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낙산은 해발 125m에 불과해 산이라기보다는 야트막한 언덕에 가깝다.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해발 129m)과 높이가 비슷해 한국의 몽마르트르 언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서울의 역사에서 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다.
역사적으로 낙산은 북악산, 인왕산, 남산과 함께 도성을 둘러싼 내사산(內四山)에서 좌(左)청룡에 해당하는 산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와 1960년대 이후의 개발 과정을 거치면서 그 역사성은 거의 사라지고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북악산에서 이어지는 서울 성곽은 혜화문을 거쳐 낙산으로 이어지지만 혜화문과 낙산을 관통하는 도로로 인해 길이 끊어진 상태다. 혜화문을 거쳐 낙산으로 들어섰다. 많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성곽은 여전히 남아있고 일부 구간은 복원 공사중이다.
성곽을 따라 좌우 양쪽으로는 서울에 농촌인구가 몰리면서 지어진 달동네 집들이 길게 늘어서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때의 모습을 가진 집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꼬불꼬불 좁게 이어진 미로와 같은 골목길에는 간판이며 자동차며 가판이 무질서하게 서있다.
이런 풍경은 낙산공원을 지나 동대문(흥인지문)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남산으로 이어졌을 성곽은 동대문에서 토막난 상태로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 동대문시장의 복잡한 쇼핑몰 뒤편의 청계천으로 향했다.
복원을 둘러싼 논란이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고 있지만, 현재의 청계천은 깔끔하게 정비된 도심 하천공원이다. 서울이 조선의 수도로 정해지기 전 청계천은 자연 상태의 하천이었다. 비가 적은 봄, 가을은 대부분 말라있는 건천 (乾川)이었지만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철에는 조금만 비가 와도 물이 넘쳐 홍수가 날 정도로 유량의 변화가 심했다.
때문에 조선 왕조는 개국 초기에 청계천을 정비하는데 많은 힘을 쏟았다. 청계천은 1773년(영조 49년) 개천 정비를 위한 공역을 통해 그 모습이 완성됐다.
그리고 청계천은 일제 강점기에 다시 한 번 변화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조선 500년 동안 불리던 ‘개천’이라는 이름 대신에 ‘청계천’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일제는 1918년부터 청계천과 일부 지천에 대하여 바닥을 준설하고 양안에 석축을 새로 쌓았다.
1925년부터는 지금의 종로구 신교동에서 도렴동까지, 즉 청계천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백운동천을 비롯하여 옥류동천, 사직동천 등을 복개하고 `ㅁ`형의 하수관을 만들어 실개천의 모습을 없앴다.
청계천은 그렇게 일제에 의해 방치되어 왔다. 그러는 사이 양 옆으로는 판자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45년 해방을 맞았을 때 청계천은 토사와 쓰레기가 하천 바닥을 뒤덮었고 천변을 따라 어지럽게 늘어선 판자집들과 거기에서 쏟아지는 오수로 심하게 오염되어 있었다.
그 모습은 6.25전쟁이 끝난 후까지 이어졌다. 그 시절 ‘아내 없이는 살아도 고무장화 없이는 못 살 동네’로 불릴 만큼 청계천은 낡고 허름하고, 골목길은 언제나 질척였던, 날품 팔아 근근이 하루를 버텼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낡고 궁색했던 그 모습은 1957년 시작된 청계천 복개 공사로 사라지고 그 주변에는 현대식 상가가 들어섰다. 그곳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은 신림동, 봉천동, 상계동, 성남 태평동 등으로 강제이주 당해야 했다.
그리고 하늘을 달리는 고가(高架)도로가 개발의 상징처럼 우뚝 솟았다. 하지만 세월은 그 모습을 또 변하게 했다. 어느 순간 청계천은 서울에서 가장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주변을 낙후시키고, 서울의 이미지를 해치는 주범이 됐다.
한때 `번영 서울`의 자랑처럼 여겨지던 청계 고가의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는 근대화·산업화의 상징이 아니라 개발시대의 무지가 낳은 흉물로 전락했다. 또 다시 청계천은 변했다. 고가는 사라지고, 복개되어 숨었던 물길이 다시 드러났다.
그렇게 드러난 청계천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처음의 자연하천이었던 모습도 아니고 조선 왕조가 치수의 상징처럼 만들었던 모습도 아니었다. 판잣집이 길게 이어졌던 그 모습은 더더욱 아니다.
이제는 한강으로 향하는 사이사이의 다리에서 청계천이 가진 역사의 흔적들을 확인 할 수 있다. 아무래도 도심을 관통하는 코스이다 보니 주변으로 볼 것들이 많다. 청계천의 양 옆으로는 다리 하나를 지날 때마다 각각의 특색을 가진 시장들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황학동 벼룩시장은 예전의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곳 가운데 하나다. 그 시장에 추억이 있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잠시나마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다. 이제는 사무실에서 사라진 타자기며, 비디오 플레이어, 비디오 카메라가 처음 나왔을 무렵의 엄청나게 큰 가정용 캠코더 등 잊혀진 물건들을 다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바로 하천 생태가 아닐까 한다. 물론 자연복원이 아닌 탓에 한계는 있지만 갈대나 갯버들 같은 수변 식물들이 자리를 잡은 듯 하고 그 사이로 비둘기가 아닌 철새들을 종종 볼 수 있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다소 긴 코스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걸을 수 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문화와 역사의 흔적들을 확인 할 수 있고 도심에서 마주치는 철새들은 걷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