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현(외과 전문의, 한사랑병원 원장)
‘홍문외과, 학문외과, 대항외과, 항도외과, 학운외과...’
‘항문(肛門)’을 다루는 외과의원들이 내걸고 있는 간판들이다. 현행 의료법상 세부전문과목을 간판에 표기할 수 없게 되자 병·의원들이 ‘항문’이 연상되는 병원명을 짓다보니 웃지 못 할 트렌드가 생기는 것이다.
항문은 우리 몸 위장관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구멍이지만, 감각이 가장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소싯적 짓궂은 장난이던 ‘똥침’을 맞아본 사람들은 그 고통을 대번에 알 것이다. 오죽하면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하다’고 표현할까.
‘병은 소문을 내야 잘 낫는다’는 속설이 있다. 앓고 있는 병을 주변에 알려 ‘용하다는’ 의사와 병원을 수소문할 수 있다는 까닭에서다. 그런데 항문 관련 질환으로 대화가 이어지면 이런 말들이 적용되기 곤란해진다. 더구나 젊은 여성이라면 더더욱 말 못할 고민거리로 떠오른다.
그러나 항문은 그 기능면에서 인체의 다른 어느 기관보다도 중요하다.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대장과 항문질환 환자의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정보나 용어도 난립하고 있다.
항문질환의 종류와 치료법에 대해 설명하자면 치질은 항문에 흔히 발생하는 치핵, 치열, 치루와 같은 항문질환을 통칭해서 이르는 말이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발생하는 치핵을 통상적으로 치질(Hemorrhoids)이라 부른다.
치핵은 항문의 피부와 점막 밑의 혈관조직이 늘어나고 확장되어 생기는데 혈관을 덮고 있는 피부와 점막이 같이 늘어나서 생긴 덩어리이며 항문 혈관을 확장시키는 자세나 생활태도가 원인이 된다.
화장실에서 오래 앉아 있거나 쪼그리고 앉아 있거나 방바닥에 오래 앉아 있게 되면 항문 혈관 안에 피가 고이게 되어 혈관이 늘어난다. 또한 변비가 있어서 변볼 때 힘을 많이 주게 되면 복압이 올라가 혈관 내에 피가 많이 들어차며 항문혈관이 쉽게 늘어나게 된다.
임산부도 복압의 상승으로 치핵이 발생하거나 기존의 치핵이 악화하는 것이다. 가파른 산에 오르거나, 무거운 것을 들거나, 골프를 치는 것도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술의 주성분인 알콜은 혈관을 확장시키므로 과음하는 것도 치핵이 생기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항문병을 예방하기 위한 첫 번째 수칙은 항상 항문을 깨끗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항문이 지저분하면 가렵거나 불쾌해지며 이로 인해 항문주위염, 항문소양증과 같은 항문병이 생기기 쉽다.
또한 배변은 가능한 한 짧은 시간에 마치도록 해야 하며 변이 마려우면 참지 말고 바로 화장실로 가야 한다.
대부분 변은 생리적으로 30초 이내에 나온다. 따라서 이 시간 이상 변기에 앉아 있는 것은 치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덜 누었다고 생각되면 일단 일어선 후 다음에 또 시도하는 것이 좋다.
화장실에서 신문을 읽는 습관은 항문 건강에 좋지 않다. 변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변비는 대변 보는 시간을 길게 해 변을 굳게 만들어 항문에 상처를 입히기 쉽다.
반대로 설사 또는 아직 분해되지 않은 위장관의 소화액도 항문에 손상을 주므로 설사 역시 조기에 치료해야 한다.
항문질환 치료는 좌욕과, 좌약이나 연고의 사용, 동반하는 변비의 치료 등이 도움이 된다. 목욕도 전신혈액순환을 도와 국소울혈을 제거하므로 치핵 치료에 효과가 있다.
치핵에 사용하는 좌약은 대부분 스테로이드, 국소마취제 및 항생제 등을 복합한 것으로 증상을 줄일 수 있다. 치핵의 탈출이 중하고 통증이 심한 치핵인 경우 수술적인 요법을 고려하여야 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치핵 절제술이다. 그 가운데 점막하치핵 절제술은 정상조직은 최대한 살리며 불필요한 치핵만을 제거하는데, 상처가 적고 통증이 덜해 수술 후 합병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 PPH(원형자동문합기) 수술법은, 탈출성 치핵에 이 기계를 이용해 수술하는 방법으로 수술 후 통증이 없어 직장에 조기복귀가 가능하고 최근 의료보험이 적용돼 비용 면에서 부담이 적다. 하지만 실제로 수술이 필요한 치핵은 30% 정도이고, 나머지는 예방과 약물치료로도 호전된다.