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한의약연감이 최초로 발간됩니다."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팰리스호텔에서 열리는 한의약연감 발간 기념식에 참석해달라는 초청장이 대한한의사협회로부터 왔다. ‘한의계 최초의 의약연감이라니! 첫 연감인 만큼 1000 페이지도 넘을 만큼 두꺼울 텐데, 들고 오는데 애를 좀 먹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기념식장에 달려가 홍보 관계자로부터 받은 `2009년도 한의약연감`은 좀 빈약해 보였다. 215쪽, 5개 부문(행정, 교육, 연구, 서비스 산업, 제품산업)으로 구성된 작은 책자였다.
연감 출간을 맡은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한국한의학연구원, 대한한의사협회는 발간사에서 “아직은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의 연감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자평하며 “그러나, 이 연감은 한의약 발전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첫 연감을 발간한 소회를 밝혔다.
한의약연감의 발간은 한의학이 `근거 중심의학`(EBM: Evidence Based Medicine)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그동안의 연구결과와 통계자료들은 연구목적에 따라 기준이 천차만별이고, 관리-작성처도 서로 달라, 객관적인 데이터라고 하기 어려웠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연감이 발간된 것이다.
하지만, 첫 연감이 통계수치로 보여준 한의약계의 현실은 밝지만은 않았다.
한약재 수입은 2007년 7천910만3천 달러(887억1천400만원), 2008년 6천164만3천 달러(691억3천300만원), 2009년 5천910만2천 달러(662억8천300만원)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국내 한약재 생산이 정체돼 있는 가운데, 한약재 수입 감소는 `한약이 잘 안팔린다`는 것이고, 이는 곧 국민들이 `한약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한의약 분야에 책정한 국민건강증진기금과 연구개발(R&D)투자가 적은 것도 문제다. 국민건강증진기금의 경우,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연평균 1조8천억원 정도 배정됐는데, 공공의료기관 한방진료부 설치와 지자체 한방 건강증진 예산 지원 등 한방에 쓴 돈은 전체 기금의 0.6~0.7% 수준에 불과한 119억4천8백만원에서 128억7천만원 사이를 맴돌았다.
한의약 연구를 위한 정부지원금 중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집행하는 예산이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줄어드는 것은 특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복지부는 2005년 양한방을 합친 전체 연구비 1천663억원의 6.3%인 105억원을 한방에 투자했다. 2006년엔 1천877억원의 4.7%인 88억원, 2007년엔 1천805억원의 5.2%인 93억원, 2008년엔 2천265억원의 4.5%인 101억원, 2009년엔 2천229억원의 4.6%인 102억원으로 집계됐다. 94%이상의 연구비가 양방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
식약청의 경우, 한의약 부문 투자비는 2005년 69억5천만원, 2006년 71억원, 2007년 78억 3천만원, 2008년 64억4천만원, 2009년 50억 9천만원으로, 2007년까지 늘어나다가 2008년부터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전체 연구투자비 중 한의약 분야의 점유율은 2005년 26.9%, 2006년 25.9%, 2007년 24.3%, 2008년 18.2%, 2009년 14.7%로 해마다 줄었다. 4년 사이 비중이 절반으로 준 것이다. 복지부 보다는 높지만, 역시 양방 위주의 연구비 지원이다.
식약청 관계자들은 식약청이 주관하는 연구들은 주로 독성물질이나 미생물 연구 등 기반 중심의 연구이기 때문에 치료, 임상 등에 관심을 갖는 한의약계가 경쟁적으로 참여하지 않아, 양방 등 다른 분야로 연구가 넘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2010년에 수행된 연구과제 9개 중 2개만이 한의약분야에 배정됐다.
이렇듯 보건당국의 연구비 지원 차별과 한의약계의 행동력 부족은 전통의학의 우수성을 증명하려는 한의약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복지부와 식약청 외의 정부기관에서는 한의약에 대한 연구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점이다.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는 한의약연구원 출연사업 등에 2008년 대비 4.1%증가한 213억6천만원을 투자했고, 지식경제부는 의료기기 산업 원천기술개발사업, 지역혁신센터 조성사업 등에 2008년보다 32.5%증가한 83억5천억원을 투자했다.
한의약계가 이번 연감 발간을 계기로, 현안을 풀어나가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도 고무적이다. 올해부터는 연감 발간일을 9월로 앞당기고, 연감 제작에 더 많은 단체와 협의체가 참여하며, 관련 부처와 관계자들이 연감 내용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해당자료를 pdf파일 형식으로 배포할 예정이다.
한의계가 `위기`라고 외치지만 말고, 행동으로 이를 극복하려는 자세를 보인다면, 해가 거듭될수록 한의약연감은 그 두께를 더 할 것이며 그 두께만큼 중흥의 기틀을 다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