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미 (이은미내추럴한의원 원장)
‘몸과 마음은 하나다!’ 이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진료를 하면서 매일, 새삼 확인하곤 한다. 육체적 문제가 정신적 고민을 유발하고, 반대로 정신적인 갈등이 육체적 질병을 초래하는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한방의 근본 치료 원리인 기혈(氣血)의 조화란, 바로 몸과 마음의 조화를 뜻한다.
지난 여름, 나를 찾아온 32세의 여성 S씨. 결혼한 지 약 2년째 되는 젊은 새댁인데 주로 호소하는 증상은 입이 바짝바짝 마르며 식욕이 없고 소화가 안된다는 것이었다. 또 항상 피로하고 대소변 장애, 월경 장애,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얼굴에 기미가 새까맣게 끼어서 나이보다 훨씬 더 들어보였다.
원인은 많은 집안일이었다. 그녀의 시댁 식구들은 워낙 우애가 깊어 자주 식사를 함께 했는데, 이런 가족 모임의 뒤치다꺼리는 막내인 그녀 책임이었던 것. 이 무렵 그녀는 과로로 한번 자연유산을 했다. 또 유산 후에도 충분히 몸조리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집안일을 무리하게 해 생리까지 끊어졌다.
뿐만 아니라, 시댁 가족들의 지극한 배려와 관심에 부응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계속 억누르고 살아야 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화병과 과로로 인한 자궁의 기능저하가 그녀의 병을 유발했다.
화병은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는 30~50대의 가정주부에서 주로 볼 수 있고, 그 외에 직장인이나 학생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화병의 주요 원인은 배우자(주로 남편)나 시댁 식구들과의 갈등이 가장 많으며, 자녀의 비정상적인 행동이나 시험 낙방, 성격문제, 오랜 지병, 가족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 등도 영향을 미친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이 막히는 증상이 나타나며 가슴이나 목에 무언가 뭉쳐진 덩어리가 느껴진다. 또 급작스러운 화의 폭발 혹은 분노, 두통, 어지러움, 소화불량 등이 나타나며 우울, 불안, 신경질, 짜증 등이 생긴다.
화병의 자가진단법은 다음과 같다. △억울한 감정이 누적되고 해소되지 않은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된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이 막히는 증상과 무엇인가 치밀어 오르는 증상이 있다 △가슴 정중앙 부위를 누르면 심한 통증이 나타난다 △가슴이 답답하다, 무엇인가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른다, 몸이나 얼굴에 열이 오른다, 급작스럽게 화가 폭발하거나 분노 등이 나타난다 등 4가지 중에서 최소한 2가지 이상이 현저히 나타난다.
화병이 심했던 그녀는 한약 복용과 침 치료를 받았다. 약해진 심장의 기능을 강화시키고 가슴에 뭉쳐진 화기를 풀어서 전신의 기혈 소통을 좋게 해주는 치료를 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마음을 잘 다스리도록 했다. 시댁 식구를 마음 속 깊이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법을 터득해야만 그녀의 병이 비로소 차도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한바탕 펑펑 울면 속이 시원해지는 것처럼, 더 이상 화를 참고 삭이며 살지 말자. 어느 정도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것은 미덕(美德)이지만, 지나치게 억제하면 화병으로 키울 수 있다. 백해무익한 화(火), 쌓아두지 말고 바로바로 풀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