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면 다음해 정부 예산안의 국회 통과를 둘러싸고 여야간 충돌이 벌어지고 진통 끝에 단독 처리되거나, 회기를 넘겨 처리되곤 했다. 정상적으로 처리된 경우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8일 여당은 야당의 저지를 무릅쓰고, 내년도 예산안을 단독 처리했다. 여야 의원들 사이에 험한 말과 주먹이 오갔고, 부끄러운 국회 모습은 트위터로 실시간 중계됐다. 야당은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날치기 폭거’라며 거리로 나섰고, 정국은 얼어붙었다.
예산안 처리 과정도 문제지만, 예산안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정부가 약속하거나 중점 추진하기로 했던 복지예산이 1조 1천억원이나 삭감됐다.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지원 사업, 빈곤층 생계급여 예산을 비롯해 한나라당과 정부가 그렇게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영유아 양육수당도 2천 743억 원이 삭감됐다.
반면, 그 피 튀기던 예산안 단독처리 와중에 이른바 ‘형님·실세예산’은 2천 417억원 넘게 증액됐고 사회적 논란의 와중에 합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4대강 사업’ 예산은 원안 통과로 봐도 무관할 정도의 삭감만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내용이 알려지자 여론은 급격히 나빠졌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조차 이번 예산안 단독처리에 대한 비판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를 의식한 듯 정부는 복지예산은 사상 최대라며 연일 국민들을 설득하기에 바쁘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2일 보건복지부의 새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정부의 복지예산은 매년 늘어나고 있으며, 내년 복지예산은 역대 최대”라며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수준에 들어가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정부의 `역대 최대 복지예산` 주장은 액수로만 따지면 맞는 말이다. 올해 복지예산은 81조원이었고 내년도 예산은 86조원으로 5조 원가량이 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대통령의 말처럼 우리나라를 복지국가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단적인 예가, 결식아동의 급식지원 예산이 ‘0’원, 전액 삭감됐다. 이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애초에 지방정부에 이양된 사업이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돌려 생각해보자. 애초 한시적일지라도 중앙정부가 예산을 배정, 집행했다는 것은 지방정부의 재정 형편상 단독으로 이 사업을 추진하기가 어려웠음을 반증하는 것 아닌가.
실제로 참여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16개 광역지자체 가운데 절반 정도만 국비지원을 합한 규모인 예전 수준까지 예산을 배정했고, 나머지는 예산이 깎였다. 문제는 예년 수준이라고 해도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아이들까지 급식지원을 확대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또 인플레까지 고려하면 기존에 지원 받은 아이들 역시 사실상 금액이 줄어든 셈이다. 지자체에 따라 다르지만 급식비로 지원되는 금액은 1인당 3천 5백원 정도다. 이 돈으로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뭘까? 분식집 라면과 김밥이 고작일 것이다.
적어도 배는 곯게 하지 않았으니 정부의 할 도리는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예산을 더 증액해서 지방정부와 함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챙겨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정말 비정하게도 내년도 급식지원 예산은 ‘0’원이다. 이 와중에 지자체 가운데 가장 재정 사정이 좋은 서울시에서는 무상급식 논란이 뜨겁다.
수조원의 예산을 토목 사업에 쏟아 부으면서 정부가 복지예산의 규모만을 놓고- 이것도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역대 최고라며 ‘복지국가’를 외치는 것은 왠지 낯 뜨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