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들 사이에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다. 좋은 말만 듣고, 맛있는 음식만 골라 먹으며, 예쁜 것들만 보는 것이다. 지난 20일 서울 금천구 금나래아트홀에서 열린 ‘제6회 일동후디스맘 아카데미 ART 클래스’에 참가한 엄마들도 그러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임산부들이 선뜻 무거운 몸을 이끌고 김선현 교수(42)가 엄선한 명화(名畫)들을 보러 온 것이다.   이유는 김 교수가 `미술`을 `의료` 안으로 끌어들인 최초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알려주는 명화 감상의 기쁨을 뱃속의 태아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김 교수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 심리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임상미술 치료학 박사과정을 보냈다. 선진국의 미술 치료를 경험하기 위해 미국, 독일, 일본 등을 돌아다녔고, 2005년부터 지금의 차병원에서 일하게 됐다. 한국의 제1호 임상미술치료 교수인 김선현 씨를 만나 봤다.   - 500명이 넘는 임산부들이 강연장을 찾았습니다. 강연을 보고 무척 편안해 했는데요. 임산부들이 가장 많이 듣는말은 과연 뭘까요? 바로 ‘절대 안정’이라는 말이에요. 물론 임산부 뿐만 아니라 뱃속의 아이 모두에게 안정을 취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임산부들이 마음의 안정을 갖기는 쉽지 않아요. 그래서 이번 강연에서는 임산부와 태아 모두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엄마와 아기의 모습을 담은 20여 작가의 명화 50여점을 영상에 담아 준비했어요.   - 그림들은 어떻게 선정된 것인가요.   그림들은 차병원의 미술치료 연구팀이 지난 5년간 임산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선정했어요. 임산부들이 그림을 봤을 때 편안함을 느끼면 뇌파 중 알파파를 발생시켜요. 그렇게 알파파를 발생시키는 그림들 중에서 엄마와 아기가 함께 있는 그림들을 찾은 것입니다. 사실, 임산부들을 위한 음악회는 많이 개최돼 왔지만, 아이와 엄마 사이의 정을 명화로 접할  기회는 그동안 없었어요. 명화로 꾸며진 영상을 보면서 태교를 하는 건 처음일 거에요. 그래서 그런지 참가한 엄마들도 신선하다는 반응이더라구요.   - 30분짜리 영상이 상영됐는데요.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나요.   처음에는 엄마의 시선, 다음에는 아기의 시선이 느껴지는 그림들을 배치했어요. 서양화에서는 엄마와 아기의 교감이 직접적으로 표현된 반면, 동양화에서는 아이를 업은 엄마의 모습(왼쪽그림), 병아리와 닭, 강아지와 어미 개 등이 등장하면서 잔잔하게 모성을 표현한 민화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성향의 그림들을 모두 포함하려 했어요. 또 갤러리에서 실제로 그림을 감상할 때 앞에서 보기도 하고 멀리서 보기도 하잖아요?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다양한 각도와 위치에서 그림을 볼 수 있게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 미술 작품을 음악을 들으면서 감상하니까 더욱 감동이 있던데요.   저희 연구팀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이진희씨가 배경음악으로 팝페라 가수인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른 `우리가 믿기 때문에`(Because We Believe), `당신이 부르던 노래`(Canzoni Stonate), `침묵의 목소리`(La Voce Del Silenzio)를 추천해 이를 사용했어요. 보첼리의 중저음의 음색은 임산부들의 안정을 도와요. 또 팝페라라는 음악 장르는 정통 클래식보다 친숙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아서 명화 감상의 집중도도 높일 수 있어요.   - 명화 감상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많은 사람들이 명화 감상법에 대해 묻곤 하는데요. 사실, 명화감상은 어렵고 격식 있는 게 아니에요. 특히, 임산부들에게는 그림을 어떻게 보느냐 보다, 그림을 보고 편안함 느끼느냐가 중요하거든요. 임산부와 뱃속의 아기가 서로 교감을 나누면서 따뜻한 정을 느끼는 것이 바로 최고의 방법이죠.   - 특히 임산부들에게 인기가 좋은 작품은 무엇인가요. 임산부들이 가장 선호하는 그림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여성의 세 시기’(The Three Ages of Woman, 아래그림)였어요. 다음으로 오귀스트 르누아르 그림들을 좋아했구요. 임산부들은 차분한 색감보다는 밝고 따스하면서도 애정이 넘치는 색채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어요. 클림트와 르누아르의 작품들이 바로 그런 느낌을 주면서도 익숙한 그림들이지요. 일부는 성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가 등장하는 그림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임산부들은 그런 작품들은 색감이 덜하고 시대에 동떨어진 느낌이 든다고 말했어요. 마네와 모네의 작품들도 밝은 색감으로 유명해 임산부들이 좋아하는데, 이번 자료에는 충분치 못했던 거 같아요.   -임산부를 위한 다른 미술치료 방법들은 무엇이 있나요.   