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가장 많이 걸리는 암은 단연, 위암이다. 2008년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위암 발생률은 182개국 중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2월 28일 발표된 국가 암등록 통계에 따르면, 2008년 위암 환자는 2만8천78명으로, 전체 암환자(17만8천816명)의 15.7%로 역시 1위였다. 국가 암등록 통계는 2년에 한 번씩 발표된다. 가장 눈에 띄는 사항은 위암이 1983년부터 줄곧 발생률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위암에 취약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의들은 위암의 직접적 원인은 아직 밝혀진 게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짜고, 자극적인 음식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식생활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병리과 박영수 교수는 “흔히 위암의 발병원인으로 알려진 것들은 위암의 ‘위험인자’라고 보는 게 맞다. 위험인자를 가진 사람이 위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 위험인자를 가졌다고 해서 위암이 생긴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 가계부를 쓰는 것처럼, 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떠한 위험인자에 얼마나 노출 돼 있는지 알 수 있는 `위험인자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대비할 필요가 있다. 위암의 위험인자는 환경적인 원인(음식, 습관), 환자의 원인, 유전적 원인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뉘며 총 10가지로 세분된다.
1. 질산염 화합물
질산염화합물의 하나인 `아질산염`은 음식물의 단백질과 섞이면 발암 물질인 `니트로조아민`을 생성한다. `아질산염`은 햄 소시지의 발색, 보존을 위해 사용하는 첨가물이다. 질산염 화합물은 냉장-냉동 보관 상태에서는 발암물질이 아니지만, 상온에 노출된 채 방치될 경우 발암물질이 된다. 우리가 식품코너에 냉장-냉동 보관돼 있지 않은 제품들의 섭취를 꺼려야 하는 이유다.
2. 신선하지 않은 음식
이는 곧 신선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위암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2차 대전 이전에는 전 세계적으로 위암이 가장 흔한 질병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냉장고가 각 가정에 보급되면서 위암 발생률은 급격히 줄게 됐다.
3. 태운 육류
불에 태우거나 훈제한 음식도 대표적인 위암의 위험인자다. 단백질과 지방질의 탄 부위에 ‘이종환식 아민’이란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4. 짠 음식
소금 자체는 발암물질이 아니다. 위에는 위벽을 보호하기 위해 얇은 점막이 있는데, 짠 음식을 계속 섭취하다 보면 위점막을 계속 자극하게 된다. 그러면, 위의 표면인 점막이 만성 염증으로 얇아지는 `만성위축성 위염`과 위의 가장 표면에 있는 점막층보다 안쪽에 자리한 위의 근육층까지 손상이 진행되는 `위궤양` 등을 발병시킨다.
물론, 위에 있는 양성 궤양이 악성 궤양으로 바뀌어 위암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짠 음식 섭취 등으로 궤양이 생긴 환자는 건강한 위를 가진 사람 보다 발암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암 발생 위험이 더 높아질 수 있다.
또한 위의 소화를 돕는 위산은 강한 산성을 지닌 효소다. 산은 탄수화물 보다 단백질을 주로 소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 탄수화물이 주식이면서 염장 음식을 즐기는 우리나라와 일본은 위암 환자의 수가 모든 암 중 으뜸을 차지하지만, 영국은 10위이고, 미국은 10대 암에 포함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5. 흡연
흡연도 환경적 원인 중 하나다. WHO는 담배를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식생활에서 남녀간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남성에게서 위암 발생이 높은 이유는 남성 흡연율이 여성 흡연율보다 높기 때문이다. 담배연기에는 청산가스, 비소, 페놀 등을 포함한 69종의 발암물질, 4천여 가지의 독성 화학물질이 포함돼 있다.
6. 만성위축성 위염, 장형화샘, 위 선종
환자의 원인도 고려해야 한다. `만성 위축성 위염`과 위 점막이 소장의 점막처럼 변형된 `장형화샘`, 양성 인자이긴 하지만, 용종과 폴립같은 `위 선종` 등 점막 내에 병변이 있는 환자는 주의해야 한다.
만성 위축성 위염은 약 15년 후에 위암으로 발전했다는 연구가 있다. 위암환자의 40%가 위선종을 동반하고 있고, 선종 환자의 30%에서 진단 당시 위암이 동반되고 있다. 드물긴 하지만, 위식도 역류가 심해 생긴 바렛식도염도 위암의 위험인자이다.
7.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은 위암 발병의 주된 원인이라 알려져 있지만, 이는 과장된 면이 있다. 전체 위암환자의 40~60%가 이 균에 감염돼 있으나, 정작 감염된 환자의 1~2%에서만 위암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는게 전문의들의 소견이다.
8. 위 절제 경험
위염 또는 위에 구멍이 생기는 `위천공`으로 위의 일부를 잘라낸 환자의 경우에도 정상인에 비해 위암이 2~6배정도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
9. 가족성 위암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발생하는 가족성 위암은 드물게 나타난다. 가족성 위암은 한 가족에 최소 3명의 위암 환자, 이중 1명은 50대 이하에서 발병해야 하며, 연이어 2대에 걸쳐서 발생한 경우만을 뜻한다.
10. 가족력
정작 걱정해야 할 부분은 가족력이다.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위암 발생 위험도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2~4배 정도 높고, 환자와 비슷한 식생활 습관이 배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