목`으로 전환돼 사회적 관리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 불필요한 서비스를 줄일 수 있으므로 오히려 의료 남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상당수의 의료서비스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었습니다. 이런 서비스는 국민에게 얼마나 제공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병원비 부담을 부당하게 늘리는 낭비적 지출이 비급여 항목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급여 혜택을 늘리면,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지 않을까요.   이 운동은 건강보험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보험 재정이 좋지 않은 것을 우려합니다. 하지만, 건강보험재정이 나빠진 원인은 보건 당국이 다국적 제약사의 의약품이 지나치게 비싼 값으로 수입되는 것을 방치하고, 행위별 수가제를 적용해 의사들의 과잉진료를 야기시켰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켜 놓고, 건강보험 재정이 충분치 않아 보장성을 높일 수 없다며 민간의료보험의 가입을 의도적으로 부추기고 있습니다.   현재 1인당 민간의료보험료는 평균 12만원이나 되고 전국민의 65% 정도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돼 있습니다. 하지만, 높은 가입률과 비싼 보험료에 비해 의료보장성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최고 75%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실현되면 의료 보장성이 80%로 높아지기 때문에 민간의료보험의 필요성은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민간의료보험가입도 감소할 것입니다. -이미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에게는 손해가 아닐까요? 정액형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은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에 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실제 본인이 부담하는 진료비에 상관없이 이미 정해진 비용을 보험금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발생한 진료비를 기준으로 보험금을 지불하는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은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최근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급팽창을 이끈 것도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단기계약상품이기 때문에 1~3년마다 계약을 갱신하게 되어 있고,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정책에 반영되어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되면 민간의료보험료는 인하될 것입니다.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은 보험료가 누적돼 돌려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약 갱신일에 해지를 한다면 불이익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는 형태로 보이는데요. 그렇습니다. 현재 의료민영화는 영리병원 허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라는 두 가지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활성화되면, 민간의료보험이 늘어나는 것을 자연스럽게 막게 됩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그런 의미에서 의료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한 근본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현재 여론, 정부, 민간의료보험사 등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1만1천원 건강보험료 증액으로 입원비의 90%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 운동에 대해 보수단체들과 정부 경제부처, 일부 진보단체 등에서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보수단체에서는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며 너무 적은 보험료 인상액을 제시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반면, 일부 진보단체에서는 저소득층을 생각했을 때 인상분이 너무 커 적당치 않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저는 보수와 진보 모두의 공격을 받는 것은 오히려 이 운동이 실현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수단체들의 반대 이유는 간단합니다. 재벌들이 소유하고 있는 민간의료보험회사의 이윤 감소 때문이죠. 재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부 또한 이를 반대하고 있어, 저희들은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부, 재벌, 어느 단체의 이익보다 국민들의 혜택이 가장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민간의료보험료로 10만원의 보험료를 내면 7만5천원의 의료보장이 이뤄집니다. 하지만, 건강보험에 10만원을 내면 기업 10만원, 정부 4만원이 추가돼 총 24만원의 건강보험재정이 확충되고, 그 중 90%인 21만 6천원이 입원비 등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현재 진행 상황은 어떠한가요. 정확한 집계는 아니지만, 약 1만명의 국민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공식 출범 이후, 광역 시·도 가운데 제주, 강원, 서울, 충북에서 시민회의가 출범했고, 다른 지역에서도 출범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군·구 지역에서는 서울의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 시민회의를 시작으로 구로, 노원, 도봉, 동대문, 강북구, 청주, 양주, 동두천, 화성, 진주, 창원, 천안 등에서 시민회의를 출범했거나 준비중 입니다. -언제쯤 이 운동이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2012년을 목표로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2012년에는 19대 국회의원선거가 있고, 18대 대통령선거도 있습니다. 이 때에는 국민들의 결집된 의사를 정치권에 밝힐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1년간 꾸준히 국민들의 참여를 이끌 수 있다면 분명 현실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2011년에는 전국의 광역 시·도와 100개 이상의 주요 시·군·구에 건강보험 하나로 지역 시민회의를 조직할 예정입니다. 국민들이 강한 의사를 밝히면 정부나 기업들도 이를 거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풀뿌리 시민운동이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상이 위원장 약력의학박사이자 예방의학 전문의로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 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제주대 의료관리학 교수이자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이다. 저서로 『복지국가혁명』(공저, 2007), 『한국사회와 좌파의 재정립』(공저, 2008), 『의료민영화 논쟁과 한국의료의 미래』(공저, 2008), 『한국복지국가 성격논쟁Ⅱ』(공저, 2009), 『Republic of Korea: Health system review, Health Systems in Transition』(공저, 2009),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편저, 2010) 등이 있다.    
최종편집: 2025-05-01 23: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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