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이라는 단어만큼 사람들에게 쉽고도 어려운 말이 있을까? 대개 `나눔`을 권유받고 굳이 거부하지 않지만, 스스로 나서서 행동하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 간혹 신문이나 TV에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그들에게 뭔가 특별한 유전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그들은 자신이 ‘남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가진 것이 특별히 많아서 나누 것도 아니고 시간이 남아서 함께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도 그들은 한결같이 ‘주고 왔다’기 보다 ‘오히려 더 받고 왔다’고 말한다.   대한한방의료봉사단(KOMSTA) 단원들도 역시 그런 사람들이다. 한 번 나가면 열흘, 젊은 한의사들은 그렇게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기꺼이 부담하면서 그들의 손길이 필요한 세계 오지를 돌았다. 1993년 2월 네팔 가우리샹카에서부터 시작한 한방의료봉사는 17년이 지나도록 계속됐다.   최광호 사진작가가 이들의 긴 여정을 담은 기록들이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 갤러리에 전시됐다. 최근 101번째 의료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강동철(48) KOMSTA 단장을 전시회장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들의 여정을 ‘봉사’가 아닌 `동행(同行)`이라고 표현했다. 그들의 여정은 몸도 마음도 함께였고 그것을 통해 세상은 더불어 사는 곳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긴 여정에 대한 소회를 물었을 때 그는 “더불어 행복했다”며 미소 지었다. - 의료봉사가 100회 넘었습니다. 돌아보니 그 여정이 어떻던가요?   사실은 이 활동이 100번 넘게 지속되기까지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여러 가지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으니까요. 정말로 절망적인 부분도 있었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보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행사 기간 중에 저희 단원 한 분이 과로로 순직을 하신 일도 있었고, 봉사를 간 곳에 총탄과 포탄이 떨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무장 반군에 사로잡혀 단원 전체가 국경을 못 넘고 억류되어 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역경을 딛고 100회를 넘어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새삼스럽게 ‘100’이라는 숫자를 보니까 정말 많이 힘든 시기를 겪고 어느 정도 넘어선 그런 나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또 아직도 부족한 마음도 있어서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도 생깁니다.   - 한방의료봉사에 대한 현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특별히 거부감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워낙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그런 지역에 갔기 때문에 침이든, 약이든, (치료행위가)아프든 안 아프든, 현지 주민들은 오로지 자기 아픈 것을 치료해 주는 것에 대해서 고마워 해 주셨습니다. 낯선 치료행위에 대한 거부감도 덜했고요. 일례로 외국인들 대부분이 침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방은 손을 잡고 진맥을 해서 마음과 마음이 서로 전해지는 따듯함이 있기 때문에 저희들이 침을 놓는다든지 약을 준다든지 했을 때 환자들에게 우리의 마음이 잘 전달된 것 같습니다.   - 현지의 사정은 어떻던가요?   해외에 나가보면 정말 한 끼 먹는 것도 힘든 곳이 많습니다. 또 의료 활동에 제약이 많은 곳도 있습니다. 타지키스탄에 두산베라는 아프가니스탄과 접경 지역이 있습니다. 밤이 되면 아프간 반군들이 넘어와서 총도 쏘고 폭탄도 터뜨리고 했던 긴박한 곳이었습니다. 다행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지나 않을지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또 러시아에 가서 2차 대전 때 지은 일본군 막사에서 사는 사람들을 진료한 적도 있습니다. 영하 40도가 넘는 혹한에 난방시설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분들을 진료할 때 정말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말을 하자면 끝이 없네요.    - ‘나눔’은 주는 쪽의 기쁨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다녀본 느낌을 듣고 싶습니다.   저희가 개인의 시간을 빼고 경비를 들여서 의료봉사를 가지만, 저희들이 주고 오면서 얻는 기쁨이 사실 더 큽니다. 그 맛 때문에 저희들이 봉사를 하는 겁니다. 그게 또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봉사에서 얻는 기쁨을 못 잊는 중독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한번 의료봉사를 다녀오면 국내에서 진료를 할 때 새로운 기분을 가지고 조금 더 열심히 해야겠다 하는 마음도 가지게 됩니다.   - 주변에 의료봉사 활동을 많이 권하시나요?   많이 하죠. 하지만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망설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어보면 좋다고는 하는데 경비라든지 시간을 내는 부분들이 좀 걸림돌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료실을 비우고 돈을 들여서 나가는 것에 비해서 실제로 얻는 것이 더 많다고 이야기하면서 설득합니다. 한 번 경험해 보라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데, 항상 주고 오지만 올 때는 정말 더 큰 것을 얻어오는 그런 느낌들은 실제로 갔다 오면 분명히 느낄 수가 있거든요. 사실 저희들이 해외 봉사만 가는 것이 아니고 국내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정 또 새터민들 등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하거든요. - 해외봉사 활동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한데요?   처음에는 저도 병원을 비우고 해외에 가면 수입도 줄어들고 해서 걱정을 했습니다. 또 봉사활동 경비도 자기부담이고. 때문에 집에서 싫어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했는데, 의외로 처음 의료봉사를 다녀온 것에 대해 집사람이나 식구들이 오히려 더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게 가족이구나’ 또 ‘봉사라는게 정말 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좋은 일이구나’하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는 여력이 되는대로 시간이 나는 대로 많이 나가게 됐습니다.   - 200회 300회 까지도 계속 함께할 생각인가요? 또 어디로 나가실 건가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봉사단장의 임기가 3년인데 임기를 마친 이후에 백의종군할 생각입니다. 평생 의사로서 봉사라는 것은 하나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의사가 당연히 봉사를 해야 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거든요. 앞으로 봉사활동을 펼칠 곳이 많은데, 현재 확정된 것은 5월 말이나 6월 초 쯤 서울시 한의사협회와 같이 동티모르에 가기로 했고, 필리핀과 미얀마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현지의 사정이 어떤지 알아보고 있는 단계인데 가능하면 적도기니에도 갈 생각입니다. 사실 저희들이 여력이 없어서 못가는 것이지, 갈 곳이 없어서 못가는 것은 아닙니다.   - 마지막으로 100회를 넘기기 까지 함께한 단원들과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해 주실 말씀이 있다면요?   해외봉사단원들은 고통과 즐거움을 항상 같이하면서 서로의 생각이나 느낌, 봉사를 하는 근본적인 의미에 대한 어떤 교감이 생긴 것 같습니다. 같은 뜻을 가진 동지들이기 때문에 크게 말을 하지 않아도 이제 서로 눈빛만 봐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정도가 된 것입니다. 서로를 믿고 잘 해 나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저희 단원들이 항상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원들의 희생과 봉사정신 그리고 봉사에 대한 확고한 신념, 열정, 이런 것들이 있어서 저희들이 앞으로 갈 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점에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또 저희들을 든든하게 후원해 주시는 여러 분들이 있기 때문에 저희들이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단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저희 사업은 지속될 것입니다. 이 일은 저희 혼자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도움을 주신 후원회분들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 보건복지부 한방정책관실 등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항상 환자 한 분 한 분 정말 고통 받는, 또 의료에서 소외된 그런 분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 할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최종편집: 2025-05-01 22: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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