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12월, 위가 아프다며 동네 내과를 다녀온 엄마는 처방약을 드시면서도 통증이 없어지지 않아 밤마다 잠을 못 주무셨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 다시 병원을 찾아 초음파검사를 받았습니다. 간 쪽이 이상하다는 소견과 함께 CT를 찍게 되었습니다. 큰 병이면 10만 원이, 이상이 없으면 20만 원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엄마는 20만 원을 준비해 갔습니다. 그리고 10만 원을 내고 돌아오셨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가 암과의 기나긴 싸움의 시작이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MRI검사를 하고, 다시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조영술(ERCP)을 하고, 이름조차도 낯선 검사들이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췌장 악성종양일 가능성이 90%라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주치의는 만약 악성종양일 경우 수술은 불가능하며, 항암을 하더라도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과 함께, 서울로 갈 것을 권했습니다. -국가암정보센터 수기공모전 우수상 김향화 씨의 글 중에서-
생존율 낮아.. 진행된 경우가 대다수고, 주변 장기-혈관 많아 수술 힘들기 때문
김향화 씨의 어머니와 같이, 췌장암 환자의 80% 정도는 진단 당시 암이 주변 복강 내 장기나 복막에 침범해 있다. 통계적으로 나머지 20%만이 근치적 수술을 받을 수 있어 전체 환자의 평균 생존율이 6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중앙암등록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췌장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7.6%이다. 유일하게 5년 생존율이 줄어들고 있는 암이기도 하다.
박연호 가천의대 길병원 외과 교수는 "췌장암은 우리나라 소화기암 중 위암, 간암, 대장암 다음으로 흔한 암"이라며 "임상적으로 증상의 발현이 늦고 림프절이나 간 등으로 전이가 잘 되고, 중요한 혈관이나 구조물이 장기 주변에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절제 수술 등을 통한 완치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암 췌장 머리 부분에 가장 많이 발생
췌장은 흔히 이자라고 불리며, 상복부의 후복막에 길고 납작하게 가로로 놓여 있는 연한 노란 색을 띄는 장기다.
췌장암은 췌장관에서 발생하는 췌관선암이 9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췌관선암을 췌장암이라고 부른다.
췌장은 머리, 몸통, 꼬리 등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암은 특히 머리 부분에 많이 발생한다. 몸통과 꼬리 부분에서 생기는 암은 초기에 거의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진행된 후에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흡연하면 췌장암 발병 위험 최대 5배
전문의들은 췌장암의 발생과 가장 깊은 관련을 가진 발암물질은 담배라고 말한다. 박 교수는 "흡연자들은 췌장암의 상대적 발생 위험도가 2~5배 정도"라고 설명한다. 또 두경부암, 폐암, 방광암 등 다른 장기에 악성종양이 생겼을 때에도 흡연을 하면, 췌장암 발병 위험이 늘어난다. 췌장암에 의한 2차적인 내분비기능 장애로 인한 당뇨병, 만성 췌장염은 췌장암의 원인질환으로 손꼽히고 있다.
특징적 증상은 황달-체중감소.. 증세 없는 경우도
췌장암 환자들의 증상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통증 없이 황달이 나타나기도 하고, 허리를 굽혔을 때 조금 나아지는 듯한 느낌의 복통, 등 부위의 통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 성 가톨릭대 성바오로병원 외과 교수는 "췌장암으로 인한 복통에는 다소 특징이 있는데, 반듯하게 누우면 아픔이 심해지고, 앉아서 무릎을 끌어안는 자세를 취하면 아픔이 덜해서 편해진다"고 말한다.
또 체중감소나 구토 등의 비특이적인 증세가 보인다. 애플의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췌장암으로 인한 체중감소가 눈에 띄어 `6주 시한부설`이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암이 어느 정도 진행될 때까지 전혀 증세가 없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건강하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건강검진을 통해 췌장암 발병을 알게 된다.
최동욱 성균관대의대 삼성서울병원 외과 교수는 "50대 중반의 한 여성 환자는 건강검진을 통해 암이 췌장 뿐만 아니라 간문맥 등 주변의 큰 혈관까지 침범한 사실을 알게 돼 이를 모두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아야만 했다"고 말했다.
