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대(墩臺)란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토 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두는 초소를 말한다. 강화도에는 유난히 돈대와 진(鎭)이 많다. 섬을 둘러싸고 52개의 돈대와 진이 있다. 강화도가 서울의 주요 방어기지인 동시에 외적이 침입했을 때 왕실이 피난하는 제일의 후보지였기 때문이다.
고려 시대 몽고군과의 최후의 항쟁이 있었던 곳이고, 조선 시대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을 당하기도 했던 곳이며, 조선 후기 수많은 외세의 도전을 한 몸에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출발지인 갑곶돈대로 향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도보로 약 30분 거리인데 버스를 타도 좋고 그냥 걸어가도 된다. 이왕이면 걸으면 좋지만 버스를 권하고 싶다. 인도와 차도가 분리되지 않은 탓에 걷기에는 조금 위험하기 때문이다.
갑곶돈대에서 시작하는 이 길의 다른 이름은 ‘강화외성길’이다. 강화 외성은 고려 제23대 고종이 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후 고종 20년(1233년)에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해안 방어를 목적으로 적북돈대로부터 염하(鹽河)를 따라 초지진까지 23㎞에 걸쳐 축조된 성이다. 현재는 석축이 대부분 붕괴되어 토성으로 남아 있다.
도로를 따라 조성된 자전거 길과 도보길이 겹치는 탓에 처음에는 이 길의 모습을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조금만 더 걸어 강화외성으로 들어선 순간 그런 오해는 말끔히 사라진다. 염하를 끼고 이어진 길은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든다.
그리고 도착하는 곳은 더리미 선착장이다. ‘더리미’라는 이름은 ‘작은 마을들이 하나씩 더해지면서 새로운 마을을 이루게 됐다’는 뜻에서 유래한다. 예전에는 세곡선이 드나들던 곳으로 그 규모가 꽤나 컸었다. 계절마다 달리 올라오던 물고기들로 때가 되면 사람들로 붐볐다고 전해진다. 40여 년 전 다리가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금은 그저 한적하고 조용한 어촌이다. 아직 들어오는 배는 보이지 않고 간간히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강태공들만 보인다.
더리미 선착장을 지나 염하를 따라 한참 걷다가 보면 용진진이 나온다. 용진진을 지나 조금 더 걷는데 표지판이 이상한 곳을 가리킨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좁은 소로로 들어서면 조용한 산길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산길을 따라 도착하는 곳이 용당돈대다.
돈대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어도 일단 돈대 안으로 들어서면 그 목적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바깥에서는 높은 성벽이지만 안쪽에서 본다면 밖을 조망하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그 만큼 공격과 방어가 용이한 곳이다.
그리고 다시 염하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화도돈대가 나오고 다시 얼마간 걸으면 오두돈대에 도착할 수 있다. 오두돈대는 해안 돈대의 전형을 보여주는데 돈대가 있는 곳의 모양이 자라를 닮았다고 해서 오두(鼇頭)라고 불린다.
오두돈대를 나와 1시간 정도 걷다보면 광성보와 만나는데 오두돈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사실 코스가 길다보니 조금 더 편하게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버스를 탈까 생각했지만 버스를 타려면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니 차라리 걷는 편이 더 빨랐다.
이후 광성보와 덕진진, 그리고 초지진은 모두 구한말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덕진진은 고려 시대에 강화해협을 지키던 외성의 요충지로 숙종 5년(1679)에 용두돈대와 덕진돈대를 거느리고 덕진포대와 남장포대를 관할함으로써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로 알려져 있었다.
광성보는 1871년 신미양요 때 조선 군대가 미국 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벌인 곳이다. 당시 미국 군대는 이곳을 점령한 후, 건물에 몸을 숨겨서 적과 싸울 수 있도록 쌓았던 낮은 담을 모두 파괴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의 군대가 덕진진을 거쳐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물리친 곳이기도 하다.
덕진진과 덕진포대를 지나 조금 더 걸으면 이 행로의 마지막인 ‘초지진’에 이른다. 우리나라가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철저한 굴욕이기도 했던 ‘강화도조약’을 맺게 된 시발점인 ‘운요호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지금도 초지진의 성벽과 노송에 당시의 포탄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그때를 기억하게 한다.
이 길은 가벼운 마음으로 걸을 수도 있지만 일단 코스로 들어서면 되도록 완주를 생각해야 한다. 코스가 긴 탓에 중간에 되돌아가기도 어렵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자 해도 버스나 택시가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또, 걷기 구간에 자리잡은 문화재와 유적지 입장이 모두 무료는 아니다. 갑곶돈대를 비롯한 광성보와 덕진진, 초지진은 700원에서 1천 100원 가량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글 유정우 기자 spica@watcherdaily.com 사진 최원우 기자 naxor@watcher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