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강지원 보건복지부 자살예방대책추진위원회 위원장(변호사, 62, 사진)이 지난 21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1 서울 정신건강포럼`에 온 청중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시원스럽게 "네~"라고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사람들이 대답을 머뭇거리는 사이, 그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라며 강연을 시작했다.
카이스트 학생 4명이 잇따라 자살한 사건으로 온 사회가 뒤숭숭한 가운데열린 이날 포럼에서 강 변호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경쟁력 20위 안에 드는 한국이, 행복지수 조사에서는 20위를 하지 못하고,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비판했다.
강연이 끝난 뒤 그를 만나 자살의 사회적 파급력과 자살 예방 대책에 관해 들어봤다.
-열정적인 강연이었습니다. 특히 한국인의 자살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유명인들의 심리 부검을 시도한다는 내용은 파격적으로 보입니다.
한국에서 유명인들의 죽음은 그 영향력이 큽니다. 실제로 베르테르 효과를 보이고 있죠. 연예인, 대통령, 재벌, 교수, 국회의원, 학생, 장관, 시장, 도지사 등 다양한 직책의 사람들이 너나 할것 없이 자살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유명인들의 `심리적 부검`은 꼭 필요해요. `심리적 부검`이란 자살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 자살로 죽은 사람의 주변환경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수집 하는것이에요.
유가족들이 허락만 한다면 최진실 씨, 노무현 전 대통령, 정몽헌 회장, 며칠 전 사망한 모델 김유리 씨 등의 심리적 부검을 시도해 보는 것이 한국인의 자살 원인 파악에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100가지 교과서 보다 자살의 예방, 치료에 더 큰 효과를 줄 것입니다. 심리적 부검은 유가족들의 심리적 치유도 함께 이뤄질 수 있는 장점이 있죠. 고인에 누를 끼칠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더 좋은 사회적 영향으로 남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자살에 관해선 비상사태라도 선포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천안함 사태때 장병 46명이 사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습니다. 그리고 살아서 돌아온 장병들이 심리적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자살로 인해 1년에 사망하는 사람은 1만5천명이에요. 엄청난 숫자죠. 한 자살통계에 따르면 그 10배 수준인 15만명이 약을 먹거나 목을 메는 등 자살을 시도한다고 합니다. 이게 비상사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는데, 우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우리 모두 각성하고 고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살 예방 대책으로 `행복감과 우울감 지수`에 대한 조사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멀쩡한 사람한테 우울증 조사를 하라고 하면 거부감을 보입니다. 그러니까 명칭을 호감가게 짓는 게 중요해요. `행복감과 우울감에 대한 설문`처럼요. 한국인에게 수시로 행복감과 우울감을 테스트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죠. 병원에 가면 혈액검사를 공짜로 해주듯이 우울증 검사를 일상화시키는 것입니다. 동사무소에 주민등록등본을 떼러 갈 때, 운전면허증 갱신 할 때 등등.
자신의 우울상태를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심리검사를 자주 접하게 될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우울정도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위험하다고 느낄 때 치료를 시작할 수 있고,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예방이 자연스럽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동안 많은 자살 시도자들을 만나셨을 텐데요.
십년 전에 한 무속인이 자기가 죽기 전에 저를 꼭 만나봐야 겠다며 찾아왔어요. 죽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요. 그래서 제가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 분은 죽고 싶은 생각이 들때마다 저를 찾아 왔어요. 저는 그럴 때마다 어차피 죽는 거 뭘 그렇게 서두르냐고 했어요. 그렇게 서로 이야기 하는 사이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어요. 그 분은 아직도 잘 지내고 계세요.
반면, 최진실씨는 정말 안타깝습니다. 제가 최진실 씨의 고민을 듣곤 했거든요. 인터넷 등 자신에 대해 떠도는 소문에 대해 많이 괴로워 했어요. 그래서 신경외과 교수를 소개시켜주기도 했지만, 끝내 진료를 거부하더라구요. 자기가 병원에 가게 되면 소문이 날거라면서요. 사회에서 자살시도자라는 낙인을 받고 싶지 않았을 테죠.
-최근 트위터를 통해 자살을 막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인터넷, 소셜네트워크 등이 자살 방지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인터넷 매체라는 것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방금 말한 최진실 씨의 경우에도 인터넷에 게재된 글 때문에 많이 괴로워했어요. 하루에 자신에 관한 모든 댓글들을 읽으면서 잠을 못자곤 했죠. 자살카페 등이 만들어 지는 것도 악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소셜네트워크 등을 이용해 자살을 막기도 하지만, 부추길 수 있다는 점도 상기해야 합니다.
