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茶山)길’은 중앙선 도심(陶深)역에서 시작해 다산의 생가가 있는 ‘다산유적지’까지 14.5Km의 구간을 말한다. 가파른 산길이 없이 이어진 길은 무리 없이 걷기에는 딱 좋다. 그 가운데서도 팔당역에서 팔당호를 지나 다산유적지까지 가는 구간은 아름다운 경관이 일품이다.
중앙선 팔당역은 1939년 4월 1일 영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68년이 지난 2007년 12월 26일 저녁 안동발 청량리행 #1608 무궁화호 열차가 떠난 이후로 이곳으로 더 이상 열차는 지나가지 않는다.
이제 팔당역은 새로운 역사(驛舍)에 간판을 넘겼고 낡은 역사는 ‘등록문화재 제295호 남양주 팔당역’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다. 그리고 3년이 더 지난 2010년 9월 남양주시는 중앙선 복선화로 남겨진 폐철길을 ‘트레일 코스’로 개방했다.
옛 팔당역을 보고 싶었지만 화물열차가 지나가는 등 안전상의 이유로 현재는 들어갈 수 없었다. 남양주 역사박물관을 지나 조개울마을 팔당유원지에서 왼편으로 난 좁은 길을 조금만 올라가면 폐철길 구간에 들어설 수 있다.
낡은 철로 위에서 도마뱀 한 마리가 선로와 꼭 닮은 모습으로 아침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팔당댐이 있는 봉안터널까지는 한강을 조망하면서 걸을 수 있다. 폐쇄되기 전 옛 중앙선을 한 번이라도 이용했던 사람들이라면 이 길은 그 때의 추억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가는 길 중간 중간 벤치가 놓여있는 조망대에는 다산 선생의 시가 눈에 띈다. 어쩌면 가장 단조로운 구간일 수도 있지만 바쁘지 않게 걸으며 조용히 사색에 빠지기에도 좋은 길이다. 잘박잘박 거리는 자갈, 조용히 흘러 지나가는 한강, 저 멀리 이어진 철길은 나도 모르는 어느 때를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다다른 봉안터널은 이 코스의 확실한 전환점이 된다. 마치 연극의 1막과 2막 사이의 암전처럼 터널의 어둠은 앞으로 펼쳐질 경관을 더욱 놀랍도록 만들어준다. 마치 누군가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기를 의도한 것처럼 말이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한강은 또 다른 모습이다. 마치 강이 아니라 커다란 호수와 같은 모습으로 살짝 단풍이 든 나지막한 산자락을 그대로 비춘다.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면 왼편 숲길 입구에 카페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이 보인다. 그 길을 지나 다시 중앙선 철길과 만나는 곳에서 비석골이라 불리는 조안리로 들어설 수 있다. 한강을 품에 안듯 산과 물이 어우러진 모습이 고요한 풍경을 연출한다.
조그마한 선착장에는 이제는 다니지 않는 돛배가 덩그러니 서 있고 그 앞으로 조그만 고깃배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토끼섬’이라고 불리는 조그만 섬이 보이는데, 모양이 토끼 같다는 것인지 섬에 토끼가 살았다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토끼섬을 지나 조그만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다산 유적지가 있는 조안리에 도착한다. 다산 정약용이 나서 자란 곳이기도 하고 말년에 귀양에서 다시 돌아와 여생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유적지 안에는 그의 생가인 여유당과 그의 업적을 살필 수 있는 유물관과 문학관이 있고 뒷산에는 부인과 함께 묻힌 묘소가 있다. 또 그 옆으로는 실학박물관이 있어 정약용을 포함한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사상과 업적을 엿볼 수 있다.
다산길은 중앙선 도심역에서 바로 출발할 수도 있고 운길산역에서 56번 버스를 타고 다산 유적지까지 와서 출발 할 수도 있다.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용산역에서 용문행 전철을 타고 40분 정도면 도심역에 도착할 수 있다.
글 유정우 기자 spica@watcherdaily.com 사진 최원우 기자 naxor@watcher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