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면서 이 만큼 가깝고도 먼 산이 있을까? 모두들 그 곳은 한 번쯤 가 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물어보면 그 곳을 가 본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 됐거나, 가 봤겠거니 생각만 하고 정작 가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바로 ‘남산’이다.
2005년 5월 남산순환로의 차량 통행을 제한한 이후부터 산은 우리에게 더욱 가까워 졌다. 사실 남산을 기억하자면 개인적으로 소월길의 벚꽃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겨울의 숲으로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남대문시장에서 출발해 백범공원을 지나 남산 도서관 앞에서 남산순환로로 들어섰다. 꼬불꼬불 좁게 난 흙길이 아닌 것이 조금 아쉽지만 잘 정돈된 아스팔트 길을 차가 아닌 사람에게 양보했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 길을 따라 한 시간 가량 오르면 한때 ‘남산타워’로 불리던 ‘N서울타워’(솔직히 바뀐 이름만 놓고 본다면 개명의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남산타워나, 서울타워나..)가 보인다. 그 밑으로 길게 이어진 담장은 서울 성곽으로, 올라온 방향으로는 숭례문과 마주치고, 내려가는 방향으로는 흥인지문과 마주치지만 남산에서조차 성곽은 드문드문 끊어진다.
팔각정과 N서울타워 아래 지금은 사라졌지만 봉수대 터가 보이고 그 조금 위로 서울의 중심점이 있다. 원래 인사동 하나로빌딩 지하에 1896년에 설치한 표지돌이 있지만, 2009년 GPS 측량을 통해 확인한 결과 중심점은 남산으로 나타났다. 강남 개발이 되면서 서울이 커진 결과다.
잠시 일별하고 다시 순환로를 따라 국립극장으로 내려가 도심으로 나왔다. 지하철 동대입구역을 지나 충무로역으로 방향을 틀어 필동 한옥마을로 향했다. 공부하는 선비들이 많아 동네이름도 붓(筆)이라고 지은 곳이다.
한옥마을은 서울의 팔대가(八大家) 중 하나였던 박영효 가옥(朴泳孝 家屋 )으로부터 일반평민의 집에 이르기까지 전통한옥(傳統韓屋) 다섯 채를 옮겨 놓은 곳으로 조선시대 마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근대 한옥의 향기와 이야기가 가득한 곳, 성북동 옛집 순례길
한옥마을을 나와 충무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성북동으로 향했다. 남산 한옥마을의 한옥이 조선시대의 모습이라면 성북동의 한옥은 근현대의 것이다. 한성대입구역에서 성북동길을 따라 성북동주민센터를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칼국수집 골목 안쪽으로 조그마한 한옥 하나를 만난다.
최순우 옛집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을 역임했던 혜곡 최순우 선생이 말년을 보냈던 곳으로 그의 건축미학이 이 집에 잘 반영되어있다. 193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근대 한옥의 전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최순우 옛집은 현재 겨울 휴관에 들어간 상태다. 골목을 나와 선잠단지로 향했다. 선잠단은 조선시대 왕비들이 누에의 신인 ‘선잠(先蠶)’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단으로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다.
선잠단을 지나 찾아간 곳은 성락원이다. 성락원(城樂園)은 서울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조선시대 별장으로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沈相應)의 별장이었고,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이 35년간 별궁(別宮)으로 사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유적으로 그 구조와 형태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문화재이기는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은 현재 사유지로 출입이 제한되어있다.
성락원을 지나 길상사로 향했다. 길상사는 1960~80년대 3대 요정(삼청각, 대원각, 청원각) 가운데 하나인 대원각이었다. 대원각의 소유주였던 길상화 김영한(1916~1999)씨가 1987년부터 95년까지 시주를 청한 끝에 법정스님이 이를 받아들여 1997년 사찰로 탈바꿈하게 됐다.
월북 시인 백석의 연인으로도 유명한 김영한씨는 진향이라는 이름의 기생으로 백석을 만나 자야(子夜)라는 아명으로 불렸다. 짧은 기간 사랑을 나누고 헤어진 후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았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 길상사에 또 주목할 것이 있다면 바로 입구에 서있는 작은 관세음보살상이다. 모습이 여타의 사찰에서 보는 관음상과 많이 다른데 마치 성모 마리아를 닮아있다. 우연이 아닌 것이 이 조각상을 만든 사람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진 최종태 조각가이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이 직접 부탁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평소 불교의 조각을 해 보고 싶었던 조각가가 부탁을 받자마자 하루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길상사를 한바퀴 돌아 삼청터널 방향으로 대사관길을 걷고, 다시 성북동길로 나왔다. 가파르게 이어진 좁은 골목길을 올라 만해 한용운 선생이 거처했던 ‘심우장’(尋牛莊)으로 향했다.
조선총독부와 마주하기 싫어 북향으로 지은 집을, 한용운 선생이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가 마주보고 있다. 만해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오세창 선생이 쓴 현판 아래 작고 소박한 방에 방석 하나가 놓여있다.
심우장을 나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상허(尙虛) 이태준의 고택 ‘수연산방(壽硯山房)’이다. 작고 아담한 이 한옥은 이태준 문학의 산실로 공(工)자 형태로 독특한 공간의 짜임새를 보여준다. 지금은 외종손녀가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글 유정우 기자 spica@ 사진 최원우 기자 naxor@watcher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