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숙(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부교수, 한방재활의학 전공)
쓴 한약, 아픈 침, 뜨거운 뜸, 피부의 일부분이 잡아당겨질 때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부항의 감각. 배합의 조건이 무지하게 다양할 뿐, 한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어찌 보면 이게 전부이다.
동네 한의원의 네 개의 큰 창에는 침, 뜸, 부항, 한약의 단어가 너무도 선명하다. 이 네 가지의 치료 도구들은 과연 세월에 맞추어 진화하고 있는가? 발전하고 있는가? 물론100여년 전의 그것보다는 좋아진 부분도 있으리라. 그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증류한약도 나왔고 약탕기와 팩포장기 덕분에 대량 탕제, 신속 포장도 가능하게 되었다. 침도 사이즈가 다양해졌고 재질에 따라 침감도 다르게 느껴진다. 가끔 머리카락처럼 가는 일본침도 쓰고 있는데 확실히 비싼 값을 하는 것 같다. 뜸도 다양하게 개발되었고 부항도 전자부항에 일회용 부항까지 회사도 다양해졌다. 10여년 전에는 어디를 가도 대․부항 뿐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의학의 많은 치료도구들은 한의학의 잠재적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기에는 불친절하고 불편한 것 같다. 아프지 않고 혈액검사를 할 수 있는 도구가 나왔다거나 더 간편하게 복용할 수 있는 약물의 획기적인 제형변화 혹은 컴팩트(compact)하기 짝이 없는 의료기기들을 발견할라치면 이건 뭐 말로다 표현하기 힘든 엄청난 부러움과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즉각 효과를 발휘해낸다는 연기 흡입식 진통제의 기사를 보았을 때는 절망감도 느꼈다. 부러우면 지는건데... “한의학은 더 이상 민족의학이 아니라 민속의학이죠.” 라고 우리를 늘 지속적으로 비아냥거리는, 의료일원화 특별위원회에 몸담고 계신 열혈 안티한방 의사 선생님의 조롱이 귓전을 때린다.
한의학의 이렇게도 많은 불리한 점들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잡스 교도들로 넘실대는 2011년 오늘날까지 침, 뜸, 한약을 포함한 한의학이 공생(共生)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딱 하나. 이렇게 불편하고 불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just because it works)?
내가 한의사이기 때문에 우수한 한의학의 효과 때문에 오늘날까지 한의학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하는 건 누가 들어도 우스운, 팔 안으로 굽히기 어법을 남발하는 것 같아서 낯 부끄럽지만....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화려하게 잘 나가던 회사가 혹은 제품이 하룻밤에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고, 아무 이유도 없이 생겨났다가 또 그 이상, 그 이하의 이유도 없이 물거품처럼 흩어져버리기도 하지 않은가? 효과가 없었다면 사라져도 이미 사라졌을 터이다. 요즘 환자들이, 특히 한국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1991년 ‘TIME`이 선정한 그 해의 인물은 CNN의 창업자인 테드 터너였다. 20년이 지난 2010년 ‘TIME`은 올해의 인물로 페이스북(www.facebook.com)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를 선택했다. 이는 공중파 채널에서 소셜 미디어로 언론의 권력이 이동했음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표한 사건이며 페이스북, 스마트폰, 소셜 네트워크가 2011년 오늘을 주무르는 키워드임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2011년 이런 키워드가 우리가 감당해내야 할 현실이라면 우리의 미래도 이 가혹한 현실을 바탕으로 계획되어야 할 것이다. 이 가공의 네트워크 인구(人口) 속에서 한의학은 어떻게 회자(膾炙)되고 있을까?
아무리 슬로 푸드(slow food)가 좋고 심신의학(mind-body medicine)이 그럴듯해 보여도 소용없다. 이제 문화(culture)가 아닌 의학(medicine)으로서 제대로 한의학의 깃발을 한 번 꼽아보자. 이제는 소셜네트워크의 거대시티 속에서, 한의학과 한의사가 끊임없이 반짝거리는 진주같이 좀 더 명확하고 가시적인 효과를 바탕으로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는 소식을 만들어 보자.
2011년 “신 교수 덕분에 나 살았소.... ” 하는 환자분들의 값진 감사인사를 “case series” 로라도 멋지게 보고해 보고 싶다. 그 날을 위해 나만의 미래일기를 끄적거려 본다. 기록하고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secret’의 주문을 외워보자. 민속의학이 민족의학으로 재평가받는 그 날까지 멈추지 말자.
*필자 소개: 한방재활의학과학회 정회원, 한방비만학회 학술이사, 한의안면성형학회 홍보이사, 대한여한의사회 편집이사. 저서 `한방재활의학`(2005), 역서 `미용적 문제를 해결하는 침구치료`(2008), `요추와 골반의 도수치료`(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