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숙(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부교수, 한방재활의학 전공)   2011년 2월이 하루도 채 남지 않았다.  2000년 2월은 내가 7년간의 지리멸렬(支離滅裂)한 한의대 생활을 마감하고 졸업과 함께 한의사 면허를 취득한 달이다. 그리고 4년간의 긴 수련의 생활에 첫발을 딛기 시작한 달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밀레니엄 버그 소동과 함께 시작된 2000년은 1월 1일만 시작되면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라도 할 것처럼 전세계적으로 난리법석을 떨었던 해였으니 그게 바로 11년 전이다.   11년 사이에 스물 여섯의 꽃다운(?) 아가씨 한의사였던 나는 두 아이(9세, 7세)를 둔 워킹맘이 됐고, 그 사이 또 뭐가 변했을까? 나는 그대로인데 시대가 변한 부분도 있고, 시대는 그대로인데 내가 변한 부분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사회문화적 변화중 하나는 `커피숍의 난립`이다. 스타벅스가 국내에 처음 상륙한 것이 1999년 7월. 이화여대 앞 국내 1호점을 시작으로 최근 대학로 대명거리에 317호점까지 개장을 마쳤다고 하니 미제 커피집은 이렇게 끝도 없는 상승일로를 이어가고 있다.   스타벅스 로고가 새겨진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거리를 누비는 젊은이와 늙은이들은 ‘된장 피플’ 소리를 들을지 모르겠으나, 어딘지 모르게 그들의 표정에는 자부심이 묻어있다. 자랑스럽고 멋진 소비를 하고 있고, 스타벅스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뭔가 커피맛을 아는 사람들의 계층으로 올라선 것 같은 뭔지 모를 당당한 표정. 그 표정을 만들어 낸 것은 스타벅스 이면의 어떤 마케팅 덕분일까?   2007년 의원급 폐업수 및 폐업율 현황에 관한 보고서에서 단연 1위를 달린 것은 한의원이었다. 문닫는 한의원에 대한 추세는 2011년에도 현재 진행형이라 여기저기에서 ‘한의사들 망해간다’며 나팔을 불어대고 있고, 흥에 겨운 기자들의 보도 릴레이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한의학이라는 존재는 커피 한 잔보다도 덜 필요하다”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커피집이 사라진 도시는 쉼터나 여유가 사라진 삶처럼 황폐하기 이를 데 없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대신, ‘한의원이 사라진다’고, ‘한의사들이 사라진다’고 흘러가던 초침이 가던 길을 멈출 일은 없을 것이다.   최근 한방치료로 고질적인 허리통증을 고친 한 환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한방치료로 나은 것이라고 말하기가 좀 힘든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의학에 우호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기 싫다고 조심스레 말하며, 미신을 믿는 비과학적인 사람, 덜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기 싫은 면도 있다고 전해왔다. 한의학은 현재, 2000년보다도 훨씬 미개한 세계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 겨우 11년만에 철옹성(鐵甕城)같은 고급 이미지를 갖춰버린 스타벅스 커피잔처럼 자랑스러운 소비의 느낌을 주지 못할까? 우리는 왜 숨어서 먹고 몰래 버려져야 하는 개소주 팩같은 존재로 전락했을까? 우리 두 아이들에게 `한의사 엄마` 라는 타이틀이 부끄러운 이름으로 기억되어서는 안될텐데... 왜 사회는 자꾸 한의사와 한의학을 ‘위험한 한방’, ‘한심한 한방’, ‘사라져야 하는 비윤리적인 의학, 한의학’으로 자꾸만 몰아가는 걸까.   내가 11년간 만났던, 그리고 다행히 한의학적 방법과 나의 치료를 통해 완치했다고 믿게 된 많은 환자들에게 나는 그렇게 나쁜 존재였던 것일까?     명문대 의대 교수가 가짜 만병통치 생명수 제조기를 만들어 판 혐의로 경찰에 적발된 사건(사진)이 있었다. 이른바 가짜 생명수 사건. 검사 결과 마시지도 못할 물로까지 판정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건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사기꾼으로 확대 재해석되는 보도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일 이 생명수를 판 교수가 한의대 교수라도 되었더라면 ‘한의학=한의사=한의대교수=사기꾼=현대판 봉이 김선달’ 등으로 확대해석한 보도들이 끝도 없이 쏟아졌을 것이다. 어쩌면 한의원의 내원 환자수에도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   스타벅스가 오늘날의 이미지를 구축한 데 걸린 시간은 겨우 11년이었다. 5천년 역사를 가진 전통과 미개 속의 한의학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바꾸어 보는 데 앞으로 11년을 내달려보면 어떨까. 테이크아웃 한약팩을 들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거리를 활보할 여대생을 기대해본다. 보편타당한 의학으로의 대중성을 갖춘 그래서 기호품으로서의 커피를 뛰어넘어 건강 필수품으로 자리 잡는 그 날을 위해 앞으로 11년, 부족한 것은 채우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보자. 5천년을 버텨온 끈질긴 한의학의 생명력을 다시 한 번 발휘해 보자.           *필자 소개: 한방재활의학과학회 정회원, 한방비만학회 학술이사, 한의안면성형학회 홍보이사, 대한여한의사회 편집이사. 저서 `한방재활의학`(2005), 역서 `미용적 문제를 해결하는 침구치료`(2008), `요추와 골반의 도수치료`(2008)  
최종편집: 2025-05-02 04: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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