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똑...."   한국의 의료현실을 고발한 독립 다큐 영화 `하얀정글` (감독 송윤희, 32, 사진)을 보고 나면 가슴을 울리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바로 공허하게 조금씩 떨어지는 물소리다. 영화에선 천장에서 떨어지는 아주 적은 양의 물방울을 한 사람이 두 손을 뻗어 간신히 받아내고 있다. 하지만 양 손에 고인 물은 목 마른 이에겐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인간은 물을 마시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때문에 물은 우리 삶의 필수요소라고 부른다. 일생동안 온갖 병치레를 하고 살아가야 하는 한국인들에게 의료는 `물`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경제논리인 낙수효과 (落水效果, trickle down effect)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분야에 침범했다. 낙수효과는 대기업 및 부유층의 소득이 증대되면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 경기가 부양되고, 전체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하면 저소득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소득의 양극화가 해소된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경제 용어다.     그러나, 송 감독은 한국의 의료상황은 낙수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우리의 의료현실은 약육강식만이 존재하는 `하얀 정글`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물이 위에 고여도 아래도 떨어지는 일은 만무해 결국 가난할수록 의료혜택은 멀어진다는 것이다. 또 상업화돼가고 있는 의료를 이윤추구 산업으로 확고하게 제도화 시키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의료 민영화`, 혹은 선진화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송 감독은 전공의 시절 내과 파견을 갔을 때 몇 몇 가난한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하는 것을 보았다. 한 기초생활수급자 할아버지가 비싼 항생제를 아내에게 맞힐 돈이 없어 할머니를 잃고 말았다. 그녀는 사람의 목숨이 쉽게 포기되는 것을 바라 봐야만 했던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기 위해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고 양심고백한다.     `하얀정글`은 갈수록 상업화되고 있는 의료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양심고백과 그로인해 힘들게 살고 있는 저소득층의 아픈 삶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대형병원 원무과 전 직원의 증언은 놀랍다. 병원 직원들은 웃으며 환자에게 보이지 않는 협박을 한다. 또 병원비를 내야 다음 진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몇 년 전에 미납된 금액이 있으면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 환자의 생명 구제보다 병원비를 앞세우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참아내기 위해 `모든 환자의 99%는 도둑놈이다`라고 책상 앞에 붙여 놓고 일을 하기도 한다.   또 한 의사는 "의사는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돈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인데...(라고 생각하며) 나에게 정당성을 부여했달까? 그런데 만약에 이 병원이 영리법인이 된다면 잘 모르겠어.. 진짜 심각하게 여기(병원)에 있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를 고민해야 겠지"라며 생각에 잠긴다.   감독은 이러한 고민들을 의료민영화 추진 움직임 속에 날로 상업화되고 있는 의료계, 그로인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 또 이를 무심코 바라보고 있는 이들에게 던지고 있다.   지난 8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처음 실시됐던 시사회에서 송 감독을 만나 `하얀정글`에 담고 싶었던 생각들을 들어봤다. 이날 공동체 상영회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야4당과 민주노총,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최했다.   -영화를 `공동체 상영`으로만 접할 수 있다고 하는데, 개봉관을 확보하지 못한 것인가요.   아무래도 `하얀 정글`은 쿵푸팬더 등 다른 영화에 비해 대중성이 많이 떨어지는 영화예요(웃음). 또 개봉 자체도 어느 정도의 자본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단은 공동체 상영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극장 개봉을 위해서는 재정적인 후원이 필요해요. 많은 분들이 `하얀 정글`의 극장 개봉을 희망해주신다면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사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적은 것 같은데, 실망하진 않으셨나요.   그렇죠.. 보니까.. 독립다큐멘터리라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오늘 약 30~40명 정도의 관객분들께서 관람을 와 주셨어요. 하지만, 올 하반기에는 영리 의료법인에 관한 법안들이 쓰나미처럼 올라 올 예정이라 그 전에 노조 위주의 상영이 아니라 극장 개봉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정말 우리 엄마, 아빠같은 사람들, 나아가 모든 국민들이 왜 의료민영화가 되어서는 안되는지를 영화를 통해 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그녀는 영화 상영 후 모든 관객에게 `하얀정글` 포스터를 직접 나눠주며 지인들에게 관람을 권유해줄 것을 당부했다.)    -상업화된 의료현실에 대한 방대한 내용들이 `하얀정글`에 담겨 있는데요. 제작기간은 얼마나 되며, 제작에 필요한 자금은 어떻게 마련했는지요.   작품 기획에서부터 편집까지 10개월 정도 걸렸어요. 영화는 저와 남편(경기 안산시 의료생활협동조합 의사 김선웅 씨) 둘이 직접 만들었어요. 남편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등 기획을 적극적으로 도와줬어요. 특히 브레인스토밍을 함께 많이 했어요. 남편은 직장에 충실해야 했기 때문에 촬영은 제가 주로 했구요.(송 감독은 산업의학 전문의로 공장을 돌아다니며 노동자들의 건강을 돌보고 있어 비교적 남편에 비해 시간 활용이 자유롭다.) 영화를 만드는데는 약 700만원 정도 비용이 들었어요. 전부 남편과 제 월급으로 충당 했구요.       -의사가 상업적인 의료계를 고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사실, 누구나 죄책감을 가진 부분이 있을 겁니다. 어떤 분들은 노동자나 장애인에게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시죠. 