-카이스트에서 발생한 교수, 학생 연쇄자살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학생들을 위해 스트레스 방지 강좌 등을 개설한다고 하는데요. 효과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스트레스 강좌를 실시하는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하지만, 그 질이 중요하죠. 검증된 전문인들이 강연을 해야 합니다. 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질적 검증이 필요합니다. 강좌도 중요하겠지만,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관념을 깨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도 자살을 막는 한 대안이라고 말씀 하셨죠.
`카이스트 자살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무작정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요 때문에 이를 이루지 못할 경우, 자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각자의 달란트가 달라요. 어떤 사람은 공부를 잘하게 태어났고, 또 다른 사람은 사장이 될 수 있는 사교성을 타고 났죠. 공장장, 직원으로서의 능력을 타고난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들은 모두 사장, 공부 잘하는 사람이 되길 꿈 꾸죠. 목표가 그러하니, 이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학생이라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누가 정해놓았습니까. 잘못된 사회통념과 꿈에 대한 옳지 못한 인식이 자살을 부르고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 상담을 하다보면 많은 아이들이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연예인", "대통령", "국회의원", "부자" 등을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그건 꿈이 될 수 없어요. 진짜 꿈을 위한 수단이나 방법일 뿐이죠. 그리고 그렇게 대답하는 아이들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됩니다. "연예인이 되어서 무엇을 할 건데?"라고 다시 물어봐야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되묻지 않고, 그냥 방치하고 말죠. 이제는 올바른 꿈이 무엇인지 알려줘야 해요.
-돈, 명예, 인기 등 감투를 원하는 사회가 인간을 고통으로 몰아간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우리는 언젠가부터 `돈!돈!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돈, 권력, 명예, 인기를 가진 사람들이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대통령, 연예인, 재벌들도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돈, 권력, 명예는 삶의 목표가 될 수없고,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이것은 단지 `욕망적 사고`일 뿐입니다. 돈, 명예, 권력에 대한 욕망들이 우리의 머리와 가슴속에 꽉 차 있습니다. 그러니, 이를 달성하기 위해 돌진 할 수 밖에 없죠. 또 `비교`의 사고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10억원을 벌어서 기분이 좋았다가 옆집 사람이 12억원을 번 사실을 알았을 때 낙담하는 것이 요즘 우리들입니다. 이 망국적인 사고 방식을 뜯어 고치지 않는 이상 나아지지 않습니다. 지금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조선시대가 아닙니다. `다름의 철학`을 알아야 합니다. 전세계 인구 중 나와 꼭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도 서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만들어 냈고, 사회적으로 부추겼던 `욕망`과 `비교`의 사고를 깨 부셔야 합니다.
-한국인의 트라우마와 자살의 상관성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마하트마 간디 선생도 15살 때 독이 든 씨앗을 입에 털어 넣고 자살을 시도 했습니다. 또 그의 자서전에 보면, 그는 담배를 사서 피고 싶은데, 돈이 없어 얻어 피워야 하는 현실이 싫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살아서 인도의 선구자가 됐죠. 이렇듯 청소년기에는 갈등을 많이 느낍니다. 성장통을 느끼면서 성인이 되는 것이죠. 유소년-청소년기의 체험들은 상처로 남아 트라우마가 됩니다. 하지만, 태어나기 전부터 한국인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습니다. 뱃속에 있던 태아들은 부모의 다툼에 대한 트라우마를 자신도 모르게 갖고 있습니다. 또 일제 강점으로 인한 고통, 6.25 전쟁으로 인한 상처 등도 한국인의 대표적인 트라우마입니다. 내재돼 있는 다양한 트라우마들이 자살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살예방을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무엇일까요.
자살 예방을 위해서는 인프라 확충이 가장 중요합니다. 종교지도자, 신경정신과 전문의, 게이트 키퍼 등 자살 예방에 관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양성, 투입돼야 해요. 지금은 전문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자신을 얽매고 있는 욕심을 한단계씩 내려놓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려면, 자주 웃어야 해요. 사람들은 저보고 `늙은이가 왜 실없이 웃느냐`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많이 웃다보면 행복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많이 웃고 욕심을 버리면 행복해지는 거에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자살도 줄어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