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을 찾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러다보니 한가로이 숲을 거닐며 하늘의 구름을 보는 여유는 고사하고 ‘앞 사람 엉덩이 보며 정상 오르는 길 걸음 재촉하기도 바쁘다’는 푸념도 종종 들려온다.   그 엉덩이 보며 오르는 대표적인 산이 있다면 바로 ‘북한산’이다.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1994년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산이다. 적게 잡아도 해마다 1천 만 명 가까운 사람이 몰려든다.     하루에 3만명 꼴이다. 탐방객으로만 치자면 20개 국립공원 가운데 최고다. 때문에 많은 탐방객으로 인해 몸살을 앓는 곳이기도 하다. 북한산국립공원은 법정 탐방로의 2배가 넘는 샛길로 인해 600개 이상으로 조각나기도 했다.   그 가운데서도 예외인 곳은 있다. 면적 단위로 통제되면서 야생 동·식물의 마지막 피난처이자 자연성이 남아 있는 곳, 길을 걸으며 편안한 사색을 할 수 있는 곳, 바로 ‘우이령’(牛耳嶺)이다.     일명 ‘소귀고개’라고 불리는 우이령길은 양주와 서울을 잇는 소로(小路)였다. 한국전쟁 때 미군 공병부대가 작전도로를 개설하면서 차량통행이 가능해졌다. 행인지 불행인지 1968년 1·21사태(일명 김신조 사건)로 이 길은 사람이 들지 못하게 되었다.   사건 이후 1969년부터 이 지역에는 군부대와 전투경찰대가 주둔하면서 40년 가까이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됐고, 결과적으로는 생태적으로 북한산국립공원 내에서 가장 잘 보존된 지역으로 남을 수 있었다.     물론 그동안 개발 위협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4년 서울시와 양주시는 우이령길을 2차선 도로로 확·포장하기위해 예산까지 책정했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시민들의 저항으로 결국 무산됐고 현재의 모습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시민들의 개방 요구에 따라, 국립공원관리공단과 환경단체 등 시민단체간의 토론과 검토 끝에 2009년 7월 개방되었다. 하지만 생태계 보존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탐방객은 하루 1천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길은 바쁘지 않다. 느리고 한가롭다. 위로 난 가파른 길과는 다르게 누군가 꼭대기에 오르라고 재촉하지도 않는다. 옆으로 편안하게 난 길은 위로 오르는 데만 익숙해 허둥대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편안히 숨을 고르라고 인도한다.   그렇게 천천히 길을 가다보면 비로소 숲이 보인다. 길가에 길게 늘어선 국수나무는 숲을 지키는 수문장이다. 이제는 자연 천이(遷移)의 맨 마지막 과정에 들어선 숲에는 신갈나무와 떡갈나무가 무성하다.     우이령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오봉이 높게 서 있고 그 아래로 ‘석굴암(石窟庵)’으로 알려진 ‘덕암사(德岩寺)’가 보인다. 덕암사는 신라 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원효대사가 신라의 삼국통일을 기원하며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 곳이다.       석굴암을 나와 다시 길 위에 서면 길은 우리에게 ‘신을 벗으라’고 주문한다. 그래, 여기는 철저히 느린 곳이다. 바람소리와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무 잎사귀를 관통하는 햇살을 느낄 수도 있다.     지난 새벽 비바람에 한 순간 잎들이 진 숲을 지나는 바람에 낙엽이 사르륵하며 산등성이를 쓸고 간다. 그 느림은 오감을 자극하며 천천히 주변을 보게 한다. 그리고 어느덧 그 느림은 길 위에 선 ‘나’를 관조하게 하고 나는 스스로를 관망한다.         우이령 정상의 대전차 장애물을 지나니 돌 틈 사이로 다람쥐 한 마리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정상 너머로는 아직 단풍이 제법 남아있는 것이 밤사이 비바람을 용케 견뎌낸 모양이다. 쉬엄쉬엄 천천히 걷다보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장소가 나온다. 우이동이다.     우이령길은 수식이 불가능할 정도의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을 가진 길도 아니고 정복해야 할 무엇이 있는 어렵고 험한 길도 아니다. 오히려 평범하다. 하지만 조용히 걷는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바쁘게 길을 재촉할 필요도 없이 맨발로 흙을 밟으며 천천히 숲을 즐기면 된다.    그래서 이 길을 갈 때 굳은 결심이나 각오 따위도 필요 없다. 앞골 사람 뒷골 마실가듯 편안히 걸으면 그만이다.   우이령길을 걷기위해서는 예약이 필요하다. 언급했듯 탐방객은 하루 1천명으로 제한한다. 경기 양주시 교현리 쪽으로 500명, 서울 도봉구 우이동 쪽으로 500명이다.   인터넷으로 북한산국립공원 사이트(http://ecotour.knps.or.kr/reservation/)에서 예약할 수 있다. 예약기간은 탐방 예정일로부터 15일 전 오전 10시부터 하루 전 오후 5시까지, 1인당 4명까지 예약할 수 있다. 오후 2시 이전에 탐방안내소에 도착해야 입장할 수 있으며 입장료는 없다.   글 유정우 기자 spica@watcherdaily.com  사진 최원우 기자 naxor@watcherdaily.com
최종편집: 2025-07-05 01: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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