저는 사회로부터 소외된 고령자분들에게 항상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왔어요. 의사로서 예전에 약값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분을 경험하기도 했구요. 그러던 중 안산의료생협에서 일하는 남편이 한 당뇨병 환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밤마다 걱정을 하는 거에요. 그 분은 당뇨병 약값이 월 1만~2만원 정도 하는데 그 돈이 없어 병원에 못가셨죠. 또 생활비가 없어 핸드폰도 몇 달동안 정지돼 있었어요. 대형병원에 가면 일단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병원에 가려고 하지 않으셨죠. 의료 소외계층이 있을 것이란 짐작은 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어요. 꼭 영화로 만들어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솟아올라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의료계 반응은 어떠한가요.   모르겠습니다... 의사선생님들 중에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 꽤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의료민영화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신데요. `하얀정글`이 어떻게 의료민영화 반대에 기여하길 바라시나요.   우선 법안이 통과되면,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이번 임시국회에는 다른 사안들이 많이 불거져 나왔기 때문에 (의료민영화 법안 통과가)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지만, 9월 정기국회 때는 아무래도 이에 대한 움직임이 크게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 이번 정권이 내년에는 선거가 있어 정신을 못차릴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의료민영화에 대해서 막연하게 반대하기보다 팩트(사실)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얀정글`을 봐서 현재 의료민영화가 어떻게 추진되고 있고, 상황이 어떠하며, 우리들이 왜 반대해야 하는 지 등을 알 수 있도록 교과서적인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더 재밌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아쉬움이 남네요.(웃음)   -영화에서 낙수효과를 표현한 장면이 인상깊습니다.   낙수효과는 경제적으로 상위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물을 모으고, 그게 넘쳐 흐르면 가난한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먹으면 된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제 그 물을 받아 먹는 손은 안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죠. 주먹을 불끈 쥐어서 천장을 부셔야 한다고요. 이 장면은 국민들에게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이제 무상의료가 필요하다`는 상징으로 볼 수 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관객의 반응은요.   가장 인상적인 관객은 제 이모였어요. 이모는 성남에서 영어교사를 하다가 퇴직한, 중산층 이상의 부유한 사람이에요. 영화를 본 후 이모는 저에게 "수고했다"라는 말 대신에 "정말 많이 알게됐다"라고 얘기했죠. 그런데 그 대답은 제가 영화를 제작하게 된 목적과 가장 부합하는 대답이었어요. 왜냐면 중산층은 의료소외계층이나 의료민영화에 대해 잘 모르고, 잘 몰라도 잘 살아갈 수 있는 계층이기 때문이에요. 또 행여나 영리법인이나 의료민영화가 되더라도 그냥 민간의료보험에 들면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죠. 하지만 중병에 걸리게 되면 상황은 달라요. 그들 또한 경제적으로 내려앉게 되죠. 중산층이 의료계의 상업적인 모습이나 의료민영화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 자체가 사회 변화를 이룰 수 있는 첫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대중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송 감독의 영화를 한국의 `식코`(Sicko, 마이클 무어 감독이 미국 의료보장 제도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부르는데, 마음에 드나요.   오늘 시사회에서도 여러분들이 축사에서 하얀정글에 관해 이야기 하실 때 `한국의 식코`라는 표현을 쓰셨어요. 대중들에게 영화를 알리기 위해서는 적합한 수식어이긴 하지만, `하얀정글`에 대해 조금 더 많이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영화 제작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아무래도 섭외가 잘 안됐을 때였죠. 정확하게 기억 나지는 않지만, 인맥을 통해서 여러명을 접촉했어요. 힘들었죠. 의료민영화에 반대하거나, 상업화된 의료계를 비판할 수 있고, 소외계층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진, 생각이 열려있는 분들을 찾아서 말씀을 들으려 노력했어요.   -영화를 제작하면서 의료의 상업화 현상을 절실히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문자 오는 것도 놀랐구요. (영화에선 병원이 매일 의사들에게 문자로 병원을 방문한 외래 환자 수를 알리고, 의사들의 수익 실적을 일등부터 꼴등까지 발표하는 장면이 있다.) 대학병원끼리 서로 실적 비교하는 것도 깜짝 놀랐습니다. 진짜 이렇구나.. 사실 모든 의사들이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개원가 의사들은 모르는 내용이었죠.   -베스트 장면을 뽑아 보신다면.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밥가 장면`이죠. 밥가 부르면서 하늘이 보이는 장면이요. 이 영화의 가장 상위 주제라고 할 수 있어요. 먹고 살기 위해 연대해야 하고 밥은 혼자 못 먹고 같이 먹어야 하는 것처럼 건강도 그렇다는 것이죠.   -일생에서 `하얀정글`은 어떻게 남을 것 같은가요.   살이 한 5kg정도가 빠질 만큼, 힘들었다고 기억될 것 같아요. 실제로 영화 작업을 하면서 살이 빠졌다 쪘다 했는데, 체중이 줄긴 했어요.(웃음)   -앞으로의 일정은.   영화관 상영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구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한동안은 탈진 상태라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요. 우선 마음을 추스리고 일상으로 돌아가서 관객의 반응을 살피게 되겠죠. 하얀정글이 제작된 것처럼 다음에 또 제 마음이 움직여진다면 차기작으로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얀 정글`의 공동체 상영을 원할 경우, `블로그 하얀정글`(http://blog.daum.net/whitejungle)에 있는 상영신청서를 작성해 보내면 된다.
최종편집: 2025-07-31 05: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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