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은 정년이 따로 없는 평생직업인이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2008년 보건산업진흥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인 의사들의 약 62.5%가 은퇴 후 자원봉사나 재취업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의사들의 이같은 열정은 지난 3월 19일 `의사시니어클럽`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이날 `클럽의 설립 및 운영방안 연구`에 대해 발표한 맹광호 가톨릭대 예방의학과 명예교수(68, 사진)를 만나 `의사시니어클럽의 출범 의미`와 `은퇴 후 삶`에 대해 들어봤다.
- `의사시니어클럽`이 출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릅니다. 따라서 의사 사회에도 대학이나 공직에서 퇴직한 사람들과 개원의 생활을 그만두는 노인 의사들의 수가 점차 늘고 있죠.
대한의사협회가 파악하고 있는 의사면허 취득자 수는 2010년을 기준으로 약 10만 명 수준인데요. 65세 고령인구 비율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1만 명 정도의 노인 의사들이 존재한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들 중에는 아직 현장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 의사들도 있죠. 하지만, 대학 또는 병원에서 퇴직한 이들이 많아요. 또 65세를 넘지 않았지만 은퇴하고 진료 이외의 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의사들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구요. 중요한 건 이들 대부분이 건강하기 때문에 다른 일자리나 사회봉사를 희망한다는 겁니다.
의협은 노인 의사들의 사회활동에 대한 욕구를 수용해 유수의 외국 의사단체들처럼 우리나라에도 은퇴의사들을 위한 사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의사시니어클럽`이 만들어진 것이죠.
- 클럽을 정부가 지원하는 전문가 클럽으로 운영할 계획이신데요. 법적 근거가 있습니까.
1997년 8월에 제정되고 여러 차례 개정을 거친 `노인복지법` 제23조는 `노인사회참여지원`에 관한 조항입니다. 23조 2항에는 ‘노인 일자리 전담기관의 설치운영’에 관한 내용이 있구요. 여기에는 일자리 개발은 물론, 교육훈련을 전담할 기관을 설치, 운영하는 경우 정부에서 이를 지원해 준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실무는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맡아서 하고요. 의협이 의사시니어클럽을 만들어 운영하면, 정부의 환영을 받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클럽 활동 중 의료 취약계층을 돕는 프로그램이 포함 돼 있어 더욱 그렇죠.
- `노블레스 오블리주`정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외국에도 이러한 전문가 클럽이 존재하나요.
미국의사협회 시니어 의사 그룹(AMA-Senior Physicians Group), 영국의사협회 은퇴자 포럼(BMA-Retired Members Forum), 캐나다의사협회 e패널 복지 프로그램(CMA e-panel, Member outreach program), 일본의 닥터스 뱅크(Doctors Bank) 등은 의사시니어클럽의 좋은 롤 모델입니다. 이들은 은퇴의사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알선해 주기도 하고, 정기모임을 통해 친교와 정보를 나눠요. 또 여행이나 자원봉사 활동을 알선하기도 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수 있도록 사회 취약계층에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삶의 보람을 느끼게도 하고요. 의사시니어클럽도 이러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각종 교육 활동에 참여할 수도 있고요. 인문학, 예술분야를 배울 수도 있습니다.
- 의사시니어클럽 활동이 젊은 의사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주장도 있었지요.
의협에서 처음 의사시니어클럽 얘기가 나왔을 때 젊은 의사들이 다소 우려를 표명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은퇴를 하고도 재취업을 하면 그만큼 젊은 의사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이유겠지요. 하지만, 젊은 의사들이 기피하는 두메산골이나 급료가 낮은 공공보건의료기관, 그리고 전일제보다는 파트타임 등 은퇴의사들이 활동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클럽이 앞으로 추진할 계획을 설명해 주세요.
클럽 운영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은퇴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는 것, 그리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것 입니다. 그래야 은퇴 의사들은 연장된 수명만큼 재미와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어요. 또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의 의사들이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 클럽이 잘 운영되면 국내외 의료소외 지역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모범적인 전문직 시니어클럽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 교수님께서는 퇴임 후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요.
저는 퇴직한 지 4년째 접어들었습니다. 대학을 정년 퇴직하고 나니, 학교 강의와 연구에 대한 부담이 줄었죠. 대신 대학 때 전공했던 예방의학이나 생명의료윤리 등과 관련된 사회활동이 늘어났습니다. 지금은 대한금연학회 회장과 국가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 활동 등을 하고 있어요.
시간이 생길 때마다 수필이나 칼럼도 쓰고 있구요. 의학과 문학은 둘 다 사람을 상대로 하고, 아픔에서 출발해 궁극적으로는 치유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어요. 정년퇴직 1년 전에 수필로 등단을 했고, 그 동안 수필집과 칼럼집도 한 권씩 냈지요. 아직까지는 강의, 회의, 글쓰기 등으로 분주하게 지내고 있어서 은퇴 후 삶이 지루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 현역 시절에 비해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스스로 시간을 조정해가며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회의나 강의 요청이 들어와도 활동하기 좋은 시간에 맞춰서 정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지금은 잡지와 신문 등에 수필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데, 책을 읽으며 좋은 글감을 찾는 것도 참 재미있는 일이에요. 대학에 있을 때는 괜스레 바빴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말씀해 주세요.
좌우명이 `경천애인`(敬天愛人)이에요. 다분히 개인적인 신앙과 연관된다고 할 수 있지만, 가톨릭신자로서 하느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인생이 얼마나 더 남았을지 알 수 없지만, 인문학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올해 또 한권씩 책을 내고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