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하류에 위치한 수색(水色)동은 옛부터 물과 깊은 인연이 있던 곳이다. 물치, 무르치라고 불렸는데 수색은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수색이 끝나는 지점에 경기도와 서울을 가르는 동네 뒷산이 있다.   봉산(烽山)은 서울 은평구 일대와 경기도 고양시를 가르는 해발 209.6m의 작은 산이다. ‘봉령산(烽嶺山)’으로도 불리는데 둘 다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들에게 더 익숙한 이름으로, 산의 모양이 거북이를 닮아 ‘구산(龜山)’으로도 불린다. 은평구 구산동은 이 산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봉산 북쪽 기슭에는 조선 세조 3년(1457년) 왕릉 터로 정해진 서오릉이 있고 동쪽으로 갈현동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황금사원인 수국사(守國寺)가 있다.     봉산을 오르려면 지하철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역이나 경의선 수색역에서 내리면 된다. 수색로를 따라 국방대학원과 수색교가 있는 방향으로 가다보면 버스중앙차로의 수색교 정류장이 나온다. 바로 앞 골목길로 들어가면 광복사라는 작은 절이 보이는데, 봉산으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보면 된다.   이 길 말고도 봉산에 접근하는 길은 많다. 처음부터 가는 길을 정해 놓지 않았다면, 여러 길 가운데 수색로를 따라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대장간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나 오래된 목재소 등 여타의 도심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의선 수색역 앞의 ‘형제대장간’은 꽤 유명한데 40년 넘게 류씨 형제가 운영하고 있다. 예전에 꽤 많은 대장간이 있었다고 하는데, 세월이 가면서 하나 둘 사라지고 그나마도 경의선 수색역이 생기면서 대부분 자리를 옮기거나 사라졌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형제대장간처럼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장간들이 있다. 대장간의 풍경을 뒤로 하고 봉산에 올랐다.   능선에서 아래로 내려 본 모습은 양편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한 쪽은 비닐하우스와 공장 창고 같은 건물들이 있는 도시 외곽의 모습이고 다른 쪽은 아파트와 고층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도심의 모습이다.     원래 이 등성이를 타고 오르면 가장 먼저 ‘용미아정(龍尾芽亭)’이라는 정자가 등산객들을 맞았다. 하지만 지난해 태풍에 날아가 버렸는지 정자의 잔해만 보였다. 높지 않고 길게 이어진 봉산에는 도시자연공원이 조성되면서 만들어진 9개의 정자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태풍에 대부분의 정자가 사라졌다.   서울과 경기도를 따라 길게 이어진 탓에 이곳에 오르는 사람들의 집들이 전부 제각각이다. 오르는 길도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일산시 덕양구에서도 오르는 길이 많고 은평구 쪽에서도 여러 갈래로 오르는 길이 많다. 그냥 모두 `봉산 주민`으로 묶어도 무관하다.     때문에 초행이라도 이곳에서는 겁먹을 필요가 없다. 길을 걷는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면 친절히 길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갈림길에서 조금 나이가 드신 어르신께 길을 묻자, 길게 돌아가는 길로 우리를 안내하면서 ‘젊은이들은 그렇게 걸어도 된다’는 설명을 덧붙이신다.     낮고 길게 드리워진 등성이가 단조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길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때문에 심심하지는 않다. 그저 동네 뒷산 같은 길을 걷다 보면, 깊은 산속 오솔길을 만나게 되고, 능선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은 잘 조성된 공원을 보는 것 같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봉산의 길은 온통 흙이라는 사실이다.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며 좁아지고 넓어지는 흙길을 타박타박 걷는 재미가 좋다. 거의 부서져 사라지기는 했지만 간간히 만나는 쉼터인, 소박한 모습의 정자를 만나는 것 역시 즐거운 일이다.     정자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갔다 놨는지 거울과 시계와 달력이 보인다. 덕산 약수터의 쉼터에는 아예 벤치와 책장까지 놓여있다. 길을 걷다 잠시 쉬는 사람이나 물을 뜨러 온 사람들이 물병에 물을 받는 사이 그 곳에서 잠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겨울이어서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길 곳곳에 푯말과 울타리가 있는데 되도록 울타리는 넘지 않는 것이 좋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이다 보니 훼손되기도 쉬운데 그 울타리는 사람이 아니라 산이 쉴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야생화나 각종 나무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해 다양한 생명이 공존하는 숲의 모습을 찾도록 돕는 것.. 결국 서로가 공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빈 곳은 빈 채로 놔두는 것, 그 정도의 여유는 나도, 그리고 산도 필요하다. 글 유정우 기자 spica@  사진 최원우 기자 naxor@watcherdaily.com
최종편집: 2025-05-02 07: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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