영상진단과 혈액 검사 병행해 암 진단.. 새로운 조기 진단 기술 필요
췌장암은 초음파, 복부 전산화 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촬영(MRI),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조영술(ERCP), 내시경 초음파 등의 영상진단, 혈액 검사를 통한 종양 표지자(CA 19-9, CEA, DU-PAN-2 등) 수치 측정을 통해 진단할 수 있다.
그러나 최동욱 교수는 "이러한 진단법으로도 췌장암을 조기에 진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효과적인 새로운 조기 진단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절제 수술, 항암-방사선요법 통해 치료 할 수 있어
췌장의 머리 부분에 암이 발생한 경우에는 대표적인 절제수술법인 `췌십이지장절제술`(휘플수술)을 실시한다. 췌장 머리 부분, 십이지장, 담낭 및 담관, 필요시 위장의 일부까지 동반 절제한다. 췌장의 몸통이나 꼬리 부분에 발생한 암의 경우에는 발생 부위는 물론, 비장 또는 신장과 대장의 일부까지 절제하는 수술을 한다. 최동욱 교수는 "이와 같은 절제수술은 위험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췌장암의 완치방법은 수술적인 절제술뿐이라서 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그나마도 암이 비교적 조기에 진단된 경우에만 근치적 절제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절제수술이 불가능한 환자들은 보조적 치료법으로 암이 발생한 부위에 방사선을 조사하는 방사선 치료와 항암제를 사용해 종양 세포의 진행을 완화시키는 항암화학요법을 시행한다.
이 성 교수는 "이미 절제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지만 다행히 전이가 없는 췌장암 환자 가운데 40% 정도는 방사선 치료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방사선 치료만을 시행하는 경우에는 생존기간을 연장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항암제를 방사선 치료와 함께 투여하면 생존기간을 연장 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연호 교수는 "항암 요법은 암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암의 전이나 재발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기도 하며 암으로 인한 2차적 증상을 완화 시키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항암제는 경구 또는 정맥 투여한다.
최 교수는 "비록 간이나 다른 장기로 전이된 `전이성 췌장암`에 대한 완치법은 없으나, 지난 수년 간 새로운 전신 항암요법이 개발되고 임상에 적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임상에선 젬시타빈(gemcitabine)이나 대사길항제(5-Fu)가 사용되고 있다. 아바스틴(Avastin)이나 이레사-게피티닙(gefitinib-Iressa), 타세바-엘로티닙(erlotinib-Tarceva), 어비툭스(Erbitux) 등의 분자생물학적 치료법도 연구 중이다.
췌장암 환자 영양상태, 체중변화, 당뇨 등 중점 관리해야
췌장은 소화액을 생성하여 분비하는 곳이므로 이에 이상이 생기면 음식물의 소화가 잘 안되고, 이로 인해 환자는 음식물을 통해 에너지를 흡수하기 어렵게 된다. 또 소화불량으로 식욕이 떨어진 데다가 치료 도중에 나타날 수 있는 오심, 구토, 입안 상처 등의 부작용으로 계속해서 제대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환경에 놓일 수 있다.
박연호 교수는 "환자에게 충분히 영양이 공급되지 않으면, 치료효과가 줄어들고, 환자의 건강상태를 악화시키므로 체중변화나 탈수증상 등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또 지방의 섭취를 줄이고 소화가 잘 되는 부드러운 고열량의 음식을 조금씩 자주 섭취하는 것을 권고했다.
뿐만 아니라, 췌장암 환자들은 수술 후 인슐린 분비가 현저하게 줄어들어 당뇨가 생길 수 있다. 혈액 내 혈당 수치가 높으면,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인슐린 치료를 병행해 혈당을 조절하도록 한다. 담당 의사, 영양사와의 상담을 통해 환자에게 알맞은 맞춤형 식이요법을 실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도움말: 박연호 가천의대 길병원 외과 교수, 이 성 가톨릭대 성바오로병원 외과 교수, 최동욱 성균관대의대 삼성서울병원 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