연필이나 물감, 크레파스, 색연필, 파스텔, 찰흙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실습 강연도 있어요. 이런 실습들은 산모의 뇌 활동을 돕고, 스트레스를 감소시킵니다. 또 태아의 감수성과 창의력을 자극하고, 집중력도 길러주는 역할도 하구요.  - 우리나라에서 미술치료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나요. 미술치료는 미술이라는 시각매체를 활용해 환자나 일반인들의 불안정한 감정을 완화 시켜주는 것을 말해요. 시각은 전체 감각의 70%를 차지할 만큼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요. 국내에서는 미술치료가 환자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요.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라요. 선진국에서는 미술치료를 우울증, 치매, 암, 특수장애 등 질병을 가진 환자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사용하고 있거든요. 뿐만 아니라 의료보험이 적용될 만큼 대중적이죠. 그 중 이번 강연 같은 임산부를 위한 프로그램은 산전, 산후, 불임 여성들을 위해 스트레스 완화, 우울증 방지 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임상 미술치료가 많이 활성화 돼 있나요. 아직까지 선진국처럼 임상에서 미술치료가 많이 활용되고 있지는 못해요. 전문적이지 못한 미술치료도 난립하고 있구요. 하지만, 미술치료도 치료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는 만큼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만이 해야해요. 수술 등 의료행위를 의사들이 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저는 미술치료에 관한 전문적인 교육체계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은 50여명이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차의과학대학교 대학원이 유일해요.    - 해외에 우리나라의 미술치료를 알리는데도 힘쓰고 계시죠.   서양에서 미술치료는 일반화돼 있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의 미술치료는 아직 그렇지 못해요. 그래서 한중일 연합 미술치료 학회인 `베세토(BESETO)`가 만들어졌어요. 각국의 수도인 베이징, 서울, 도쿄의 앞글자를 딴 이름이에요. 저는 학회장으로서 동양의 미술치료를 더욱 많이 알리려 노력하고 있어요. 서양에서도 동양의 미술치료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어요. 서양의 의학은 정량적인 약물 복용과 수술을 중요시 여기지만, 동양은 전체적인 조화와 예방을 중시하거든요. 미술치료도 마찬가지구요. 도쿄, 베이징에 이어 올해 11월에, 서울에서 회의가 열리는데, 동서의학과 동서미술 치료를 비교하는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 앞으로 전념코자 하는 일은.   제가 염원했던 `임상에서의 미술치료`는 현재 차병원에서 현실화되고 있어요. 미술치료 석-박사과정, 미술치료 클리닉, 미술치료 연구소가 있어 진료, 교육, 연구가 함께 이뤄지고 있죠. 물론 이렇게 되기 까지 힘든 점도 많았어요. 미술전공자가 의료분야에 처음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새롭게 찾아서 해야 했거든요. 하지만 강단있게 버티니까 지금에 이르렀어요. 하지만, 아직 제가 갈길은 멀어요. 미술치료를 활성화 시키고, 선진국에서처럼 의료보험이 적용돼 많은 사람들이 미술치료를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미술치료 분야에 정책적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할 거에요.   또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미술치료를 발전시키기 위해 집필활동도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23권의 책을 써왔지만, 아직도 쓰고 싶은 글들이 너무나 많아요. 다음달에는 여성의 삶과 관련한 미술치료 서적을 포함해 2권의 책이 더 나올 예정이에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저의 좌우명처럼 앞으로도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 김선현 교수 약력 - 이학박사 (미술치료전공) -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 부속병원 예술치료 인턴과정 수료- 일본 임상미술협회 미술치료 연수 (임상미술사 자격 취득)- 일본 기무라 클리닉 미술치료 연수 - 미국 MD Anderson Cancer Center 예술치료 연수- 프랑스 파리 ATELIER d`EXPRESSION PLASTOUE LES PINCEAUX (Professional 과정) 연수 - 한중일 미술치료학회(BESETO) 회장 - 전국임상미술치료연합회 회장  - 저서로는 `마음을 읽는 미술치료(그림으로 행복을 여는 시간)(2006)`, `똑똑한 내 아이를 위한 미술치료 쉽게 하기(2009)`, `집단미술치료의 이론과 실제(2010)` 등이 있다.    취재 김인욱 kiminuki@, 사진 최원우 기자 naxor@watcherdaily.com
최종편집: 2025-05-01 23: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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