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은 권순애에요. 한자로 순할 순(順), 사랑 애(愛). 순하게 자라고, 사랑도 많이 받으라고 지어진 이름이죠. 그런데 정말 이름처럼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권순애(경기도 광명시, 54)씨는 유방암 완치 환자다. 지난 2005년 4월, 남편 회사에서 실시한 건강검진에 따라갔다가 우연히 받은 검사에서 오른쪽 가슴에 암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친정, 시댁 식구들 모두 암에 걸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방심하고 있었거든요. 암 선고를 받기 7년 전에 육아시설을 운영했었는데, 일이 고됐어요. 또 아이들이 다치는 불상사가 생기는 바람에 보상해주느라 재산도 많이 잃었죠. 지금 생각해도 끔찍해요. 맘 아파하고 사람들에게도 지치고...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그때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암에 걸렸다는 생각을 해요."
권씨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아 유방암 2기 판정을 받고, 너무나 당황스러웠다고 말한다. 경황이 없었지만, 곧바로 항암치료에 들어 갔고, 수술로 암과 주변의 림프절을 떼어냈다.
"원래 겁이 많아서 항암 치료를 위해 맞는 주사는 제겐 너무 힘들었어요. 아프고 싫었죠. 주사 맞는게 너무 무서워서 5살 아이 마냥 일하고 있는 남편을 병원에 불러 주사 맞는 동안 몸을 잡게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녀가 암환자가 되자, 가족들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남편 김승철씨(56)는 원래 무뚝뚝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수호천사`가 됐다.
"정말 남편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살 수 있었을지 잘 모르겠어요. 남편은 제가 암에 걸렸단 사실을 알고 아이들에게 `이제까지 난 너희들을 위해 살아왔지만, 지금부터는 엄마만을 위해 살겠다`라고 말했어요. 아이들에겐 정말 미안했고, 남편에겐 고마웠어요. 또 남편 친구들이 그러더라구요. 골초였던 남편이 담배를 끊게 된 계기가 저 때문이라고요. 평생 못 끊을 줄 알았는데.. 저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어요. 간병하랴, 일하랴 힘들었을텐데, 굳건히 제 곁을 지켜주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암을 이겨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어요."
지난달 9일 이화의료원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여성암 콘서트`에서 부부는 손을 꼭 잡고 암 극복 사연을 발표했다. 남편이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는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실 만큼 감동적이었다. 김 씨는 편지에서 아내를 `소녀`라고 표현했다.
"무서워 하는 것도 많고, 마음도 여려 암을 잘 견뎌 낼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6번의 항암치료로 인해 머리카락이 빠진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게 싫어서 스카프를 얼굴과 머리 위에 두르고 운동을 했죠.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암을 이겨내려는 아내의 마음을 알 수 있었죠. 내가 사랑하는 아내는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어요."
그렇게 자신의 곁에서 항상 흔들렸던 마음을 달래준 남편이 그녀는 한없이 고맙기만 하다.
"항암치료 중에는 남편이 휴가를 내고 간병을 해 줬어요. 오랫동안 성실히 근무한 회사라 이해해 주더라구요. 암에 걸린 첫 해 제 생일에 병원에 누워 있는데, 남편이 조갯살을 넣은 미역국을 끓여온 거에요. 지나친 육식을 자제해야 한다는 의사선생님 말을 듣고요. 참 고마웠어요. 또 꾸준한 운동이 좋다고 회사 산악회 모임에 저를 데리고 다녔죠. 지금도 둘이 휴일마다 2~3시간에 걸쳐 산에 올라요. 산이라면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에요. 에베레스트도 다녀 왔을 정도니까요. 등산을 하면, 산을 정복한 기분이 들잖아요. 등산은 저에게 암도 정복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했어요. 남편은 그걸 제게 알려주려 했나봐요"
반면, `울보 엄마`를 이해해주고, 사랑해준 딸(28)과 아들(25)에겐 항상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저 때문에 충격이 컸어요. 딸은 대학을 휴학하고 배낭여행을 갈 정도로 많이 방황하기도 했죠. 내색을 안하는 씩씩한 딸이라 잘 몰랐어요. 어느날, 우연히 일기를 봤는데, 그 이야기를 써 놓은 거에요. `나 때문에 애들이 고생하는 구나`란 생각이 들어 방에 주저 앉아 펑펑 울었어요. 아들은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시간 날 때마다 올라와 저와 얘기도 해주고, 살갑게 대해줬어요. 자주 웃으니 병도 낫는거 같았어요."
하지만, 항상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했던 그녀에게도 서럽게 운 날이 많았다. 평상시에는 잊으려 노력했던 암환자란 사실이 느껴질 때는 더욱 그랬다.
"원래 눈물이 많은데, 암에 걸린 이후 더 `울보`가 돼 버렸어요. 제일 서럽게 운날은 지금도 기억나요. 싱크대 위 찬장에서 오른손으로 접시를 잡으려 했는데,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어요, 힘을 줬다고 생각했는데, 가슴 주변 림프절이 없어 감각이 둔해져서 그런지 힘조절이 안된 거에요. `아, 나도 어쩔수 없는 암환자구나` 하는 생각에 한참을 소리내 울었습니다."
권씨는 방사선 치료 5년 후인 2010년 8월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1년마다 받는 추적검진으로 재발 등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도 안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가끔 남편은 이제 완치 됐으니, 맘을 좀 놓으라고 이야기 해요. 그럴 땐 가끔 서운하기도 하다니까요. 한번 암에 걸린 환자들은 완치 판정을 받아도 쉽사리 지금껏 해왔던 관리를 중단할 수 없어요. 또 다시 힘든 일을 겪고 싶지 않으니까요. 결국, 완치 전-후의 상황은 똑같아요. 스트레스는 줄이고, 운동은 열심히 하며, 지방질은 적게 먹으면서 지내는 거죠."
그래도 권씨는 가족이 곁에 있고, 욕심을 버린 생활을 할 수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욕심을 버리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니 만족하기가 힘들었죠. 하지만, 지금은 욕심을 버리고, 나와 같은 암 환자들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같이 말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특히, 가족이 준 사랑은 다른 어떤 항암치료제보다 더 좋은 명약이었어요. 앞으로도 몸 관리 잘 해서 오래오래 가족들과 알콩달콩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